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에게 걸리면 정말 얄짤 없구나

선수들의 무대에서

by 박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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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는 교정·교열에 선수들이야. 독자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미세한 부분에도 엄격한 편이지."


평소 책을 읽다 보면 종종 오탈자를 발견할 때가 있다. 그중 누구나 틀릴 법한 오타나 맞춤법도 있고, 치명적인 오타 혹은 비문도 있다. 편집자 직함을 단 이후부터 오탈자를 보는 눈이 좀 더 섬세해졌다. 다만 식당에서 음식이 잘못 나와도 굳이 내가 먹기 싫은 음식이 아닌 이상 곧장 먹는 타입이기에, 오탈자로 그 책의 가치를 평가하거나 책을 만든 출판사 혹은 편집자를 비난하진 않는 편이다. 편집자라면 이러한 부분에서 까다로워야 할 텐데, 사람의 성격이나 습관은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 듯하다.


하지만 회사에서 일할 때만큼은 오탈자에 대해 엄격해지려 노력하고 있다. 업무 메일을 주고받을 때부터 시작해 SNS에 올리는 몇 줄 안 되는 글조차 오타 점검을 하고, 비문이 없는지, 더 나은 단어나 표현이 없는지 몇 번씩이나 고민한다. 단행본 내지 교정·교열을 볼 때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집중한다. 어쨌든 독자들이 자신의 돈과 시간, 노력을 들여 읽는 상품인 만큼 결함을 최대한 줄이고 싶기 때문이다. 편집자 생활을 시작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나도 이런데, 전국에 내로라하는 편집자들은 말할 것도 없다. 다른 건 몰라도 글에 대해서는 그 어떤 직업보다 엄격한, 그야말로 선수들이었다.


지난 2018년 수원에서 열리는 한국지역도서전을 앞두고 주최 측에서 기념 도서를 제작하기로 했다. 주제는 '지역 출판사 편집자로 살아가기'였다. 전국 각지에 있는 지역 출판사, 그곳에서 일하는 편집자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모아 책으로 묶기로 한 것이다. 약 두 달 전, 회사 메일로 원고 청탁을 받았다. 당연히 대표님이 원고를 쓰실 줄 알았는데, 나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대표님은 작년에 참여한 경험이 있기도 했고, 편집자로 데뷔하는 자리라 생각하라며 내게 원고를 맡긴 것이다. 전국에 내로라하는 편집자들 사이에 감히(?) 내 글을 실어도 될까 커다란 부담으로 다가왔지만, 한편으론 쉽게 잡기 힘든 기회라는 생각에 설레기도 했다. 그렇게 많은 품을 들여 원고를 작성해 제출했다.


그러다 며칠 전, 인쇄를 앞두고 표지와 내지 초안이 올라왔다. 이번 도서전에 참여하는 지역 출판사 대표, 편집자 등 80여 명이나 있는 단톡방이었다. 주최 측에서 촉박한 일정 탓에 얼른 인쇄를 넣어야 한다고 빠른 피드백 요청을 했다. 이번 기념 도서에 원고를 실은 전국 각지 편집자 혹은 출판사 대표가 하나둘 수정 요청을 하기 시작했다. 몇 페이지에 있는 이 부분을 이렇게 바꿔 달라, 조사가 빠졌다, 기호가 빠졌다 등, 조용하던 단톡방은 금세 시끌벅적해졌다. 나 역시 자세히 보니 오탈자, 비문이 몇 개 눈에 들어왔다. 조심스레 담당자 개인 카톡으로 수정 사항을 보냈다.


세상에 완벽한 원고는 없는 것처럼, 교정·교열에도 끝이 없다. 실제 회사에서 책 작업을 할 때도 수정 요청이 한 번에 끝나는 경우가 잘 없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더 했다. 처음엔 이상이 없다고 했다가 뒤늦게 수정 요청하는 사람도 있었고, 한두 번 요청해놓고 또 새로운 오탈자를 찾아 다시 부탁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 번 피드백을 반영해 수정했는데도, 또 새로운 오타와 비문을 찾았다. 다시금 수정 요청을 했다. 담당자가 스트레스받을까 봐 최대한 예의 있게 말했다. 두 번이나 되는 수정 요청을 친절하게 받아주셨지만, 아마 속은 부글부글 끓지 않을까 싶었다.


기념도서는 약 20개에 가까운 원고로 구성되었다. 딱 그만큼 많은 사람에게 피드백을 받아야만 했다. 그것도 평범한 사람이 아닌, 교정·교열에는 선수라 할 수 있는 편집자였다. 이들은 독자들이 크게 연연해하지 않을 미세한 부분마저 엄격하게 체크하는 선수였다. 그러다 보니 웃지 못 할 장관이 펼쳐졌다. 한두 시간이면 끝날 줄 알았던 피드백은 거의 반나절 동안 계속되었다. 늦은 밤에도 수정 요청은 계속 올라왔다.


편집자들이 한 번에 오탈자를 모두 찾을 수 있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테다. 다만 이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꿋꿋이 살아남아 지역을 대표하고 있는 쟁쟁한 편집자들이었다. 감히 이들의 역량이나 섬세함 등을 문제 삼을 수 없다. 꼼꼼하지 않다면 오히려 반나절 동안 거듭되는 수정 요청이 오갈 리 없었다. 다만 완벽함과는 거리가 먼 '교정·교열'이라는 이 작업, 그리고 글에 대해선 그 누구보다 엄격한 편집자들의 특성상 어쩔 수 없이 일어난 소동(?)에 가까웠다.


아무튼 피드백은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끝났고, 점심시간쯤에 인쇄소로 파일이 넘어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선수들 사이에서 수십 번이고 수정되며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되었을 원고가 괜히 안타깝게 느껴졌다. 편집자에게 걸리면 정말 얄짤 없구나, 이곳이 바로 내가 들어온 '편집자'라는 세계구나, 감탄과 자부심, 설렘, 걱정, 불안 등 다양한 감정이 복잡하게 뒤엉켰다.


- (...) 혹시 이 부분 수정 됩니까?


인쇄소에 넘어간 지 한참이 지난 시점, 단톡방에 올라온 누군가의 카톡을 확인하며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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