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는 마케터 좀 안 뽑나

편집자는 책 만드는 존재다

by 박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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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에게 가장 중요한 건, 지금 시대가 원하는 책이 뭔지 파악하고
새로운 저자를 끊임없이 발굴하는 거야.
SNS 관리는 부차적인 거고."


회사에 들어와 처음 인수인계를 받았던 일은 'SNS 관리'였다. 이전에 여러 가지 활동을 하면서 나름의 경험도 있었고, 책과 관련된 콘텐츠를 제작하는 건 예전부터 하고 싶은 일이기도 했다. 회사 페이스북 관리자 권한을 받았다. 곧장 블로그와 함께 본격적인 SNS 활동을 시작했다. 회사에서 나온 책을 소개하는 콘텐츠, 좋은 글귀를 소개하는 콘텐츠, 책 추천, 편집자 서평 등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었다.


실제 내가 관리를 맡은 이후 SNS가 활성화되었다. 페이스북과 블로그가 재정비되었고 팔로우 숫자도 늘어났다. 사람들의 반응도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나 역시 덩달아 신이 났다. 들어온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이뤄낸 성과가 제법 만족스러웠다. 사람들이 ‘좋아요’를 누를 때마다 짜릿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만든 콘텐츠에 관심 가져 준다는 생각을 넘어 당장 인터넷 서점에 접속해 우리 출판사 책을 주문할 것만 같았다. 더 나아가, 내가 만든 콘텐츠가 네이버 메인에 노출된다거나 갑자기 엄청난 반응이 나타날 거란 허상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마치 중독이라도 된 것처럼, SNS 관리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SNS부터 확인했다. 하루에 하나만으론 부족했다. 오전에 하나, 그리고 퇴근 직전 오후에 하나, 하루에 두 개씩 올리기로 했다. 이전에 비하면 반응이 점점 많아지고 있었지만, 도저히 성에 차지 않았다. 욕심이 났다. 오히려 다른 큰 출판사 SNS에 올라오는 양질의 콘텐츠를 볼 때마다, 수천, 수만 개의 좋아요와 댓글을 볼 때마다 괜히 뒤처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대로 있을 수 없었다. 하루에 세 개를 올려야 할까. 아니, 그건 너무 많았다. 하나를 올리더라도 크게 터질만한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 꼭 우리 출판사 책과 관련되어야만 할까? 사람들이 좀 더 반응할만한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강연 내용 중 일부를 활용했다. 그래, 이런 콘텐츠라면 좋아요도 많이 받고 댓글도 많이 달릴 거야. 스스로 확신했다. 하지만 게시물을 올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대표님께 전화가 왔다.


-요즘 지인들이 SNS 관리 누가 하느냐고 묻더라고. 나보다 훨씬 젊은 감각으로 회사도 알리고 책도 홍보하고 있으니 분명 도움 되는 일이긴 해. 하지만 SNS 관리가 출판사 편집자의 주 업무가 될 순 없어.


내가 올린 콘텐츠는 우리 회사에서 나온 책과 전혀 관련이 없었다. 무엇보다 회사 이미지와도 전혀 맞지 않았다. 콘텐츠를 곧장 내릴 수밖에 없었다. '좋아요'를 많이 받고 싶다는 생각, 팔로우 숫자를 늘리고 싶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던 나는 그제야 멈췄다. 스스로를 돌이켜보았다. 분명 열심히는 했다. 퇴근 후에도 계속 SNS에 신경을 썼다. 하지만 그 방향이 조금 어긋나 있었다. 나는 책을 기획하고 만들러 왔지, SNS 관리를 하러 입사한 게 아니었다. SNS 홍보가 실제 판매량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고 하더라도, 편집자의 주 업무는 결코 아니었다.


-SNS 관리를 열심히 해서 회사 계정을 좋아요 몇 천, 몇 만 규모의 페이지로 만들면 좋긴 하지. 들어오자마자 그런 성과를 내는 게 쉬운 일도 아니고.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걸 놓치면 안 돼. 이 시대가 원하는 책이 무엇인지, 사람들은 어떤 책에 반응하는지, 새로운 저자를 어떤 방식으로 발굴할 건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게 편집자의 역할이야.


자그마한 성과에 혼자 신이나 잠시 잊고 있었던 걸까. 그러고 보니 나는 편집자였다. 이 직업에 대해 충분히 파악한 상태에서 입사한 건 아니었지만, 한동안 어깨너머로 지켜본 편집자의 역할 정도는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다만 알고 있음에도 내가 그동안 해왔던 일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내가 잘하고 성과를 낼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회피했던 것이다.


그 이후 SNS에 투자하는 시간과 에너지를 확 줄였다. 품을 최대한 적게 들이고 지속적으로 콘텐츠를 게시할 방법을 고안했고, 대부분 시간을 책 기획과 저자 발굴에 투자했다.


*


어느새 입사한 지 1년이 가까워졌다. 여전히 SNS 관리를 하고 있지만, 나의 주 업무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콘텐츠를 올리고 있다. 책을 기획하고, 교정 보고, 저자와 만나고, 공모사업을 기획 및 운영하고, 행사를 준비한다. 예전처럼 여유롭게 SNS 관리나 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그래서 너무 바쁘다 싶으면 며칠 손에서 완전히 놓을 때도 있다. 다시금 내가 들어오기 이전처럼 SNS가 조용해진 것이다.


-요즘 많이 바쁘지? 요 며칠 회사 SNS가 너무 조용하더라고. 내가 한 번씩 올릴 테니 신경 안 써도 돼.


퇴근 시간이 가까워질 무렵, 대표님이 오랜만에 SNS 관리에 대해 언급하셨다. 그리곤 먼저 퇴근하셨다. 신경 안 써도 될 리가 없었다. 나는 하던 일을 잠시 미루고 급하게 콘텐츠 하나를 만들었다. 페이스북에 게시했다. 오늘까지 끝내야 하는 일을 뒤늦게 마무리했다. 퇴근 시간은 훌쩍 지나있었다. 누가 SNS 관리를 대신 해줬으면 싶었다. 우리 회사는 마케터 좀 안 뽑나, 편집 일도 충분히 바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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