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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오 Aug 14. 2020

남자는 늘 욕망이 가득해야 했고, 나는 남자였다

한쪽으로 치우친 혈기왕성함은 때때로 폭발하곤 했다

   초등학교 시절, 내성적인 성격 탓에 친구가 얼마 없었다. 특히 이성에게는 더욱 낯을 가렸다. 그 탓에 편하게 인사하고 지내는 이성 친구들이 거의 없었다. 그렇게 6년을 꽉 채우고 중학교로 진학했다. 남자 중학교였다. 낯을 가릴 만한 이성마저 없는 환경이었다. 또 3년을 채우고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이번에도 남자 고등학교였다. 나는 남자로 가득한 환경에 점점 익숙해져 갔다. 다만 중학교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이성에 관한 호기심이 많을 10대 후반 남자들을 모아 놓은 장소는 늘 그렇듯, 조금씩 문제였다.     


   한쪽으로 치우친 혈기왕성함은 때때로 폭발하곤 했다. 바로 학교 축제였다. 서울과 한참은 떨어진 지방에 있는 데다 돈도 많지 않은 학교였기에 유명인이 오는 경우는 없었다. 대부분 인근 고등학교 댄스팀, 밴드 등이 공연을 하곤 했다. 그중에서는 근처 여자 고등학교에서 온 댄스팀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이 무대에 설 때면 강당은 환호 소리로 뒤덮이곤 했다. 얼마나 미친 듯이 열광하느냐에 따라 친구들 사이에선 얼마나 남자답고 재미있는가의 기준이 되곤 했다. 소위 좀 ‘논다는’ 애들이 어떻게든 댄스팀에 접근해 말을 붙이거나 번호라도 받으면, 그들은 한순간에 영웅이 되곤 했다.     


   남중, 남고를 나왔던 나는 별생각 없이 공대에 진학했다. 공대생끼리 모여 2박 3일간 오티를 갔는데, 마지막 날 밤 체육관에서 공연이 있었다. 남자들로 가득한 공간, 당연하다는 듯 무대는 여자 댄스팀으로 채워졌다. 몸에 딱 달라붙은 무대 의상과 이들의 몸짓에 남자들은 목이 터질 듯 소리를 질러댔다. 누구누구가 진짜 이쁘더라, 걔는 무슨 학과 몇 학번이래, 가운데 있던 그 애는 남친 없다는데. 공연이 끝나자 무대 위에 섰던 이들에 관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오갔다.     


   남들과 비슷한 시기에 군대에 갔다. 나와 비슷한 환경에서 나고 자란 이들과 뒤섞인 이들이 모였던 고등학교 시절과 달리, 완전히 새로운 환경이 펼쳐졌다. 고등학교 때는 아직 순수함이 묻어난 이들도 제법 있었는데, 이미 성인이 되고 대학이든 알바든 직장이든 사회를 조금씩이나마 맛본 이들이 모이니 이성에 관한 욕구는 차원이 달랐다. 단순한 호기심 차원을 넘어, 자신이 사회에 있을 때 얼마나 방탕하게 놀았는가에 따라 남자다움의 서열이 매겨졌다. 순수함은 아무런 필요가 없는 공간이었다. 언제 터질지 몰라 긴장하게 되는 건 전쟁만이 아니었다. 누군가 휴가를 다녀오면 물 잘 빼고 왔냐고 묻는 게 일상인 군대는, 이성에 대한 욕망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은 공간이었다.     


   물론 혈기왕성한 20대 남자들을 강제로 한 공간에 모으는 행위 자체에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없지만, 군대는 한편으론 이성에 대한 욕망으로 가득한 20대 남자들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공간이기도 했다. 인생에 대한 고민보다는 이성을 향한 욕구만이 가득한 곳, 그곳이 내가 느끼고 경험한 군대였다. 그저 환경만 탓하기엔, 여러모로 생각이 많아지는 지점이었다.      


   가끔 그런 욕망이 폭발하는 날이 있었다. 바로 위문공연이었다. 무대는 대부분 젊고 건강한 여성들로 채워졌다. 이들이 몸매를 훤히 드러낸 옷을 입고 몸을 거칠게 움직일 때면, 20대 남자들의 걸쭉한 환호 소리도 따라 움직였다. 마찬가지로 얼마나 미친 듯이 소리 지르고 좋아하느냐에 따라 남자다움의 기준이 매겨졌다. 고등학교 때처럼 공연팀의 번호를 받는 등의 행위는 없었지만, 군대라는 조직 특성상 어쩔 수 없을 뿐, 이들의 눈빛은 고등학교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처음엔 관심사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다만 관심사 차이라고 하기엔 대부분이 한쪽으로 몰리는 모습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 욕망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다만 고상함과 우아함 따윈 찾아볼 수 없는 욕망은 내게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자각할 때쯤엔, 나 역시 그들과 하나가 되어 댄스팀이 몸을 흔들 때마다 목이 부서질 듯 고함을 질러대고 있었다. 우리는 똑같은 욕망을 가진 존재들이야- 그들과 하나가 되니 머릿속은 더 이상 복잡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과 끈끈한 유대감이 형성되어 마음이 편해졌다. 남중-남고-공대-군대로 이어진 환경 속에서 늘 남자의 욕망에 관해 의문을 가졌던 나는, 결국 그 고민을 내려놓고 말았다. 그저 미친 듯이 열광하고 즐길 뿐이었다. 남자는 늘 욕망이 가득해야 했고, 나는 남자였다. 이 당연한 사실을 인정하고 나서야, 사회가 말하는 남자가 될 수 있었다. 그와 함께 나 자신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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