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운명(?)이 내 손에 달렸다니
“보도자료에 따라 같은 책이라도 수십만 권이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될 수도,
아니면 소리소문없이 사라질 수도 있다.”
최종 인쇄 넣었다는 디자이너의 말에 절로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이제 책은 인쇄제작에 들어갔다. 내 손을 완전히 떠난 셈이다. 걱정해봐야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별 사고 없이 무사히 나와 주길 바랄뿐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책을 인쇄하는 동안 띵가띵가 놀아도 되냐고 물으면, 다시금 한숨을 쉴 수밖에 없다. 기획부터 마케팅까지 그 멀고도 먼 여정 중에 겨우 전반전이 끝났을 뿐이다. 책 인쇄와 함께 후반 작업을 본격적으로 준비한다. 그 시작은 바로 보도자료 작성이다.
보도자료는 쉽게 말해 책 소개 자료다.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 책을 클릭하면 ‘책 소개’ 혹은 ‘출판사 서평’이라 적혀 있는 부분이다. 매년 수만 종의 책이 출간되고 있다. 서점 담당자들이 모든 책을 꼼꼼히 다 읽고 독자들에게 친절히 소개하면 가장 좋겠지만,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애정의 문제라기보다 물리적인 시간과 에너지의 한계다. 이러한 이유로 온, 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서점 담당자들은 대부분 출판사에서 보내주는 보도자료를 활용해 책을 평가한다. 어떤 책을 밀어줄 것인지, 어떻게 다뤄줄 것인지, 철저히 마케팅의 관점에서 판단한다. 마찬가지로 신간을 소개하는 각종 언론 역시 보도자료를 적극 활용한다. 책을 전혀 읽지 않아도 보도자료만 잘 활용하면 신간 소개 기사 몇 개쯤은 뚝딱 작성할 수 있을 정도다. 이토록 보도자료의 힘은 절대적이다. 보도자료에 따라 같은 책이라도 수십만 권이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될 수도, 아니면 소리소문없이 사라질 수도 있다. 그만큼 출간 프로세스의 기본적인 과정이기도 하면서 무척 중요한 작업이기도 한 셈이다.
우선 보도자료 양식 파일을 연다. 표지 이미지를 넣는다. 책 제목부터 저자, 판형, 페이지 수, 가격, ISBN 등을 차례차례 넣는다. 저자 소개, 목차, 추천사 등을 정리하며 우선 보도자료의 전반적인 틀을 만든다. 이제 책을 소개하는 글을 본격적으로 써야 한다. 텅 빈 백지 위 마우스 커서가 깜빡인다.
보도자료는 완전히 새로운 글을 쓴다기보다 책에 이미 쓰여 있는 글을 활용하여 작성하는 편이다. 작가가 왜 이 책을 썼는지, 어떤 내용을 어떻게 다루고자 했는지,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싶은지 등을 알아야 한다. 대부분 머리말과 나오는 말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다. 편집자에겐 최고의 소스인 셈이다. 물론 저자가 책과는 전혀 연관 없는 이야기만 구구절절 늘어놓았거나 중언부언으로 가득한 경우 편집자의 한숨이 절로 늘어난다. 혹시라도 저자가 워낙 심플한 걸 좋아해서 머리말을 겨우 몇 줄만 썼을 때, 그마저도 책 소개와 전혀 무관할 경우는 눈앞이 아득해진다.
이렇듯 재료를 구하기도 어렵지만, 괜찮은 재료가 있어도 보도자료를 작성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작가들의 피땀 어린 책을 고작 한두 페이지 안에 소개해야 한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써야 한다. 정보 전달 및 홍보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보도자료는 서평 혹은 독후감상문과 엄연히 다른 글이다. 책을 소개한다는 본연의 목적에 소홀하면 안 된다. 개인의 감상평은 개인이 간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품 사용 설명서에 제작자의 개인적인 후기가 담겨 있는 꼴이다. 하지만 너무 정보 전달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밋밋하다. 임팩트가 없다. 가전제품의 사용설명서라면 단순히 제품의 기능과 작동방법만 철저히 설명해주면 된다. 그런데 이건 책이 아닌가. 여기서 편집자의 고뇌가 시작된다. "심플하면서도 개성 있게", 대충 이런 느낌이다.
작품을 충분히 소개하면서 저자의 마음에 들어야 한다. 독자가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자극적인 카피, 공감할 만한 문구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이 사이에서 편집자의 욕망, 편집자의 글쓰기 따위가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다. 그럼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편집자가 써야 한다. 엉망이면 편집자의 책임이다. 결국 편집자는 보이진 않지만 뒤에서 항상 노력하고 책임져야 하는 존재인 셈이다. 글 쓰는 일을 하게 되어서 좋긴 했다. 분명 좋긴 한데, 모든 종류의 글쓰기가 마냥 즐겁고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이 당연한 사실도 모르고 지금의 직업을 선택했을 리는 없다. 이게 어려워서 진로 고민을 다시금 하게 될 일도 없을 테다. 그 정도는 아니다. 다만, 보도자료 쓰는 일이 이토록 어렵다는 것이다, 무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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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이나 썼다가 지우고, 고민하고 또 고민하길 반복해서 간신히 초안을 토해냈다. 하지만 대표님 손에 들어가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뜯어 고쳐질 테지. 내 손에서 나오는 글은 항상 이토록 가혹한 운명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걸까. 이제 일정상 대표님께 초안을 건네야만 한다. 아니면 책이 작가님께 전달되었는데도 인터넷에 검색이 안 되는 사태가 발생한다. 힘들게 만든 책인데 끝까지 잘 마무리해야 하지 않겠는가. 쭈뼛쭈뼛, 발걸음이 참 무겁다. 언제쯤 이 일에 능숙해 질려나.
- 대표님, 보도자료 초안입니다.
맥주 한 잔이 간절해지는 순간이다. 퇴근하면 곧장 마시러 가야겠다.
p.s --
보도자료 작성법에 관해선 출판사마다, 편집자마다 차이가 있다. 머리말 혹은 나오는 말을 참고해서 작성하는 경우도 있고, 본문 내용을 구체적으로 소개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작가에게 직접 써달라고 부탁할 때도 있고, 작가 인터뷰를 통해 작성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위에서 언급한 건 어디까지나 내가 일하고 있는 출판사가 쓰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