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쇄하는 마음

한낱 상품일 뿐인데

by 박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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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책이 나오면 6개월은 신간이라 불린다. 베스트셀러 혹은 스터디셀러를 제외하면 유의미한 판매량은 1년 6개월까지 잡힌다고 한다. 책이라는 상품은 길게 잡아도 출간 후 3~4년이 지나면 독자들의 관심에서 사라지는 편이다. 책은 한 번 찍을 때 보통 1000~2000부를 찍는다. 2년 이내에 판매하지 못하면 난감한 상황이 펼쳐진다. 창고에 보관하는 비용은 계속 빠져나가는데 주문이 1년에 몇 권밖에 안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 보관비용과 판매 수익을 고려해보면 오히려 손해다. 그런 경우 남은 재고를 모두 팔고 '품절' 처리를 할 때가 있다. 이런 경우는 그나마 양반이다. 지난 판매 데이터를 바탕으로 남은 재고가 판매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책을 파쇄하기도 한다. '임시품절'을 넘어 완전한 '품절'이다. 독자는 이미 유통된 경우 이외에 더 이상 그 책을 살 수 없다. 갑자기 그 책이 화제가 되어 판매량이 높아지는 게 아니라면, 이제 그 책은 세상에서 점점 잊혀질 일만 남은 셈이다.


작년 연말, 사무실을 옮겼다. 책상이나 컴퓨터, 책장 등 큼지막한 것들을 옮기고 나니 짐 자체는 얼마 없었다. 다만 처치 곤란한 게 있었다. 출간된 시기가 제법 지나 현재 수요가 거의 없는 출판사 책들이었다. 지난 몇 년간 판매량 추이를 봤을 때 남은 재고가 팔릴 여지도 없었다. 도서 정가제 때문에 싸게 팔 수도 없었다. 이미 시장성이 없는 책을, 그것도 한 종 당 최소 100~200권씩 있는 책을 기부하는 것도 어려웠다. 한 권 한 권 모두 소중한 책이었지만, 오로지 경영의 관점에서 보았을 땐 악성 재고에 가까웠다. 이것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대표님과 고민한 끝에 결국 파쇄하기로 결정했다.


수십 개가 되는 박스를 열심히 날랐다. 내가 아직 고등학생이었을 때 나온 책부터 시작해 입사하기 직전에 출간된 책도 있었다. 책 만드는 과정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어렵다. 저자가 처음 소재를 떠올린다. 하얀 백지 위에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한다. 원고는 편집자와 저자 사이 몇 번씩 오고 간다. 편집 작업, 디자인 작업을 거쳐 마침내 인쇄 제작에 들어간다. 갓 나온 따끈따끈한 책을 받아보는 저자와 편집자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마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지 않을까. 유통이 시작된다. 독자들이 하나둘 구입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책은 출판사와 저자, 독자 사이에서 살아 숨 쉰다. 누군가에겐 재미를, 누군가에겐 특별한 의미를, 또 누군가에겐 삶의 전환점을 줬을지도 모르는 책이다. 분명 그랬을 책이었으랴. 그런데 시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상품성이 더 이상 없다는 이유만으로 세상에서 잊혀져야 하는 걸까. 마음이 착잡해졌다.


뷔페에서 잠깐 일한 적이 있다. 쉬는 시간 혹은 마감 시간이면 커다란 음식물 쓰레기 통을 비우곤 했다. 커다란 통이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채워졌다. 손님이 먹고 남긴 음식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서 버리는 음식도 제법 많았다. 그 음식을 하기 위해 누군가는 농사를 짓고 가축을 키우고 어선 위에서 그물을 던졌을 텐데, 누군가는 판매를 하고, 누군가는 요리를 했을 텐데, 멀쩡한 음식이 버려지는 게 아쉬웠다. 다만 그뿐이었다.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으니까.


소비자에게 선택받지 못한 상품이 버려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쓰임을 다하지 못하고 버려지는 게 세상에 얼마가 많은가. 그 모든 것에 대해 안타까워한다면 세상살이가 참 힘들어질 것만 같다. 책 역시 하나의 상품일 뿐이다. 출판사는 책을 팔아서 그 수익으로 유지되는 이익 집단이다. 때로는 냉정하게 경영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봉사 단체와 조금도 다를 게 없어지니 말이다.


산처럼 쌓여있는 책들을 바라본다. 언젠가 독자의 선택을 받아 누군가에게 읽히게 될 거라는, 미약하게 남아있던 가능성마저 사라지는 순간이다. 돈으로 환산되지 않아도 좋다, 그래도 누군가는 저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는 절박한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마저도 어렵다. 결국 책을 팔지 못한 우리 잘못이다. 죄책감과 무기력함이 나를 덮친다. 어째서 저 많은 책이 파쇄의 운명을 맞아야만 하는가. 내가 좀 더 열심히 홍보했으면, 그래서 판매량이 괜찮았다면 상황이 바뀌었을 것만 같다. 나는 어째서 이토록 무능력한가. 내가 기획 및 편집을 맡은 책도 훗날 이런 운명을 맞이하게 될까, 문득 의문이 들었다. 지금은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한 그 책들이, 결국은 독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한 채 다시 종이로 돌아가고 마는 서글픈 결말을 맞이하게 될까. 그때마다 스스로 편집자로서의 자질을 의심하게 될 것만 같다.


버려지는 책을 보며 가슴 아파하는 걸 보니, 아직도 책을 온전한 상품으로 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상품일 뿐인데, 한낱 상품일 뿐인데, 돈 벌려고 만드는 상품일 뿐인데. 나는 여전히 온갖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고 있나 보다. 아직도 환상에서 내려오지 못한 걸까, 그저 순수하게 책을 좋아하는 독자에서 벗어나지 못한 걸까. 마지막 박스를 옮긴다. 미안한 마음에 작별인사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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