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을 향해 쏘았던 화살이, 언젠가 우리의 가슴팍에 박힐 수도 있다
코로나 사태 초기,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한 여러 방법이 논의되었다. ‘감염원 차단은 방역의 기본이다’는 의심하기 힘든 옳은 명제였고, 이를 근거로 한 여러 주장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대표적으로 대한의사협회에서 주장한 ‘중국 전역의 입국 제한’과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올라와 76만 명의 동의를 얻은 ‘중국인 입국 금지’가 있다. 이러한 주장을 한 이들 중 우리나라에서 코로나가 창궐하는 참사를 원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불안과 공포가 만들어낸 감정이자, 나름의 이유를 가진 주장을 마냥 정치적이라 매도하긴 어렵다.
완벽한 정책이 존재하기 어려운 것처럼, 어떤 방역시스템도 완벽하다고 섣불리 말하기 어렵다. 국경을 봉쇄하기보다 철저한 검역과 조사, 관리를 선택한 현 방역시스템은 세계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현 상황에서 좋은 모델로 칭송받고 있다. 다만 이를 위해선 체계적인 의료시스템과 질 높은 의료 인력이 받쳐줘야 하며, 방역에 구멍이 생길 경우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는 단점이 있다. 그럼에도 현 방역 정책이 앞서 언급한 두 주장에 비해 힘이 있는 이유는, 그마나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주장에 가깝기 때문이다.
대한의사협회에서 주장한 ‘중국 전역의 입국 제한’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다. 코로나가 발생한 근원지에서 감염원을 차단하는 논리라면, 중국에서 오는 외국인과 한국인 모두의 입국을 제한해야 한다. 다만 우리나라 국민의 입국을 제한하는 건 헌법에 위반되는 행위이며, 외국인의 입국만 금지하는 경우 ‘감염원 차단’이라는 논리가 무너지게 된다. 바이러스가 국적과 인종을 가리며 퍼지지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청원에 등장한 ‘중국인 입국 금지’가 설득력을 가지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공포가 만들어낸 감정이라 할지라도, 마치 바이러스가 ‘중국인’이라는 특별한 민족만을 표적으로 삼는다고 생각하는 건 명백한 혐오이다. 이는 한 개인을 ‘중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하는 위험한 근거가 된다.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사회 구성원의 일부로서, 우리는 제 각자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크게는 국가로서, 민족으로서, 성별로서, 지역으로서 커다란 집단 속의 한 개인이다. 집단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한 개별 존재를 집단의 관점으로만 설명하는 건 위험한 일이다. 데이터상으로 한국인의 평균 키가 수치화되어 있지만, 우리나라 사람 모두의 키가 그 숫자와 같지 않은 이유이다. 그럼에도 사회적 약자를 앞에 두고 이러한 혐오의 논리가 종종 작동한다. 한국에선 주로 여성, 장애인, 소수자, 난민, 외국인 근로자 등이 그 대상이다.
나경원 의원의 딸은 다운증후군을 가지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에 따르면, 다운증후군은 염색체 이상을 가진 질환 중 가장 흔히 보이는 질환으로서, 여러 의학적인 문제와 장애, 특히 지능 저하와 발달 지연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다만 그 상태로 계속 머무르기보다, 단지 배우는 것이 느리며 학습 내용을 이해하고 판단하기에 조금 더 어려울 뿐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조기 재활 치료를 통해 나중에는 어느 정도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하다고 한다.
정치적인 입장과 입시 의혹을 배제하더라도, 나경원 의원의 딸은 한 명의 개인으로서, 자기가 추구하는 삶을 당당히 살아갈 권리가 있다. 다운증후군을 가지고 있지만, 좋아하는 음악과 책이 있고, 좋아하는 음식이 있으며,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줄 취미생활과 자신의 미래를 이끌어갈 멋진 꿈을 가진 존재다. 그럼에도 사회가 한 개인에게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게 하거나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막는다면 그것은 명백한 차별이자 혐오이다. 다양성에 대한 담론이 비교적 더딘 우리 사회는 유독 이러한 현상이 심했고, 수많은 활동가가 각종 편견과 통념에 맞서 싸우며 차별과 혐오를 완화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여성, 장애, 인종에 대한 비하가 아무렇지 않게 이어졌던 십수 년 전에 비해 우리 언어가 한층 조심스러워졌다는 게, 아직 한참 부족하고 갈 길이 멀지만 누구나 체감할 수 있는 결과물이다.
나경원 의원의 딸이 선거 유세 현장에서 ‘정부가 중국인을 안 막아 코로나가 터졌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어머니가 정치적인 목적을 가지고 시켜서 한 말이든, 아니면 스스로 현 상황을 판단해 한 말이든, 장애를 가지고 있는 주체로서 혐오의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는 점은 서글프게 다가온다. 방역에 대한 입장 차이야 있을 수 있고, 정치적인 견해 역시 다를 수 있다. 다만 한 개인을 인격체로 보지 않고 집단으로 매도하며 그걸 바탕으로 함부로 판단해버리는 행위는, 그녀가 한국 사회에서 이제까지 당한 차별과 혐오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 또한 그녀가 앞으로 한 명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갈 한국 사회의 차별과 혐오를 더욱 굳건하게 만드는 발언이기도 하다. 개별 존재를 지워버린 집단의 관점으로 상대방을 정의하며, 더 나아가 존재 자체를 혐오하는 청원에 76만 명이 동의하는 비극적인 모습이 우리 사회의 현시점이다. 지금은 그 자리에 중국인이 있지만, 이후로는 소수자가 될 수 있으며, 언젠가 ‘장애인’이 버젓이 올라가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중국인’을 향해 쏘았던 화살이, 돌고 돌아 우리 자신의 가슴팍에 박힐 수 있음을 결코 잊어선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