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이 덕분에 그림책의 세계에 눈을 떴다. 회사를 그만둔 이유 중 하나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에게 '책을 사주는 엄마'가 아니라 '책을 읽어주는 엄마'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와 아이에게 책을 읽어줄 에너지가 없었다. 책을 읽어주다가 졸면서 헛소리를 쏟아내고 그러다 고개를 박고 잠드는 엄마가 아이는 얼마나 답답했을까? 퇴사 후에는 매일같이 도서관에 가 책을 빌렸다. 운 좋게도 집 근처 어린이도서관이 개관한 직후라 책등에 각이 딱딱 잡힌 수많은 새 책들을 열어보는 행운을 누렸다.
그림책의 세계는 신세계에 가까웠다. 80년대에 유년기를 보낸 '라떼'는 어린이를 위한 책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그림책과 동화책을 혼동하는데, 그도 그럴것이 제대로 된 그림책을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동화책이 어린이를 위한 '이야기' 문학이라면 그림책은 그림과 글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즉 문학과 미술이 융합된 한덩어리의 예술이다. 안데르센 동화는 글 자체가 중심이지만, 백희나의 <알사탕>은 글과 그림을 분리할 수 없는 것이다. 어린 아이에게 그림책 교육이 중요한 이유는 글자 교육(읽는 책)에 치우치지 않고 시각적 자극과 함께 여러 감각을 동시에 깨우칠 수 있기 때문(보는 책)이다.
하갤에서 아이들(6세에서 15세까지)과 함께 그림책을 읽는 워크숍을 진행해 본적이 있는데 대부분의 아이들이 글로 책을 본다는 것을 깨닫고 크게 놀랐다. 슬로리딩을 내건 시간이었지만 문자 위주의 교육에 길들여져 그림을 깊이있게 보지 못하고 책장을 넘기기 바쁜 모습이었다. 읽는 것과 보는 것은 다른 영역이기 때문에 글을 깨우치기 전 어린 아이들의 그림책 교육은 매우 중요하다. 만약 그걸 조금 더 일찍 깨달았더라면, 내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지 않고 보여주려고 더 노력했을텐데 안타까운 일이다. 그림책이야말로 내 손안의 작은 미술관인 것을!
엄마가 아니었다면 아이책으로 치부하고 절대 열어볼 생각을 하지 못했을 그림책의 세계가 그렇게 나에게 펼쳐졌다. 하우스갤러리의 첫 전시가 그림책 원화 전시였던 점도 그림책에 대한 나의 애정에 기반한다. 임효영 작가의 그림책 토크를 '갤러리 처음', '사춘기 책방'과 함께 진행한 인연으로 2023년 2월, 홍대에 있는 로컬 서점 '사춘기 책방'을 찾게 되었다. '사춘기 책방'은 작지만 내공이 대단한 곳이라 꼭 한번 찾아가리라 마음 먹었는데 때마침 궁금함이 일었던 윤강미(b.1965) 작가의 그림책 원화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나는 윤강미 작가의 <미나의 작은새> 그림책의 원화들을 천천히 살펴보고 그림책도 구매했다.
그러다 작가의 포트폴리오를 열어보았다. 매우 오래된 자료들도 상당했다. 살펴볼수록 작가에게 걷잡을 수 없는 호기심과 흥미를 느꼈다. 작가의 나이가 이제 60이 다되가는데 첫번째 그림책이 나온 것은 50대 중반이라니! 노랗게 색바랜 신문스크랩 속엔 젊은 날 회화 작가로 활동했던 전시 소식이 담겨 있었다. 기사 속에 게재된 작가의 자화상 작품 한 점이 흑백 사진인데도 불구하고 그대로 눈에 들어와 내리꽂혔다. 작가의 삶의 서사에서 기나긴 공백이 눈에 띄었고, 지금의 그림책이 있게 된 '원형의 그림'이 궁금해졌다. 이 작가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