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에서,

나는 이 길을 쭉 걸어갈 수 있을까

by 박정오
다운로드.jpg

지난 10월, 각 지역 출판사에서 나온 도서를 전시 및 판매하는 일을 맡아 진행했다. 지난 가을에 열린 한국지역도서전에 참여하며 지역 출판사 이름들을 어렴풋이 눈에 익히긴 했다. 다만 내가 최근 구입한 책 목록만 보면 모두 수도권 혹은 파주에 있는 출판사에서 나온 책들이었다. 나는 지역 출판사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정작 다른 지역 출판사에서 나온 책들은 거의 읽지 않고 있었다. 그러니 이들의 이름이 서울에 있는 유명한 출판사보다 낯설게 느껴지는 건 당연했다. 다른 지역 출판사가 우리 출판사를 바라보는 관점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확신했다.


우선 지역별로 출판사 명단을 작성했다. 각 지역을 대표한다고 생각하는 출판사 위주로 정리했다. 이후 전시 및 판매로 쓸 출판사별 대표 도서를 검색했다. 인터넷 서점에서 출판사 링크를 클릭하면 해당 출판사에서 나온 도서 목록이 나왔다. 판매량 순으로 정렬하면 가히 '대표 도서'라고 할 만한 책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인터넷 서점에 접속해 책을 클릭하면 '세일즈 포인트가'가 옆에 표시 된다. 각 서점마다 측정하는 방식이나 기준이 다르지만, 세일즈 포인트가 높을수록 책 판매량이 높다는 것만은 동일했다. 천 단위로 올리는 것도 쉽지 않지만, 몇만 혹은 수십 만까지 올라가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베스트셀러' 대열에 합류한다고 볼 수 있다. 출판사별 대표 도서를 조사하다 보니 자연스레 그 책들의 세일즈 포인트를 확인하였다.


출판사에서 1년 남짓 일하며 출고를 하다 보니, 각 세일즈 포인트에 따라 그 책이 한 달에 대략 얼마나 나가는지 어렴풋이 파악이 되었다. 주관적이긴 했지만 영 엉터리는 아니었다. 그렇게 추론하니 대부분 지역 출판사가 책 판매 수익이 얼마 되지 않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럼에도 짧게는 몇년, 길게는 십수 년 동안 유지하고 있다는 건, 결국 외주나 용역 등 출판과는 사뭇 다른 일을 하거나 대표 개인이 다른 일로 번 돈을 쏟아붓고 있음을 의미했다. 당장 우리 출판사도 마찬가지였다. 더 나아가 대부분 지역 출판사가 우리와 비슷한 현실이라는 사실이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이게 책 만드는 사람들의 현실인 걸까. 수도권이나 파주에 있는 출판사라고 뭐 크게 다르겠냐마는, 그보다 더 혹독한 환경에서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착잡해졌다.


"중심부는 기존의 가치를 지키는 보루일 뿐 창조 공간이 못 됩니다. 인류 문명의 중심은 중심부가 아닌 항상 변방으로 이동했습니다."


"변방을 낙후되고 소멸해 가는 주변부로서가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의 전위로 읽어냄으로써 변방의 의미를 역전시키는 일이 과제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변방이 창조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결정적인 전제가 있습니다. 중심부에 대한 콤플렉스가 없어야 합니다. 중심부에 대한 콤플렉스가 청산되지 않는 한 변방은 결코 창조 공간이 되지 못합니다."


문득 신영복 선생님의 『담론』 속 글귀가 떠올랐다. 갓 입사했을 때만 해도 이 글귀들을 보면서 의욕을 불태웠던 거 같은데, 변방에서 큰일 한 번 내보겠다며, 출판계를 뒤흔들어 보겠다며 당찬 포부를 가진 채 한창 들떠있었던 거 같은데. 겨우 1년 만에 현실을 뼈저리게 느끼며 무기력함에 휩싸이고 말았다. 분명 맞는 말이고 또 멋있는 말이긴 한데, 왠지 모를 이질감이 느껴졌다. 저 말이 옳다는 걸 직접 증명해 보이고 싶었지만, 현실의 벽은 너무도 높았다. 이제 겨우 1년 남짓 일한 초짜 편집자뿐만 아니라, 십 년 혹은 이십 년 이상 이 분야에 종사한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의 가치와 신념을 함부로 평가할 수 없었지만, 세일즈 포인트가 구체적인 숫자로서 우리들의 위치를 말해주고 있었다. 어쩌면 지나칠 만큼 냉혹할 정도로.


우리가 지금 서 있는 이곳에서, 정녕 변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 내가 나아가고자 하는 길이 뿌연 안개로 뒤덮이는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길을 쭉 걸어갈 수 있을까. 변방에서,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꿈은 대체로 판타지에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