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성이 전혀 없는 기획이 과연 어떤 힘이 있을까
원고 폴더를 열어 현재 작업하고 있는 여러 도서의 진행 상황을 확인한다. 아직 제목도 정해지지 않았고, 언제 어떤 형태로 세상 밖으로 나올지 모르는 글들이 여기저기 제멋대로 흩어져 있다. 저번 주까지 받기로 한 어느 원고는 아직 도착을 안 했고, 어느 원고는 계획보다 더 빨리 진행 중이라 출간 일정을 좀 더 앞당길 수 있을 것만 같다. 또 다른 원고는 두 달째 감감 무소식이다. 좋은 책을 만들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대신, 작업이 진행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어느 작가님에게는 원고 피드백과 격려 및 응원의 말을, 어느 작가님에게는 원고 독촉을, 또 어느 작가님에게는 안부 인사를 빙자한 압박을 보내기로 한다. 휴대폰을 꺼내 연락처를 검색한다. 회사에 들어오기 전에는 그저 높디높게만 느껴지던 작가라는 호칭이 수두룩하다. 네, 작가님. 편집자 박정오입니다. 잘 지내셨나요. 다름이 아니라...
대화를 주고받으며 자연스레 작가님들의 근황을 듣는다. 원고를 성실하게 쓰는 작가님도, 몇 달째 원고를 쓰지 못하는 작가님도 모두 정신이 없긴 마찬가지다. 항상 바쁘고, 예상하지 못한 버거운 일과 씨름하고 있다. 긴 통화를 마쳤지만 수확은 없다. 당장 원고를 보내겠다는 작가님은 단 한 명도 없고, 바쁨을 이유로 원고 마감을 늦춰달라는 부탁이 대부분이다. 이러다 책이 나올 수 있을까, 절로 한숨이 나온다. 결국 자세를 고쳐 앉으며 다시금 일을 시작하려 한다. 순간 머릿속에는 조금 전 들었던 이야기들이 둥둥 떠다닌다.
어느 작가님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농성장에 있었고, 동물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는 어느 작가님은 공판을 준비하고 있었다. 일상의 영역에 있는 작가님들의 상황도 만만치 않았다. 경력단절 여성들에 관한 이야기를 쓰는 작가님은 육아와 씨름하고 있었고, 임용고시라는 커다란 산을 지나온 이야기를 쓰는 작가님은 늦깎이 사회초년생으로서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들은 치열한 현장에서 혹은 버거운 일상 속에서 아등바등 발버둥치고 있었다. 이들이 있는 곳은 우아한 서재도, 안락한 카페도 아닌 각자 삶의 최전선이었다. 삶의 치열함은 늘 글의 생생함으로 이어지지만, 생생함이 묻어난 글의 창작자들은 삶이 바빠서 글을 쓸 시간이 없다. 이러한 아이러니 속에서 이들은 묵묵히 원고를 보내오고 있었다. 누군가는 추운 농성장에서 휴대폰으로 꾹꾹 눌러쓴 원고를, 누군가는 끔찍한 살육의 현장을 끊임없이 마주하는 고통 속에서 쓴 원고를 보냈다. 또 누군가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간신히 얻은 몇 시간 동안 쓴 원고를 보내왔고, 누군가는 매일 학생들과 씨름하는 퍽퍽한 현실 속에서 주말 내내 쓴 원고를 보내왔다. 반면 책을 쓰자고 제안한 편집자는 농성장에도, 시위 현장에도, 살육의 현장에도, 재판장에도, 육아 현장에도, 학교 현장에도 없었다. 그저 사무실에 편하게 앉아 모니터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러한 괴리감은 머릿속을 점점 복잡하게 만든다. 여성이 아닌데 여성에 관한 책을 기획하고 있고, 채식을 하고 있지 않은데 동물권에 관한 책을 만들고 있었다. 나는 현장실습생도 아니었고 비정규직 교육 노동자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들의 캠페인, 시위, 농성 등에 적극적으로 동참한 적도 없었다. 그 어떤 시위에도 참석하지 않은 채, 그저 책상에 앉아 사회 문제가 어떻고, 담론이 어떻고 탁상공론만 펼치고 있었다. 당사자성이 전혀 없는 기획이 과연 어떤 힘이 있을까. 더 나아가 이들의 목소리를 세상 밖으로 내놓을 자격이 스스로에게 조금이라도 있을까.
당사자성도 없는 데다 거리로 나갈 의지조차 없는 스스로를 원망해보지만, 엉덩이는 여전히 무겁기만 하다. 부끄러움과 창피함, 무기력함에 사로잡히지만, 애써 작가님들이 보내온 원고를 검토하고, 전체 원고의 방향에 맞는 글 소재 아이디어들을 정리해 다시 전달한다. 내게 원고를 보내오는 작가님들처럼 삶의 최전선에 설 용기는 없지만, 바쁜 일상 속에 치여 흩어지고 말았을 그들의 말과 글을 열심히 모으기로 한다. 거리에 당당히 나가지는 못하지만 각종 사회 문제와 개인의 절절한 아픔을 외면하지 않을 수는 있을 것이다. 최전선에서 투쟁하진 못하더라도, 행렬의 맨 끝에 서서 나만의 역할을 할 수는 있을 것이다. 느리지만 단단하게, 작가들의 입을 빌려 우리 사회에 필요한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오늘도 한 줌의 비겁함과 맞서 싸우며 다시금 원고 폴더를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