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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오 Aug 07. 2020

남자 직장동료가 바라본 육아휴직

현실은, 늘 극복해야 하는 무엇이기도 했다.

   지금 다니는 출판사는 나의 첫 직장이다. 다양한 대외활동을 했고 짧게나마 프리랜서의 삶을 살아봤지만, 제대로 된 사회생활은 회사에 들어온 후 시작되었다. 그만큼 회사에서 처음 만난 직장동료는 특별하게 다가왔다. 규모가 작은 회사의 경우라 더욱 그랬다. 내가 입사했을 때 직원은 두 명이 있었다. 두 분 다 여성이었고, 디자인 업무를 맡고 있었다. 한 분은 나보다 두 살이 많았고, 나보다 9개월 일찍 들어왔다. 다른 한 분은 나보다 한 살 적었고, 나보다 두 달 먼저 입사했다. 그렇게 나의 첫 직장생활은 디자이너 두 분과 함께 시작했다.     


   첫 출근 날, 나보다 두 살 많은 디자이너 선배님은 자리에 없었다. 다른 분께 들으니 얼마 전 결혼했고 막 신혼여행을 떠났다고 했다. 당시 나는 27살의 끝자락을 맞이하고 있었고, 첫 직장동료의 결혼이 문득 낯설게 다가왔다. 일주일 후 선배님은 신혼여행을 잘 마치고 돌아왔다. 그렇게 세 명이 모였고, 회사 일을 차근차근히 함께 해나갔다.    

 

   *     


   입사 후 첫 1년은 환상에 빠져 있었다. 당시 나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밥벌이를 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흠뻑 취해 있었다. 대표님과의 술자리가 늘 기다려졌고, 그곳에서 작가, 평론가, 문화기획자 등 글과 관련한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대학 시절 그토록 만나고 싶던 사람들이었기에, 한껏 들떠 있었다. 한편 직장동료들과의 관계는 그리 나쁘지 않았지만, 또 그리 좋지도 않았다. 회사 밖에서 만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고, 사무실에 있는 동안에도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받을 뿐, 인간적으로 가까워지진 않았다.     


   그러다 나보다 한 살 어린 디자이너분이 퇴사했다. 대표님은 외부 일정으로 자주 자리를 비우셨고, 사무실엔 디자이너 선배님과 나밖에 없었다. 이제까지 분담해서 주고받던 일을 오로지 둘이서 해내야 했다. 업무적으로 가까워지니 자연스레 인간적으로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사무실에 둘밖에 없었기에 자연스레 서로 의지하게 되었다. 회사에서 두 번째로 맞이하는 1년은, 동료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는 시기였다.     


   그렇게 또 1년이 흘렀고, 회사에서 세 번째 여름을 맞이하고 있다. 그동안 직원이 두 명이나 충원되었고, 허전하던 사무실은 점점 북적이기 시작했다. 다만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디자이너 선배님과의 유대감은 다른 직원들과 사뭇 달랐다. 처음 느껴보는 동료애였다.     


   *


   얼마 전, 선배님은 보금자리를 옮겼다. 신혼 때 구한 집이 아기를 키우기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라 했다. 조만간 임신 계획이 있다는 걸 자연스레 알아챌 수 있었다. 선배님은 결혼한 지 3년이 다 되어갔고, 평소 아기도 무척 좋아했기에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첫 직장동료가 결혼에 이어 아기를 가진다는 사실, 한 아이의 엄마가 된다는 사실은 무척 특별하게 다가왔다. 100일 때 예쁜 선물 사줘야지, 아직 존재하지도 않은 미래의 아이를 생각하며 홀로 싱글벙글 웃기도 했다.     


   다만 개인적으로 기쁘고 축하하는 것과 달리, 같은 회사에 다니는 직장동료로서 벌써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현재 회사에서 디자인, 제작 업무는 선배님이 온전히 담당하고 있는데, 육아휴직으로 자리를 비우면 당장 회사 업무에 큰 차질이 생길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자연스레 불안해졌다. 지금부터 인수인계를 조금씩 받아야 할까, 아니면 선배님이 자택 근무를 해야 할까, 휴직을 하더라도 6개월 뒤 출근을 해야 할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직원이 5명도 채 안 되는 회사, 3년간 손발을 맞춘 직원은 단 두 명이었다. 그중 한 명이 1년 넘게 회사를 나올 수 없다는 건 여러모로 큰 타격이었다.     


   육아휴직은 당연히 보장되어야 하는 권리였고, 아이를 낳으면 당연히 푹 쉬어야 했다. 다만 그 당연한 주장이 타인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로 넘어오자 많은 것이 복잡해졌다. 큰 기업들은 몇 년씩이나 보장되는 육아휴직, 우리처럼 자그마한 기업이라도 최소 6개월은 보장되는 게 맞았다. 하지만 그 이상은? 선배님은 나의 첫 직장동료이자 회사에서 가장 의지하는 사람이었지만, 그와 별개로 회사에 남은 이들은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여러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이게 현실이었다. 그리고 현실은, 늘 극복해야 하는 무엇이기도 했다.     


   *     


   아기를 가지고 싶을 때 가진다. 별다른 고민 없이 휴직을 신청한다. 건강한 아기를 낳고, 몸을 회복할 때까지 충분히 휴식을 취한 후 다시 회사로 복귀한다. 회사 역시 몇 년간 다닌 직원이 육아휴직을 신청해도 아무런 타격이 없다. 대체 인력을 곧장 구해서, 회사 업무에 아무런 차질이 없도록 만든다. 이후 충분한 휴식 후 복귀한 직원을 다시 반갑게 맞이한다. 그렇게 직원은 육아와 일 모두 부족함 없이 해내고, 회사 역시 아무런 공백 없이 애초 계획대로 잘 흘러간다.     


   이 모든 게 당연한 일이다. 다만 너무 당연하기 때문일까, 현실성이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임은 틀림없다. 한편으론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세상이기도 하다. 별다른 힘은 없지만, 선배님이 그 과정을 무사히 통과하도록 남자 직장동료로서 노력할 수 있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다. 여러모로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머리 맞대어 고민한다면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 그렇게 한 명의 여성이 아무런 눈치 보지 않고 육아휴직을 할 수 있을 때, 경력이 단절되지 않을 때, 아이를 낳고도 자기 일을 잘 해낼 수 있을 때, 조금은 나은 세상이 될지 모른다. 내 연인이, 주위 여자 후배들이, 어린 여동생이, 혹은 자식들이 좀 더 살 만한 세상을 맞이하기 위한 첫 걸음은 온갖 정책과 규율이 아닌, 남성 직장동료의 따스한 시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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