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 좀 주시지 말입니다

편집자란 무엇일까, 어떤 존재일까

by 박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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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이 안 좋아 원고 마감이 밀리는 저자, 그런 저자에게 하루에도 몇 번씩 연락하며 원고를 보채는 편집자. 출간 작업 내내 설렘보단 초조함과 불안함, 걱정 등의 감정이 대부분이었다.”


회사에 들어온 지 딱 한 달이 되었을 무렵, SNS에서 한 행사 홍보 글을 봤다. 우리 회사 저자 분의 북토크였다. 시작은 저녁 7시, 퇴근하고 곧장 지하철을 타면 아슬아슬하게 도착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다른 일정은 없었다. 다만 몸이 조금 피곤했다. 배가 고팠다. 행사에 참여하는 건 의무가 아니라 내 선택이었다. 회사에 적응한다고 정신이 없었다. 내게 필요한 건 좋은 강연이 아니라 휴식일지도 몰랐다. 얼굴을 비추고 인사드리러 간다고 하지만, 그것이 퇴근 후 몇 시간을 투자할 만한 일인지 확실한 판단이 서지 않았다. 이 전에 뵌 적도 없었고 당장 책 작업을 진행할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럼에도 꾸역꾸역 행사장으로 향하는 지하철에 몸을 맡겼다.


B 작가님의 책은 1년 전에 우리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새롭게 시작하는 소설선의 첫 번째 작품이기도 하고 작가님 역시 등단 10년 만에 처음으로 낸 단행본이기도 했다. 편집자이긴 하지만 아직 책 편집을 맡은 적이 없는 만큼 나는 독자에 가까웠다. 덕분에 순수하게 읽을 수 있었다. 소설집은 무척 재미있었다. 덩달아 이 소설을 쓴 B 작가님에게 관심이 갔다. 우리 회사 저자라서가 아니라 그냥 순수한 독자로서, 내가 감명 깊게 읽은 작품을 쓴 저자를 만나고 싶었다. 단지 내가 이 회사 편집자라는 이유 때문에 괜히 일의 연장선상이 아닐까 쓸데없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행사가 시작하자 피곤함은 금세 사라졌다. 오로지 책 속에서만 보단 작가님을 실제로 만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퇴고를 100번이나 한다니, 주위 세계를 그토록 세삼하게 관찰하다니,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놀라웠다. 이어서 책에 있는 작품 중 하나로 만든 연극이 상영되었다. 오로지 텍스트로만 읽었던 세계가 새롭게 펼쳐졌다. 소설이라는 하나의 새로운 세계, 그 속에서 누군가는 위로를 받고 감동을 받고 또 삶의 희망을 얻는다는 게 무척 신기했다. 책의 힘이 이토록 대단했다니, 무척 놀라웠다.


아직 회사에 들어온 지 한 달 밖에 되지 않았고 편집자가 어떤 일을 파악하는지도 정확히 모르는 새내기였다. 다만 내가 들어온 출판사에서 이토록 좋은 책을 냈고 그걸 바탕으로 연극으로 상영되며 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내가 직접 글을 쓰는 건 아니지만 작가와 독자가 만날 수 있도록 그 중간 지점을 만드는 것, 직접 감동을 주기보다 감동을 줄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드는 것, 그게 바로 출판사의 역할이자 편집자의 역할이 아닐까. 내가 이 어려운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보다 이토록 멋진 작업을 한다는 것에 대한 설렘이 더 강했다. 행사를 마치고 나오는 발걸음은 무척 가벼웠다. 피곤함은커녕 가슴이 벅찼다. 아, 회사 일을 너무 좋아하면 안 될 텐데, 큰일 이었다!


*


입사한 지 일 년이 다되어갈 무렵, B 작가님과 다시 만날 일이 생겼다. 작가님의 두 번째 단행본 작업이었다. 작가님이 그동안 신문 혹은 잡지에 쓴 칼럼을 모아 산문집을 출간하기로 했다. 갓 입사했을 때 작가님의 북토크에 참여했던 기억은 무척 특별하게 남아 있었다. 그래서인지 책 작업을 앞두고 기분이 묘했다. 이번엔 순수한 독자가 아닌 책을 만들어야 하는 편집자였다. 내가 당시 받았던 감동을 새로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다. 내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걱정과 설렘이 치열하게 다투고 있었다.


하지만 작업은 생각만큼 순탄치 않았다. 연말이 가까워질수록 회사가 점점 바빠졌다. 기존에 있는 출간 프로세스로 출간 작업을 진행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거기다 작가님의 건강 상태가 한동안 좋지 않았다. 작가님께 원고 전달을 받는 시간이 계속 늦어졌다. 그렇다고 출판사에서 원고를 하나하나 꼼꼼히 읽어보며 구체적인 구성을 잡을 여유는 없었다. 어쨌든 편집 작업은 작가님 손에서 완전히 떠나야 시작할 수 있다.


출간 일정이 다가올수록 마음이 점점 조급해졌다. 작가님께 몇 번씩이나 연락을 드리며 원고 마감 날짜를 말씀드렸지만 계속 늦춰지고 있었다. 작가님 건강 상태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고 출판사에서 무언가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더군다나 정해진 기간까지 반드시 제출해야 하는 책이었다. 회사 디자이너 분이 원고를 얼른 받아달라고 거듭 요청했다. 작업 기간이 적어지면 자연스레 업무 강도가 높아지거나 야근으로 이어지기 때문이었다. 책의 퀄리티 문제도 있었다. 원고를 늦게 받으면 디자인이든 그 후 교정이든 아무래도 빈틈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작가님께 연락을 드릴 때마다 ‘죄송하다’라는 말과 함께 시간을 조금만 더 달라는 답변만 받을 뿐이었다. 계속 보채는 것 같아 나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 출판사와 저자 사이에 끼여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래도 1년간 일하면서 편집자 업무에 조금이나마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나 보다.


*


우여곡절 끝에 책이 나왔다. 마감 날짜를 아슬아슬하게 지켰다. 출판사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나에게 커다란 동경을 심어준 작가님과 첫 작업은 그리 우아하지 않았다. 건강이 안 좋아 원고 마감이 밀리는 저자, 그런 저자에게 하루에도 몇 번씩 연락하며 원고를 보채는 편집자. 출간 작업 내내 설렘보단 초조함과 불안함, 걱정 등의 감정이 대부분이었다. 사무실에 도착한 책을 보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결국 무사히 출간되었구나, 힘이 빠졌다.


며칠이나 지났을까, 작가님 SNS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 이번에 나온 책에 관한 글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책이 나오게 되었는데, 몸이 좋지 않아 글에 대한 아쉬움이 많았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오게 된 책.

매번 약속한 날에 죄송하다, 문자 넣는 것이 내 일이었고

그때마다 출판사 편집자는 괜찮다, 괜찮다, 다독여줬다.

그 괜찮다는 말이 몹시도 두려워서 포기를 포기했다.”


기분이 참 묘했다. 편집자란 무엇일까, 어떤 존재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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