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정오 Jun 11. 2021

내가 만났던 아픈 세상은 무엇이었을까

책을 만들 때마다 절절하고 애달픈 세상과 마주했다

모든 게 얼어붙었던 지난 1년간, 찬 바람이 부는 세상과 달리 주식과 부동산은 활활 타올랐다. 처음 코로나가 확산되기 시작할 무렵 바닥을 찍었던 주가는 이후 두 차례의 대유행에도 계속해서 상승했다. 집값은 그보다 더 가파르게 올랐다. 이러한 소식을 계속 접하다 보면, 주식이나 부동산에 당장 뛰어들지 않으면 남들보다 뒤처지고 도태될 것만 같은 불안감에 사로잡힌다. 모두가 축제를 만끽하는 세상에서 주식과 부동산을 하지 않는 사람이 설 자리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러한 흐름에 맞춰 출판 시장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한 인터넷서점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출판 시장의 주요 키워드는 ‘돈’과 ‘재테크’였다. 성인 두 명 중 한 명이 1년간 책 한 권도 읽지 않는 현실에서 그나마 책을 읽는 이들의 관심마저 오로지 돈에 쏠린 셈이다. 물론 코로나가 세계를 휩쓸며 경제 상황을 예측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사람들이 투자 및 재테크에 관심을 보이는 건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주식과 부동산이 폭등하며 모든 사람의 이목이 한쪽에 쏠린 현실은, 책 만드는 일을 하는 나에겐 버겁고 혼란스럽게 다가왔다. 편집자는 독자가 원하는 책을 만들어 판매해 밥을 벌어 먹고 사는 존재다. 사회 흐름을 읽고 대중의 욕망을 파악하는 게 주 업무인 셈이다. 다만 코로나라는 전무후무한 재난을 맞아 누군가는 가파른 상승곡선에서 축제를 만끽할 때 나의 눈에는 전혀 다른 광경이 펼쳐졌다.


지난해 현장실습생 청년노동자 이야기를 담은 책을 기획했다. 책이 나온 시기는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 고(故) 김용균 씨의 2주기와 가까웠다. 이 비극적인 사고는 저자가 책을 쓰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당시 추모위원회에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었고,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이자 김용균재단의 이사장인 김미숙 씨는 단식 투쟁에 나서고 있었다. 많은 이의 노력 끝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지난 1월 간신히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반쪽짜리 법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책을 쥐고 있던 나의 눈에 비치는 건, 자식을 잃은 슬픔에도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기 위해 추운 겨울 33일간 단식 투쟁을 하는 한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한편 코로나로 교육 공백이 커지면서 방과후강사, 돌봄전담사, 교육복지사 등 학교 내 비정규직 노동자의 열악한 환경과 처우가 재조명되었다. 방과후강사의 진솔한 이야기를 담은 책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내가 알지 못했던 세상이 하나둘 눈에 들어왔다.


방과후강사들은 코로나 사태로 갑자기 수입이 사라져버렸다. 이들은 언제 다시 수업이 시작될지 몰라 다른 일을 구하지도 못한 채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었다. 또한 정규직이 아니라는 이유로 수입이 사라져도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있었다. 특기·적성 교육으로 시작해 무려 26년간 운영해온 학교 교육의 기둥인 방과후학교, 그곳을 굳건히 지키던 방과후강사들은 코로나 사태로 한순간에 무너지고 있었다.


책을 만들 때마다 절절하고 애달픈 세상과 마주했다. 이러한 모습은 앞서 말한 세상과 사뭇 다르게 다가왔다. 누군가 주식과 부동산으로 돈을 벌었다며 좋아하고 있을 때 누군가는 추운 겨울 단식 투쟁을 했으며 또 누군가는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어 생계 유지를 위해 발버둥치고 있었다. 누군가는 축제를 즐기고 있을 때, 다른 누군가는 그 화려함에 가려져 아파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주식과 부동산은 먼 나라의 이야기였고, 누군가에겐 이들의 아픔, 어쩌면 이들의 존재마저 먼 나라의 이야기였다.


편집자가 대중의 욕망을 읽고 그에 알맞은 책을 만드는 일을 한다면 사람들의 주목을 그다지 받지 못하는 청년노동자와 방과후강사의 이야기를 발굴하는 행위는 그다지 의미가 없어 보인다.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이야기가 담긴 책을 만들면 독자들이 반드시 관심 가져줄 거라는 믿음은,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며 점점 약해진다. 모두가 주식과 부동산을 바라보는 세상 속에, 돈과 전혀 관련 없는 책을 기획하는 건 그저 편집자 개인의 만족을 위한 행위로 보인다. 나는 대체 어떤 책을 기획해야 할까. 대중의 욕망과 저만치나 떨어진 이야기를 발굴하던 어느 편집자는 방향을 잃고 만다. 내가 만났던 아픈 세상은 무엇이었을까.


국제신문 <청년의 소리> 원문 링크 :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1700&key=20210310.22021002280

매거진의 이전글 한 줌의 비겁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