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쏟아냈던 분노, 혐오의 언어가 고스란히 마스크에 남아 있지 않을까
이른 아침, 현관문을 연다. 밤새 들이마신 옥탑방의 쾌쾌한 공기를 뒤로한 채, 산뜻한 아침 공기를 맞이한다. 2020년의 겨울은 유난히도 포근하다. 따스한 날씨에 매화가 금방이라도 자신의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낼 것만 같다. 매화의 봉오리가 터지는 그 순간, 상큼한 봄의 향기가 하늘을 뒤덮는 상상을 해본다. 하지만 이러한 달콤함도 잠시, 이내 하얀 마스크가 코와 입을 가린다. 미세입자를 걸러낸다는 고성능 마스크는 신선한 아침 공기도, 봄의 따스함과 설렘도 함께 차단하는 듯하다.
거리로 나선다. 아침의 상쾌한 공기 대신, 나의 입에서 나온 달짝지근한 공기가 다시금 나의 코로 들어간다. 겨우 몇 분 만에 숨이 찬다. 주위를 둘러보니 여기저기 마스크가 떠다닌다. 다들 눈만 빼꼼히 드러내고 있다. 하얀색 마스크, 검은색 마스크, 하늘색 마스크. 나도 그들 중 하나가 되어, 마스크와 떨어질 수 없는 운명의 공동체라도 된 것처럼 눈을 껌뻑이며 거리를 부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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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진자가 1,000여 명에 육박했고 사망자는 무려 10명이 나왔다. 거리는 눈에 띄게 한산해졌고 재난 문자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내 주머니 속으로 도달한다. 음식점 발길이 뚝 끊긴 모습이며, 밥이나 라면 등 생필품 코너가 텅텅 비어 있는 마트 진열대의 풍경은 절로 공포를 자아낸다. 다시금 주머니에서 요란한 소리가 난다. 문자 속 담겨 있는 확진자 동선은 이내 감염의 공포로 바뀌어, 한 걸음씩 나를 뒤따라오며 목을 점점 조이는 기분이다.
다만 이러한 풍경도, 각종 언론과 포털 사이트, 댓글 등이 만들어내는 공포에 비하면 아무렇지 않게 느껴진다. 온라인 매체를 보고 있노라면, 당장 내일이라도 인류가 종말을 맞이할 것만 같은 공포에 사로잡힌다. 공포는 곧 맹목적인 비난과 혐오로 이어진다. 상식의 범주를 뛰어넘은 주장이 아무렇지 않게 온라인을 도배한다. 누군가 이성적인 이야기를 하더라도, 혐오로 가득한 정치적 언어로 상대방을 규정해버린다. 잔뜩 화가 난 이들은 지금도 끊임없이 타켓을 요구하며, 시뻘건 눈으로 자신의 감정을 쏟아부을 무언가를 찾고 있는 중이다. 코로나보다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온라인상에 퍼진 셈이다.
감염에 대한 개인의 공포감이야 당연한 감정이지만, 우리가 느끼는 불안은 코로나 바이러스 자체보다도 온라인상에서 아무렇지 않게 떠돌아다니는 질 나쁜 언어의 탓이 크다. 정확하고 균형감 있는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언론이 오히려 혐오와 불안을 앞장서서 선동하며, 확인되지 않은 가짜뉴스를 그 누구보다 신속하게 퍼 나르고 있다. 이러한 콘텐츠는 특정 댓글을 유도한다. 감정적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는 콘텐츠 앞에서, 누군가를 향한 비난과 혐오로 가득 찬 댓글은 단숨에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으며 ‘여론’ 혹은 ‘네티즌 반응’이라는 이름으로 둔갑한다. 온라인상에서 바이러스가 퍼지는 과정이다. 이 속에서 극복에 대한 의지나 해결 방법은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다. 그저 혐오 대상의 전이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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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정류장 너머로 매화나무 한 그루가 우연히 눈에 들어온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뒤숭숭한 세상과 달리 꽃잎이 활짝 만개한 모습은, 봄이 다가오고 있음을 조심스레 말해준다. 순간 얼굴의 절반을 가린 하얀 천 조각이 유난히도 답답하게 느껴졌다. 갑갑한 사무실에 종일 있었기에 상쾌한 공기를 마시고 싶었지만, 천 조각은 한편으론 집에 도착하기 전까지 나를 지켜줄 유일한 무기이기도 했다. 그 어떤 미세입자도 침입할 수 없도록, 마스크를 재정비한다.
달짝지근한 침 냄새 대신, 상큼한 봄의 향기를 떠올려본다. 봄이 다가옴에 따라, 지금은 철썩 같이 입에 달라붙어 있는 마스크를 벗을 날도 함께 가까워지고 있다. 확진자와 사망자가 더 이상 늘어나지 않고, 백신이 개발되어 더 이상 불안에 떨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 분명 올 것이다. 마스크를 벗으면, 우리는 과연 어떤 얼굴과 마주하게 될 것인가. 마스크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우리의 남루한 민낯은, 봄의 따스한 햇살과 사뭇 대조적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향긋한 봄 내음 대신 지독한 악취가 코를 찌를 것만 같다. 하얀 천 조각을 방패삼아 우리가 쏟아냈던 분노, 혐오의 언어가 고스란히 마스크에 남아 있지 않을까. 그제야 우리는 깨달을지도 모른다. 바이러스가 활개 쳤던 마스크 겉면보다, 실은 우리의 입과 붙어 있던 마스크 안쪽이 더욱 더러웠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