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겐 낯선 존재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저녁은 배달 음식을 먹기로 했다. 뭐 먹지- 여자친구와 나는 각자 휴대폰을 꺼내 배달 앱에서 열심히 메뉴를 찾았다. 이내 둘의 욕망을 모두 충족하는 음식을 골랐다. 오늘은 제가 살게요- 여자친구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더니 이내 주문을 끝냈다고 말했다.
40분쯤 지났을까, 예상 대기시간이 충분히 지난 거 같은데 아무 연락이 없어 여자친구에게 물어보았다. 아직 전화 안 왔지? 여자친구는 시간을 확인하더니, 이내 현관 문고리에 걸어놓았을 거라 대답했다. 무슨 말인가 싶어 현관문을 여니, 놀랍게도 배달 음식이 바깥 문고리에 걸려 있었다. 원래 배달 음식을 이렇게 시켜 먹냐는 질문에, 여자친구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결제야 앱으로 다 했고, 배달 요청 사항에 문고리에 걸어놓고 가달라고 적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여자친구에게 왜 직접 대면하지 않냐고 물어보려다, 이내 몇몇 이야기가 떠올랐다. 여자가 혼자 사는 경우, 항상 현관에 남자 구두 한 켤레를 놔둔다는 이야기. 택배나 배달 음식을 직접 받는 경우는 많지 않고, 혹여나 직접 받아야 하는 상황이 오면 온갖 걱정과 불안에 시달린다는 이야기. 간혹 누군가 집에 있는 것처럼 연기하는 일도 있다고 했다. 배달원 대부분이 건장한 남성이니, 여성이 혼자 사는 입장에서는 당연히 느낄 수 있는 감정이었다.
텅 빈 집, 낯선 성인 남자와 홀로 마주한다는 건 분명 두려운 일이었다. 꼭 범죄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번호를 알아낸 배달원이 일방적으로 연락했다는 이야기도 이미 인터넷에 많이 떠돌고 있었다. 안심번호라는 게 오로지 이러한 이유로 생긴 건 아니겠지만, 커다란 계기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모든 택배원을 나쁘게 보거나 의심할 순 없다. 대부분의 택배원은 선량했지만, 그와 별개로 여성이 느끼는 불안감은 분명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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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터치 몇 번이면 모든 걸 문 앞에서 받아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나 역시 온라인으로 각종 생활용품이나 식품을 많이 시키는 편이다. 다만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이 없다 보니 문 앞에 덩그러니 놓인 택배 상자를 만나는 일이 빈번했다. 어차피 택배를 직접 받는 게 큰 의미가 없긴 했다. 가끔 배달원을 마주칠 때가 있었지만, 위협을 느낀다거나 불안함이 느껴지진 않았다. 특히 배달 음식은 직접 받는 일이 많았기에, 문고리에 걸어두라 하고 뒤늦게 음식을 찾아가는 행위는 무척 낯설게 다가왔다.
배달원을 직접 마주하는 게 특별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배달원과 잘 마주치지 않으려는 여자친구의 모습을 보니 그조차도 내가 우리 사회에서 누리는 권리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 앞에 두고 가시면 됩니다. 누군가에겐 외출 중이라 어쩔 수 없이 하는 말이거나, 집에 있더라도 마주할 필요가 없기에 가볍게 하는 말이었다. 다만 누군가에겐, 낯선 존재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안전을 위해, 어쩌면 생존을 위해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간신히 내뱉는, 그런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