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도, 멋있지 않다

좋은 책과 베스트셀러, 그 사이에서

by 박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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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은 다른 게 아니라 잘 팔리는 책이야.
독자들의 마음을 훔칠 수 있는 책, 그게 바로 좋은 책이지."


대체 휴일 하루를 쓰기로 했다. 금요일이 딱 좋았다. 주말까지 2박 3일 동안 서울 여행을 결심했다. 온종일 책에 둘러싸여 일하고 있기에 휴가 땐 좀 더 색다른 무언가를 즐기고 싶었다. 막상 어디에 갈까 고민하며 여기저기 살펴보니 눈에 들어오는 건 서울에 있는 유명한 책방과 서점들이었다. 편집 일을 하기 전에도 책을 무척 좋아했고 유명한 책방 혹은 서점에 이따금 들르기도 했다. 그러다 편집자 직함을 달고 가려니 뭔가 업무의 연장 선상처럼 느껴졌다. 출간 리스트를 가져가서 우리 출판사 책 좀 입고해달라고 부탁할 것도 아닌데, 뭐. 그냥 가면 어떨까 싶었다. 다녀온 다음 서울의 출판문화를 조사하고 왔다며 대표님께 자랑하면 칭찬을 받지 않을까.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꽤 부지런히 움직였다. 미리 예약한 게스트 하우스에 짐을 내려놓고 본격적으로 돌아다닐 준비를 마쳤다. 우선 자그마한 책방 위주로 둘러보았다. 우선 개성 있는 인테리어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몇몇 책방은 점원이 책을 읽고 느낀 점을 직접 포스팃에 붙여 아날로그 감성을 살려 마케팅하고 있었다. 특정 분야의 책만 판매하며 독특한 취향을 파고든 책방도 한두 군데 있었다. 요즘 출판계가 어렵다는 건 지난 몇 달 동안 일을 하며 충분히 느끼고 있었다. 수많은 책방이 새롭게 생겨나고 있지만, 딱 그만큼 사라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서울 한복판에 당당히 자리 잡고 있는 이들의 모습이 무척 대단하게 느껴졌다.


이후엔 수도권의 장점을 충분히 살리며 대자본의 힘을 유감없이 보여준 대형 서점에 방문했다. 건물 크기는 물론 내부도 으리으리했다. 도저히 손에 닿을 수 없는 곳에도 책이 빽빽이 꽂혀 있었다. 책으로 가득한 건물이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곳은 단연 ‘베스트셀러’ 코너였다. 피라미드 구조처럼 책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꼭대기에 올라가기 위해선 다른 무언가를 밟고 올라서야 한다는 걸 의미할까, 조금은 이상했다. 꽤나 익숙한 책 표지와 제목, 저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 2015년 신간 발행 종수가 약 5만 종이고, 지난 2016년은 약 6만 종이라 한다. 이토록 많은 책과 경쟁에서 이겨 ‘베스트셀러’라는 타이틀을 걸게 되었다는 게 참 대단했다.


- 편집자는 요즘 어떤 책이 잘 팔리는지 살펴봐야 해. 우리 사회에 어떤 이슈가 있는지, 어떤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공감을 하는지 알 수 있어. 그러면서 어떤 책을 기획할 건지 생각해봐야 해


대학 시절 독서의 세계로 빠져든 이후, 처음 1~2년을 제외하면 베스트셀러는 거의 읽지 않았다. 주로 인문학 서적 위주로 읽었다. 무게감이 있으며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는 책, 혹은 삶의 변화를 끌어낼 수 있는 책이었다. 그중에서도 고대 그리스, 로마를 다룬 역사책 혹은 철학 서적에 열광했다. 결코 대중적이지 않은 취향이었다. 하지만 편집자 직함을 단 이상 개인의 취향은 철저히 버려야 했다. ‘나’가 아닌 ‘대중’들이 어떤 책에 관심을 가지고 열광하는지 치열하게 탐구하고 분석해야 했다.


대형서점답게 구매하지 않아도 읽을 수 있는 책이 많았다. 특히 베스트셀러의 경우 아예 서점 안에서 읽을 수 있는 용으로 서너 권 배치되어 있었다. 마침 잘 되었다 싶어 자리를 잡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렇게 베스트셀러를 읽는 게 얼마 만이지, 내 행동이 조금은 낯설게 느껴졌다. 하지만 궁금했다. 요즘 사람들이 대체 어떤 책을 읽는지, 도대체 얼마나 재미있길래 그렇게나 많이 팔리는지.


그렇게 한동안 몇 권의 책을 훑어보았다. 하지만 나의 호기심은 충족되긴커녕 오히려 더 커다란 의문에 휩싸였다. 분명 재미없는 책은 아니었다. 잘못된 정보를 제공해주는 것도, 글이 형편없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이렇게까지 인기가 많을 만한 책은 아니라 생각했다. 이보다 훨씬 재미있고 작품성 있는 책들이 많다고 확신했다. 그런데 왜 내가 재미있다고 생각한 책은 안 팔리고, 이 책은 날개라도 돋친 마냥 팔리는가. 내 취향이 대중적이지 못한 걸까. 내가 대중들의 심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


독서량이라면 그 누구에게도 꿀리지 않을 만큼 수많은 책을 읽어왔다. 편식이 심하긴 해도 어떤 책이 좋은 책인지는 충분히 판단할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내 앞에 있는 베스트셀러들은 좋은 책이 아니었다. 빌어먹을 ‘내 기준’에 불과할지라도, 그 누구보다 책을 좋아하고 또 많이 읽는 내가 기준조차 세우지 못할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걸까. 둘 중 하나는 분명 잘못되었다. 베스트셀러에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내가, 아니면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도록 구입한 수만, 아니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책을 다시 제자리에 꽂았다. 책 사는데 만큼은 돈을 전혀 아끼지 않는 편이었지만, 조금 전 훑어본 책들은 돈을 내고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대신, 다른 책을 골랐다. 사람들이 별 관심을 가지지 않을 만한, 분명 1쇄도 다 나가지 않았을 책이었다. 결국 대중의 취향을 선택하기보다 내 취향을 선택했다. 편집자로서 영 꽝이다. 그냥 사람들이 어떤 책을 원하는지 파악하고, 그런 책을 기획하자 다짐하면 될 것을, 어째서 이토록 삐딱한가.


- 좋은 책은 다른 게 아니라 잘 팔리는 책이야. 독자들의 마음을 훔칠 수 있는 책, 그게 바로 좋은 책이지.


잘 팔린다고 해서 좋은 책이라 할 수 있는가. 아니, 그럴 수 없다. 나는 인정하지 못했다. 정말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가치관과 신념을 이토록 쉽게 타협할 수 없다. 나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책을 잘 팔린다는 이유로 기획하는 게 편집자란 말인가. 정말 그게 훌륭한 편집자란 말인가. 그렇다면 조금도, 멋있지 않다.


서점에서 나오니 바람이 유난히도 차게 느껴졌다. 봄인 줄 알았는데, 아직 겨울이 끝나지 않았나 보다. 나는 대체 어떤 책을 만들어야 하는가. 편집자가 된 줄 알았는데, 아직 편집자가 되려면 한참은 멀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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