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적 작가 관찰 시점

출판사는 작가와 함께 성장한다

by 박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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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출판사는 작가와 함께 성장해야 해.
우리처럼 지역에 있는 자그마한 출판사는 더더욱 그렇지.”


A 작가님은 내가 회사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우리 출판사에서 책을 낸 저자였다. 책 작업을 할 때는 교류가 별로 없다가 출간 후 우연한 기회로 가까워졌다. 알고 보니 서울에서 편집자 경험이 있었고 관련 분야 인맥도 넓었다. 현재 대학원에서 일하며 출판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었다. 지역에 출판사도 얼마 없고 출판 관련 인프라도 없다 보니 교류할 사람이 없었는데, 무척 반갑게 느껴졌다.


어느 날 작가님께 연락이 왔다. 수상 소식이었다. 며칠 뒤 대표님과 셋이서 술자리를 가졌다. 수상 소식과 관련해 작가님 개인의 세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작가님은 소설을 무려 10년간 썼다고 했다. 그동안 열심히 글을 썼지만 좀처럼 뚜렷한 성과가 나오지 않아 답답했다고 했다. 그러다 이번에 상을 받은 후,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는 아내에게나, 늘 꿈을 지지해주는 지도교수님에게나 떳떳해질 수 있어서 기분이 무척 좋다고 했다. A 작가님은 올해 초 책을 한 권 냈고 연말에는 오랫동안 만나오던 연인과 결혼했다. 최근 음반 제작을 위해 진행한 소셜 펀딩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그리고 마지막은 이렇게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 올 한 해를 화려하게 마무리하고 있는 셈이다.


지역의 자그마한 출판사에서 일하다 보니 이미 사회적인 명성을 얻거나 지위가 높은 사람을 만나는 일이 좀처럼 없다. 그보다 신인 저자, 혹은 책을 한두 권 냈지만 그리 유명하지 않은 이들을 만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른바 '셀럽' 대열에 합류하지 못한, 책으로 사회적인 인정을 받지 못한, 아직 글 쓰는 일을 전업으로 하지 못하며 다른 일로 밥벌이를 하는 사람들이다.


- 지역 출판사에서 이른바 ‘셀럽’ 저자들과 작업하기 어려워. 작가들이 이왕이면 대형 출판사와 작업하려는 성향도 있고, 계약금이나 홍보 마케팅 비용 등 현실적인 문제도 있지.


책을 냈다고 해서 이들의 삶이 갑자기 확 바뀌지 않았다. 다만 출판이 계기가 되어 자신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에 확신을 가지곤 했다. B 작가님은 책이 나온 이후 여기저기서 자리를 만들어준 덕에 독자와의 만남을 여러 번 가졌다. 그때마다 자신이 소설가라는 걸 자각한다고 했다. C 작가님은 책이 나온 이후 경력단절 주부에서 떳떳하게 '작가'라는 타이틀을 달 수 있게 되었다. D 작가님은 자신이 열심히 공부한 결과물을 세상에 처음 선보였다. 반응이 좋았다. 이후 본격적으로 그 분야를 깊이 파고들며 열심히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 중에 유명한 사람은 없다. 베스트셀러 작가도 없다. 다만, 묵묵히 자기만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극적인 변화는 영화나 드라마 속에만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고 있다. 가끔 운이 좋아 한 번에 커다란 성취를 이루는 사람도 있지만, 오래 가는 경우는 많이 보지 못했다. 대부분 적지 않은 기간 무명의 시기를 보냈다. 나는 그 대부분의 삶과 만나고 있다. 훗날 이들이 유명해지더라도, 결코 혜성같이 등장한 게 아니라 한 걸음씩 착실히 밟아나갔기 때문이라는 걸 사람들 앞에서 말할 수 있는 입장이다.


- 지역 출판사는 유명하지 않은 기존의 저자 혹은 신인 저자를 발굴하며 새로운 콘텐츠를 만드는 경우가 많아. 그 책이 유명해지면 출판사도 그걸 바탕으로 다른 책을 기획할 기회가 생기는 거고, 저자 역시 다음 작품을 출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그렇게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성장하는 거지.”


이미 성공한 사람을 보는 게 아니라 그 과정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지금은 ‘셀럽’이라 부르는 저자들 역시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았다. 다들 생계 문제로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고, 글을 써도 돈이 안 된다는 사실에 좌절하는 순간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글을 썼다. 어느 출판사의 눈 밝은 편집자가 출간을 제안하며 우열곡절 끝에 첫 단행본이 나왔을 테다. 하지만 우리가 ‘셀럽’이라 생각하는 작가들 중 첫 책으로 유명해진 사람은 거의 없다. 오히려 이들은 잠깐의 성취 이후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수많은 사람들 틈에서 빛나는 존재였다. 그렇게 한 권 두 권이 쌓이며 저자도 유명해졌고, 그러한 책들은 출간하는 출판사 역시 인지도가 높아졌다. 그저 지금의 유명세만 보며 저자와 출판사를 평가하기엔 그 이면에 있는 이야기가 무척 많을 것이다.


서울에 있는 큰 출판사를 다녔다면 유명 저자들과 만날 기회가 비교적 많았을지도 모른다. 편집자로서 경력을 꾸준히 쌓아나가다 보면 그들과 작업하는 기회도 생겼을 테다. 다만 거기에는 극적인 요소가 별로 없지 않을까. 큰 출판사에서 유명 저자와 작업해서 낸 책이 잘 팔렸다고 한들, 숫자로 표기되는 성과 외에 스스로 배우고 느끼며 성취감을 가질 수 있는 부분은 작은 출판사에서 일하며 느끼는 것과 사뭇 다를지도 모른다.


반면 나는 지역의 자그마한 출판사에 다니고 있다. 앞으로 못해도 20년, 30년은 출판업에 몸을 담는다고 생각했을 때, 그때도 지금과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한 수준으로 일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반대로 이름만 들어도 아는 유명 저자를 발굴한 편집자가 되어있을 수도 있다. 이름 있는 저자들의 무명 시기를 바로 옆에서 지켜보았던 베테랑 출판인이 되어있을 수도 있다. 이들의 지난한 과정을 또렷이 목격한 산증인이 되는 셈이다. 이 얼마나 좋은 기회이자 특권인가. 안 되면 그만이다. 손해 볼 건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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