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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언덕 Dec 07. 2024

그림과 함께 커피 한 잔

하우스갤러리에서 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마지막 준비 과정은 청소와 커피이다. 평소엔 대충하던 청소도 전시를 앞두곤 집안 곳곳을 정리하고 락스로 화장실을 닦는다. 시지푸스의 돌처럼 해도 끝이 없는 집안일은 평소 성가시고 힘든 일이지만, 전시장을 정비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희한하게 에너지가 솟는다. 생각해보면 전시장을 늘리거나 벽을 만들거나 조명을 바꾸는 일은 어렵지만, 그림이 돋보이게 잔 살림을 덜어내고 반짝이게 닦는 일 정도는 할 수 있는 일이다. 공간에 있어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청소일 뿐이다. 하갤을 하는 동안 나의 청소력은 일취월장해서 이제는 마음먹으면 한시간이면 어느정도 손님맞이 준비를 끝낼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또다른 손님맞이 준비물은 커피이다. 하갤을 처음 시작할 때는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일 때라 다과 제공은 크게 신경쓸 요소는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관객이 전시장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니 커피 정도는 대접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전시 오픈을 앞두고선 일리 커피를 몇 통 주문해서 쌓아놓아야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말갛게 청소를 마치고 그림 앞에서 커피를 내려마시는 순간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일상 하나가 되었다. 혼자 혹은 관객과 함께여도 좋았다. 커피를 마시며 그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들은 힘든 코로나 시기 우울증도 비켜가게 한 요인이었다.   

3년전 여름, 하우스갤러리 한승무 작가의 전시에 관객 J가 찾아왔다. 멀리 제주에서 오셨다길래 깜짝 놀랐다. 찬찬히 전시를 보고 하갤을 운영하게 된 여러 이야기도 나누었다. 그러다 하갤의 시작점이 된 임효영의 그림들도 보여주었는데 J는 <Walking with you>  그림 앞에서 감정이 복받쳐 울기 시작했다. 그녀를 위로하다가, 따뜻한 커피라도 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부엌으로 가서 커피 한잔을 만들어 J 앞에 가져갔다. J는 눈물을 훔치며 커피를 모금 마시다가, 휙 고개를 들고 울먹이며 말했다. 

"흑흑... 그림도 그렇고 이 전시는, 정말 다 좋은데, 흑흑.... 커피 맛이... 커피 맛이..." 

사람들을 만나다보니, 각자의 취향도 다르지만 그 기준점도 모두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가 그림에 진심이듯 J는 커피에 진심이었던 것이다. 후에 알고 보니 J는 커피 장인으로 소문난 레이트벗커피로스터스(Latebut Coffee Roasters)의 공동대표 중 한 명이었다. 캔 상태로 유통되는(유통기한이 긴) 이탈리아에서 분쇄한 커피가루를 가정용 에스프레소 머신에 대충 내린 커피는, 낮은 해상도로 허접하게 출력한 인상파 그림을 화려한 금색칠 액자에 끼워 걸어놓은 고속터미널 액자와 다를 바가 없었을 것이다. 사람마다 한없이 예민하고 섬세한 촉수가 발현되는 자기만의 세계가 있기 마련이다. 나는 울다가 커피맛에 의문을 제기하는 J가 어떤 면에선 나와 너무 닮아서 피식 웃음이 났다.  

J는 전시에 관객이 몇 명이 오는지 물었다. 나는 항상 하갤은 ‘백 명을 위한 전시’라는 모토를 가지고 있다고 대답했다. J는 그림의 감동이 있는 하갤이라면 그에 걸맞는 커피향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렇게 레이트벗 커피는 하우스갤러리의 첫번째 후원자가 되었고, 매 전시마다 100인분의 커피백을 보내주기 시작했다. 제주도 성산읍에 위치한 레이트벗커피는 부부가 함께 운영한다. 남편인 M은 헤드로스터이자 바리스타로 최고의 커피 한잔이 주는 감동을 위해 완전히 커피에만 몰입한 분이었다. 부인인 J는 커피에 어울릴 빵을 구우며 쇼룸을 운영하고 마케팅을 한다. 레이트벗커피의 M과 J는 예술과 커피에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하는, 예술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분들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커피를 보내주는 것에 그쳤다가, 언제부턴가 전시기간 중 작가와의 대화가 있는 날에 쇼룸을 닫고 서울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작가와 관객들에게 직접 커피를 만들어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새벽에 일어나 첫 비행기를 타고 바리바리 챙겨온 커피 도구들을 하갤에 풀어놓으면 열시 남짓이었다. 열한시 작가와의 대화와 함께하는 레이트벗 커피쇼를 진행하고선, 다시 쇼룸의 문을 열기 위해 황급히 공항으로 떠난다. 나는 그들의 헌신과 노력에 고마움을 넘어 안절부절하는 지경이 되었다. 그러나 레이트벗커피의 M과 J는 정말 행복해보였다. 전시마다 작가마다 어울릴 커피빈을 골라, 이지우 커피, 김정아 커피, 정화백 커피, 맹욱재 커피를 만들어주었다. 하갤에 올라오는 날은 휴가와 같다는 그들의 말에, 그저 고마운 마음을 감사히 받기로 했다. 좋은 커피를 만들고 싶은 레이트벗의 마음처럼 하갤은 하갤대로 좋은 전시를 만드는 것으로 마음의 짐을 상쇄시켰다. 

그러다 어느 날엔가 레이트벗커피의 이웃이기도 한 '어니스트밀크'에서도 후원을 하고 싶다고 했다. 

"형님(레이트벗커피 M)이 하시는 하우스갤러리와 작가들을 후원하는 모습이 너무 행복해보이고 좋아보여요. 저도 동참하고 싶어요."

상업적인 광고 협찬의 관계가 아닌, 순수하게 하갤을 응원하며 예술의 가치에 공감하는 레이트벗커피와 어니스트밀크는 이렇게 하우스갤러리2303의 공식 후원처가 되었다. 하갤에 오는 관객들이라면 만나게 될 또다른 즐거움이다. 



정화백, <커피 크레마>, 40.5x30.5cm, 종이에 아크릴, 2019, 개인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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