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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오 Jul 10. 2020

고작 불편함이다

생존에 직면한 원초적인 불안함이 아닌, 자그마한 불편함뿐이다

   단짝 친구가 생일선물로 줬던 슬램덩크 다이어리, 나를 지독히도 놀리던 친구가 쓰고 다니던 커다란 무테안경, 나를 늘 따스하게 대해주시던 선생님의 눈가에 가득한 주름살까지. 지금까지도 남아 있는 유년 시절의 희미한 기억들이다. 또 하나는, 한없이 멀게만 느껴지던 등굣길에 비해 발걸음이 무척 가벼웠던 하굣길에 대한 기억이다. 같은 학교를 다니고 한동네에 살다 보면 동선이 겹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다만 당시의 나로선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하굣길에서 종종 펼쳐졌다. 나보다 한참 앞서 걷고 있는 또래 여자애들이 자꾸 뒤를 돌아보면서 불안한 기색을 보이곤 했다. 대체 왜 따라오냐는 듯 의심으로 가득 찬 눈빛을 보면 어린 마음에 화가 치밀었다. 따라가는 게 아니라 나도 집으로 가는 것뿐인데, 왜 괜한 오해를 받아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당시의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먼 길을 돌아가거나 또래 여자애를 앞질러 뛰어가, 너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는 걸 행동으로 말하는 것뿐이었다.     


   그로부터 약 2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자그마한 꼬마는 어느새 서른이 되었다. 그때 일들이 나에게 커다란 피해나 상처를 준 건 아니었다. 다만 당시의 억울함이 지금까지 선명하게 떠오르는 이유는, 이와 유사한 일들이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지금도 한적한 거리를 걷거나 밤거리를 걷다 보면, 앞서 걸어가며 불안한 듯 뒤를 돌아보는 여성을 이따금 만난다. 당시에는 그 대상이 또래 여자애였지만, 이제는 대부분의 여성으로 그 범위가 확대되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줄곧 반복되었던 상황. 10살도 채 안 되었던 꼬마는 억울함을 느꼈지만, 서른이 된 지금도 똑같은 감정을 느끼기엔 지난 20년이 넘는 세월이 아쉬웠다. 불안해하며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니, 충분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잠재적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단이 마땅히 없을 때, 불안이라는 감정이 우리를 덮친다. 전 세계를 혼란에 빠뜨린 코로나19를 예로 들어보자. 현재 우리나라에서 완치자를 제외한 실제 확진자는 대략 천 명 정도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나머지 5천만 국민은 코로나 예방을 위해 완전히 다른 일상을 보내고 있다.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쓰는 이유는 잠재적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행위다. 이 장소에 코로나 확진자가 있는지 없는지 우리는 모른다. 스스로 항체를 가졌는지도 우리는 모른다. 그래서 조심하는 거고, 마스크를 착용하고 서로 거리를 두며, 시도 때도 없이 손 소독제를 덕지덕지 바르는 것이다.     


   아무런 욕망이 없음에도 의심을 받는다면, 그것은 명백한 오해다. 다만 나의 이러한 마음은 나만 알고 있다. 상대방은 나라는 존재를 처음 마주하는 사람이다. 일반적으로, 건장한 30대 남성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가해자로 돌변할 수 있다. 그런 마음이 없다고 해도 나는 건장한 30대 남성이고, 상대방에게 그렇게 비친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즉시 알릴 수 있다면 오해가 생길 일이 없겠지만, 밤거리에서 만난 모든 사람에게 일일이 설명할 순 없는 노릇이다. 즉 여성은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자신의 생존 혹은 안전을 위해 경계하는 것이다. 반면 남성은 자신을 뒤따라오는 여성의 존재에 커다란 위협을 느끼는 경우가 잘 없으므로, 반대의 경우는 잘 일어나지 않는다. 불안의 방향은 이처럼, 언제나 일방적이다.     


   무고한 남성은 잠깐 기분 나쁘고 끝날 일이지만, 여성에겐 생존의 문제다. 우리가 위험한 일을 할 때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거처럼, 여성도 미지의 존재에 대해 의심하고 또 의심하면서 자신의 안전을 확보해야만 한다. 세상에 선한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해도, 소수의 악한으로 인해 경찰이 존재하는 것처럼, 나쁜 남자보다 착한 남자가 많다고 해도 여성이 밤거리를 아무런 걱정 없이 돌아다니기란 쉽지 않다. 전체 비율로 놓고 봤을 때 1%도 안 되는 확진자의 존재로, 5천만에 가까운 이들이 늘 마스크를 착용하듯이.     


   남성이 어떤 욕망을 가지고 있는가와 무관하게, 남성의 신체는 누군가에게 커다란 위협을 줄 수 있다. 의심의 눈초리로 자신을 힐끔거리는 여성이 있다면, 왜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냐고 따지기 전에 그들의 불안함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 사람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든 다른 길로 돌아가든, 그들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상황을 만들어주면 된다. 조금은 번거롭고 불편할지 모른다. 또 경우에 따라선 억울할 수도 있다. 다만 우리는 여성들에게 불안의 원인을 제공하는 모든 남성 범죄자를 세상에서 사라지게 할 순 없다. 대신 그들의 공포와 불안에 공감하며 조금의 불편함을 감수할 수는 있다. 고작 불편함이다. 생존에 직면한 원초적인 불안함이 아닌, 자그마한 불편함뿐이다. 그 정도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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