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정오 Dec 12. 2020

책을 기획할 때마다 나의 세상은 무너진다

나는 이제까지 얼마나 많은 것에 무심했는가

책을 기획하는 단계 혹은 출간을 제안하는 단계에서는 온갖 환상에 사로잡힌다. 책을 많이 팔고 싶다는 욕심, 편집자로서 유명해지고 싶다는 야망. 다만 이러한 감정들은 원고를 받는 과정에서 서서히 사라진다. 저자들의 아프고 진솔한 이야기는 숫자를 따지는 이성의 논리를 마비시킨다. 그렇게 욕심과 야망이 사라진 자리에는, 이 책은 어떻게든 세상 밖으로 나와야 한다는 절박함과 간절함으로 채워진다.


간신히 만든 책을 홍보하기 위해서 저자와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 책 주제와 관련된 활동을 하는 사람 혹은 기관, 단체 등을 찾아본다. 이 과정에서 간신히 형상을 유지하고 있던 나의 세상은 와장창 깨지고 만다. 책을 좋아하고, 더 나아가 책을 통해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 세상 밖으로 선보이는 편집자로서 그동안의 무지에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나는 이제까지 얼마나 편한 세상을 살아왔으며, 얼마나 많은 것에 무심했는가. 내가 바라보던 세계가 한없이 좁았다는 걸 깨닫는 순간, 내가 쌓아 올린 세상은 갈기갈기 찢어진다. 공들여 만들었던 나의 생각과 사상은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다. 


그렇게, 한 권의 책을 기획할 때마다 나의 세상은 무너지고, 하나의 세상이 새롭게 다가온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