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정오 Jul 17. 2020

82년생 김지영의 어머니

‘김지영의 어머니 세대’는 지금 김지영의 30년 뒤 모습이다

   전화를 걸자마자 잔소리가 시작된다. 너는 왜 이렇게 전화를 안 하냐, 너희 형은 매일 전화하는데. 에이, 바빴다니까요. 요즘 별일 없습니까. 나의 물음에 어머니는 기다렸다는 듯 대답한다. 안 그래도 다음 달에 너희 할머니 생신인데, 반찬 뭐해가야 할지 고민이다. 곧바로 어머니의 고단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30여 년 전, 할머니는 우리 부모님의 결혼을 결사코 반대했다고 한다. 다양한 이유가 있었지만, 대학을 졸업한 아버지가 고등학교만 졸업해 ‘못 배운’ 어머니와 결혼하는 걸 유난히도 탐탁지 않아 했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시집살이는 무척 살벌했다. 부모님은 결국 가혹한 시집살이를 견디지 못하고 집을 나와 여관방을 전전하다가 간신히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그러다 보니 할머니와 어머니는 늘 사이가 안 좋았다. 어머니는 이제 50이 넘었고, 할머니는 이제 80이 넘어 정신이 희미하시지만 과거의 앙금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흔하디흔한 고부갈등이지만, 할머니의 연세가 많아질수록 갈등의 양상은 조금 바뀌었다. 할머니의 든든한 아들들이 자신의 어머니를 끔찍이도 아끼며 감싸고 있었다. 또한 할머니를 앞세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무조건 할머니께 용돈을 많이 드려야 했다. 개인 종교와 무관하게 절에 ‘기도비’ 명목으로 돈을 쏟아부어야 했다. 명절 음식은 무조건 직접 다 만들어야 했다. 남자는 부엌에 들어가면 안 되었다. 여자들은 남자와 다른 테이블에서 먹거나 혹은 남자가 밥을 다 먹은 이후 남은 음식을 먹어야 했다. 할머니 생신이면 명절처럼 온 식구가 다 모여야 했다.      


   몇 년 전부터 할머니의 건강이 안 좋아지자, 병수발을 들던 며느리들은 하나둘 지쳐갔다. 그럼에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던 집안 어른들은 부모를 요양병원에 보내는 건 ‘천하의 호로자식’이라며 며느리들의 희생을 강요했다. 표면적으로는 할머니를 내세우고 있었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안 하고 그저 혜택만 누리고 싶은 집안 어른들은 그걸 전통이자 예의로 치장했다. 이런 답답한 환경을 견디지 못한 큰 며느리는 20년 전 집을 나갔고, 둘째 며느리는 얼마 전 집을 나갔다. 그렇게 나는 큰어머니, 둘째 큰 어머니를 잃었다. 그리고 셋째 며느리인 우리 어머니만 홀로 덩그라니 남아 위태위태한 일상을 간신히 버티고 있다.     


   *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보면 김지영의 어머니가 등장한다. 이들은 지금보다 더 큰 차별과 압박 속에서 간신히 버텨온 세대다. 그 역시 시어머니로부터 온갖 구박과 핍박을 받아왔지만, 혹시라도 시집 간 딸이 자신과 비슷한 일을 겪을까 봐 늘 걱정의 눈초리로 김지영을 바라본다. 물론 김지영의 어머니의 고단한 삶은 우리 때문은 아니다. 30년 전 남자들이 ‘여자는 원래 이래야 한다’며 사회적 코르셋을 입힌 탓이다. 김지영의 어머니 세대는 가부장적 문화에, 온갖 불평등과 혐오에 닳고 닳아버렸다. 힘들게 살아온 김지영의 어머니 혹은 우리들의 어머니를 보며 느끼는 애잔함은 우리 사회의 아픈 부분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영화에 관한 여러 비판이 있지만, 그중 ‘실제로 힘들었던 건 김지영 세대가 아닌, 김지영 어머니 세대다’라는 주장이 있었다. 다만 그들이 그토록 애지중지하는 ‘김지영의 어머니 세대’는 지금 김지영의 30년 뒤 모습이다. 돌고 돌아 ‘82년생 김지영’의 삶에 다시 초점을 맞춰본다. 김지영의 어머니 세대는 인생의 막바지를 맞이하고 있지만, 김지영은 아직 살아갈 나날이 한참은 많이 남은 세대다. 우리는 어머니 세대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우리가 당장 바뀌지 않으면, 30년 뒤 우리 자식 세대도 힘겹게 살아가는 어머니 세대와 마주하게 된다. 자연스레, 우리는 과거에 물려받은 잘못된 관습과 통념을 고치기 위해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은 세대로 남으며, 우리가 마땅히 처리해야 할 설거짓거리를 다음 세대에게 넘겨주는 이들로 기억될 것이다.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어떤 세상을 만들어줄 것인가, 깊이 고민해봐야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