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지작만지작, 교정·교열의 세계

교정·교열과 윤문 사이에서

by 박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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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글을 윤문 수준으로 손보면서까지 보다 나은 상품을 만들 것인가,
아니면 상품의 완성도를 조금 낮추더라도
저자의 스타일, 문체를 전적으로 존중해줄 것인가.”


작가님께 원고를 받는다. 아직 누구에게도 공개되지 않은 원고라는 사실이 새삼 특별하게 느껴진다. 편집자만의 특권이다. 지금은 한글파일 상으로 있는 이 텍스트가 몇 개월 뒤 책의 형태로 나온다는 걸까.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이긴 하지만 뭔가 특별하다. 어떤 형태로 어떤 느낌의 책이 만들어질까, 상상의 나래가 펼쳐진다.


하지만 환상에 빠져있는 것도 잠시, 이내 교정·교열 작업을 시작한다. 네이버 국어사전에 보면 교정(矯正)은 ‘틀어지거나 잘못된 것을 바로잡음’이라 쓰여 있다. 교열(校閲)은 ‘문서나 원고를 읽으면서 잘못된 곳을 고쳐나가는 작업’이라 한다. 결국 공통점은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다는 것이다. 맞춤법 외에도 내용상으로 문제될 부분이 없는지 확인한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법정은 아니지만 가치 판단을 해야 한다. 흔히 검열(檢閱)이라 부르는 과정이다. 통상 이 과정을 합쳐서 교정·교열 작업이라 부른다.


교정·교열 작업은 쉽게 생각하면 무척 쉽고, 어렵게 생각하면 무척 어렵다. 작업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 바로 띄어쓰기다. 띄어쓰기가 있어야 하는 부분이 붙어 있거나, 붙어 있어야 하는 부분이 띄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때론 헷갈리는 부분도 있고 의미에 따라 달라지는 부분이 있다. 작가의 의도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도 있다.


띄어쓰기에 대해선 옳고 그름이 정해진 경우가 많다. 맞춤법 자체가 고정된 개념이 아닌 사회적 약속이자 합의다. 그렇다면 그 합의 내용을 참고하면 큰 문제가 없다. 의미에 따라 달라지는 부분 혹은 작가의 의도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는 저자에게 직접 연락해서 물어보면 된다. 띄어쓰기를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경우는 책 내부에서만 하나로 통일하면 된다.


다른 경우도 있다. 타자를 치는 과정에서 잘못 입력했거나 문장을 고치는 과정에서 주어와 동사, 시제 등이 맞지 않는 등 누가 봐도 틀린 건 알맞게 고치면 된다. 띄어쓰기와 마찬가지로 옳고 그름이 확실한 부분이다.


문제는 문장이 문법적으로 틀리진 않았지만 읽기에 어색한 경우다. 대표적으로 문장의 길이가 너무 길면 주어와 동사 찾기가 어렵고 이해 전달이 어렵다. 접속사와 조사 사용이 많으면 글이 지저분해 보인다. 수식어가 지나치게 많고 화려하거나 수동형 표현을 많이 쓰면 글이 난해해 보인다. 이러한 글을 발견하면 손이 근질근질해지기 시작한다. 긴 문장을 두세 문장으로 나누면 글이 훨씬 좋아질 것 같다. 단어 사이에 쉼표 하나만 추가해도 의미가 명확해지고 글이 확 살 것만 같다. 접속사, 조사 사용을 조금만 줄여도 글이 훨씬 깔끔하고 담백해질 것만 같다. 하지만 그 순간 교정·교열의 영역을 넘는다. 틀린 것을 바로잡는 걸 넘어 ‘윤문’ 작업이 되는 셈이다.


책은 엄연한 상품이다. 출판사는 작가의 글을 가공해 하나의 보기 좋은 상품을 만들어 독자에게 판매한다. 아무 결함이 없는 상품을 만드는 건 어렵지만, 그럼에도 최대한 독자에 맞춰 제작해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부딪힌다. 저자의 글을 윤문 수준으로 손보면서까지 보다 나은 상품을 만들 것인가, 아니면 상품의 완성도를 조금 낮추더라도 저자의 스타일, 문체를 전적으로 존중해줄 것인가.


이 부분에서 각 출판사마다, 각 편집자마다 나누어진다. 상품성을 높이기 위해 편집자가 적극 저자의 글을 수정하는 경우가 있다. 그 과정에서 저자와 치열하게 다투기도 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맞춤법의 경우 사회적 약속이기에 옳고 그름이 명백하지만 글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작가가 가진 고유한 권한 혹은 예술성보다 작품성, 상품성에 초점을 맞춘 선택이다. 반면 독자가 이해하기 힘든 부분 혹은 오해의 소지가 있는 부분을 제외하면 작가의 글을 그대로 두는 경우가 있다. 작가와 큰 트러블은 없다. 출간 이후 문제가 생길 여지가 적다. 작가의 예술성에 초점을 맞춘 선택이다.


글에는 정답이 없다. 그런 글이 모여 상품으로 만들어진 책 역시 정답이 없다. 어떤 책을 출판할 것인가 고민하는 출판사 역시 정답을 구하는 회사가 아니다. 이러한 선택마저 정답이 없다. 그러니 더욱 어려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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