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어느 날, 환갑을 갓 넘기신 아버지께서 뇌졸증으로 안면 마비가 오셨다. 워낙 건강 체질이셔서 60 평생 병원 한 번 다니지 않던 아버지의 응급실행 소식에 친정언니들, 형부들 모두 놀란 가슴으로 병원 앞 응급실로 총출동하였다. 신속하게 이 것 저 것 검사를 받고 응급실 침대 한편에 누워 의사의 진단을 기다리고 있는데, 간호사 한 분이 질문을 하신다.
환자 분 혈액형이 어떻게 되세요?
함께 있던 언니들과 이구동성으로 "O형이요"라고 외쳤는데, 간호사 분이 고개를 계속 갸웃거리시더니, 말씀하신다.
환자 분 A형 이신데요.
그날 밤 아빠는 "내가 소심한 A형이었다니."라는 말씀을 몇 번이나 말씀하셨다. 그렇게 성격 좋은 O형으로 자부하고 사셨는데, 하루아침에 소심한 A형이 되어 계셨다는 사실이 뇌졸증으로 쓰러지신 사건만큼이나 충격적이셨던 것 같다. 안면 마비로 말씀도 잘 못하시면서 저 말씀을 계속 되뇌시는 바람에 심각했던 가족 분위기가 너털웃음으로 바뀌었던 기억이 난다.
인간은 변할까? 변하지 않을까?
이 글의 스크롤바를 내리기 전에 당신의 생각을 떠올려 보시라. 당신은 '인간은 변한다'에 한 표를 던지겠는가? '변하지 않는다'에 한 표를 던지겠는가?
"인간은 변한다"라는 전제에 대해서는 O, X로 답변하기는 어렵다. 어쩌면 이 질문의 함정을 알고 계셨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변하는 부분과 변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앞서 이야기한 혈액형의 사례처럼 인간의 혈액형은 시간이 지난다고 변하지 않는다. 원래 A형으로 태어난 사람은 A형으로 생을 마감하지 중간에 O형이 되고 싶다고 변하지는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변하는 영역은 무엇일까?
코칭 심리학의 기본 전제는 코칭을 통한 인간의 <행동 변화>를 목표로 한다. 한 개인은 현재 수준에서 목표하는 수준까지 행동을 변화시켜 도달할 수 있다. 간단한 예로 다이어트를 목표로 한다면 식단 조절과 운동하는 행동들을 통해 몸무게를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성격'은 변할까?
이 역시도 많은 성격 심리학자들이 지금도 논쟁하는 주제이다. 인간의 성격이 변한다고 주장하는 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들여다보면 이렇다. 본인이 어렸을 때 얼마나 소극적인 성격이었는데, 이제는 적극적인 성격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성격이 변한다는 주장 이면에는 '환경'의 영향에 따라 개인의 행동이 얼마나 변화되었는지를 보게 한다.
반대로 '성격'은 변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쪽에서는 '기질'적인 측면을 강조한다. 사람마다 타고난 고유한 기질적인 특성은 시간이 변해도 잘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논제는 일단 성격 심리학자들의 논쟁의 주제로 맡겨두고, 오늘은 핫하다는 MBTI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보급형 심리학자로 살면서 가장 많이 한 강의와 교육은 단연 MBTI이다. 하여 이 매거진에서 먹고사는 얘기로 MBTI를 빼놓고 할 수가 없다. 이미 핫하디 핫한 MBTI는 검색만 하면 이곳저곳 정보들이 쏟아지겠지만, 그 숱한 그림에 내가 또 점 하나 덧붙여볼까 한다.
오늘도 인천광역시교육청에서 진행하는 슬기로운 교사생활 연수로 MBTI 해석을 진행하고 왔다.
오늘, 심리학으로 먹고살게 해 준 MBTI 교사 연수_턱에 난 여드름은 나만 보이는 거지? ㅜㅜ 8년을 근무한 어세스타에서는 여전히 교육과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MBTI 특강이나 교육을 진행하다 보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본인의 MBTI 유형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선생님, 제가 고등학교 때는 ENFP 였는데, 이번 검사에서 ESTJ가 나왔어요."
라고 한다면, 이 사람은 성격이 변했다고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MBTI가 측정하는 영역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야 한다. 엄밀히 따지면 MBTI 성격 검사는 아니다. 때문에 MBTI 검사 결과를 가지고 그 사람의 성격을 단정해서는 안된다. 다만 사람들이 인지하기 쉽게 <성격유형검사>라 명기하고 있지만, MBTI에서 측정하는 것은 오직 단 한 가지 <심리적 선호>만 측정한다.
이 검사의 기반이 된 융의 분석심리학에서는 인간의 선호는 "타고난 선천적인 경향"으로 본다. 융의 이론에서는 인간의 심리적 선호는 타고난 것으로 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난다고 바뀐다고 보지 않는다. 예를 들어 진달래 씨앗이 아무리 환경을 잘 가꾸어주어도 장미가 되지 않는 것처럼 사람의 타고난 심리적 선호는 있되 중요한 것은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심리 기능이 분화된다고 본다. 진달래 씨앗이 장미가 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진달래 씨앗에 물도 제대로 안 주고 흙과 거름이 부족하다면 잘 자랄 수 없듯이 내 선호가 ESTJ를 선호한다 하더라도 환경적으로 INFP를 계속 요구받는 환경에 있었다면 본인의 타고난 선호에 대해서 인식하기 어려울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검사 결과가 바뀐 사람들은 무엇인가?
MBTI 검사는 자기 보고식 검사이기 때문에 검사 결과가 바뀌었다는 것은 검사를 응답한 결과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검사 오리엔테이션을 어떻게 받았느냐에 따라 개인이 '되고 싶은 유형'을 떠올렸거나 현재 수행하고 있는 '역할'에서 요구받은 부분을 잘 해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체크를 할 경우는 자기(Self)에 가깝게 응답했다기보다 역할이나 요구를 반영했다 볼 수 있는 것이다.
하루는 남편에게 MBTI 자가채점 검사를 실시한 적이 있었는데, 검사 결과상에서 외향이 '분명'으로 나왔다. 검사 결과지를 붙잡고 남편 한다는 소리가 이렇다.
이렇게 외향인 줄 알았으면, 발표할 때 떨지나 말걸
하악,, MBTI 전문가와 함께 살고 있는 남편도 이런 소리를 할 정도면, 보통의 사람들이 '타고난 선천적인 선호 경향'을 이해하긴 참 더 어렵겠구나 싶다.
남편은 최적 유형 상에서 본인은 외향과 내향 중에 내향을 선호하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자신의 선호는 자신이 탐색해서 결정하는 것이지 20년, 30년 MBTI를 해석한 전문가라고 해서 족집게 짚어주듯 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남편은 내향을 선호하지만, 업무 상 필요한 상황에서 사회적 기술을 개발하여 발표도 하고, 교육도 할 뿐이지 본인의 심리적 선호가 바뀐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MBTI는 16가지 성격 유형 중 한 가지로 자신을 특정하고, 프레임화 하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가 아니다. MBTI는 자기를 발견해 가고자 하는 목적에 도달하는 수단일 뿐, 그 검사 결과가 고유한 개인을 모두 다 설명하지도, 할 수도 없다. (그저 혹자들의 과몰입으로 인해 MBTI에 대해 대단한 오해가 있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인간의 행동이 겉보기에는 멋대로이고 예측하기 힘들 정도로 변화무쌍해 보이지만 사실은 질서 정연하고 일관성 있게 다르다 - 칼 융(C.G. JUNG)
MBTI는 "도대체, 저 사람은 왜 저럴까?" 싶을 때, 예측 불가능하고 뫼시기 힘든 상사라는 생각이 들 때, 틀렸다가 아니라 <다르다>라는 시야를 가질 수 있게 해 준다. MBTI라는 도구로 타인의 다름을 이해하기 시작한다면 질서 정연하고 일관성 있게 다른 타인도 발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MBTI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자꾸 이 좋은 도구를 가지고 궁합을 보려고 하거나 향수를 맞춰서 팔려고 하지 말자. 그 저 개인의 심리적 선호를 발견하여 나의 심리적 강점과 개발점을 발견하고, 타인과 의사소통하는데 이해해 가는 좋은 도구로써, 수단으로써 건강하게 사용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