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환상을 심어주었던, 그 분 어디 가셨나
P 팀장님은 한 청년문화 관련 모임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P 팀장님은 문화기획 일을 하는 협동조합에서 팀장으로 재직 중이었다. 나이는 나보다 10살 정도 많았지만 청년 문화에 관심이 많았고 글에도 일가견이 있는 분이라 무척 인상적이었다. 더군다나 스스로를 ‘문화기획자’라 소개했다. 문화기획자라니, 얼마나 멋진 단어인가! P 팀장님 자체보단 문화기획자라는 직업에 더 관심이 갔다. 행사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걸로 먹고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걸까? 나도 그렇게 살고 싶었다. 아무래도 전공 공부는 영 재미없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밥벌이를 하면 참 좋을 거 같은데, 이미 그렇게 사는 사람이 눈앞에 있으니 무척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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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외활동을 많이 했더라도 활동에 대한 성과나 가치에만 만족하진 않았는가, 냉정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팀원들의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 누군가 노력을 했냐는 거죠. 우리에게 필요한 활동비가 얼마인지, 그리고 이걸 충당하기 위해서 어떤 걸 해야 하는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죠. 지원 사업이든 용역이든 자기만의 가치와 기준을 정해서 거기에 부합하면 돈을 벌기 위해 마땅히 해야 되요. 성과나 가치만 따진다면 평가받을 필요도 없고 대부분 박수 쳐주니 편하고 좋긴 해요. 하지만 직업이라 할 순 없어요. 굳이 따지자면 예술가에 가깝겠죠. 하지만 기획자라면 자금을 어떻게 마련하고, 자신의 가치를 어떻게 부연해야 하는지 치열하게 생각해야 해요.”
P 팀장을 처음 뵈고 정확히 1년 6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문화기획이라는 분야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각종 공모사업과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밥벌이로 만들기 위해 열심히 발버둥 쳤다. 문화기획자 흉내를 내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의 장벽은 너무도 높았다. 일이 많다는 건 정신이 없긴 하지만 어떻게든 버틸 수 있었다. 거기에 비해 경제적 문제는 의지만으로 해결되지 않았다. 월세와 공과금이 밀리기 시작했다. 돈이 없어서 그 좋아하던 헬스도 그만두었다. 술자리에 나가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노트북과 책 한 권 들고 카페에 온종일 죽치고 앉아 있는 게 유일한 낙이었는데 그마저도 점점 부담스러워졌다. 가치와 꿈을 그토록 부르짖었지만 그것이 내 경제적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했다. 27살의 끝자락을 맞이하는 내가 이토록 비참할 줄이야.
불면증은 내 삶을 갉아먹고 있었다. 하루하루 무기력함에 빠진 채 시간을 축내고 있었다. 그렇게 한 달을 보냈다.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절박한 마음에 다시금 사람을 만나기로 다짐했다. 꿈과 현실에 대한 생각을 묻고 다녔지만 사실은 내 진로 고민 상담이나 다름없었다. 여러 질문을 준비했지만 결국 요약하면 ‘저 대체 뭐 먹고 살아야 합니까?’였다. 이런 내 의도를 단번에 알아차린 걸까, P 팀장님의 한 마디 한 마디는 내 가슴을 후려 팠다.
“일반적으로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2~3년 동안 돈 한 푼 벌지 못하면서 묵묵히 공부해요. 그렇다면 자신이 하는 활동을 직업으로 만들기 위해선 훨씬 더 많이 고민하고 노력해야죠. 문화예술 영역에서 활동하는 사람을 보면 자신이 해왔던 것들에 대한 가치를 너무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있어요. 대학 학점을 다 포기하고 미친 듯이 했다면 충분히 그 영역에 시간과 노력을 썼다고 볼 수 있어요. 다만 학교에 다니면서 할 거 다 하고 남는 시간에 했다면 그건 대외활동에 가깝죠. 과연 직업으로 전환될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을 썼는지, 그만한 역량을 가지고 있는지 스스로 의문을 가져봐야 해요. 그저 남들보다 조금 더 잘하는 정도일 수도 있어요. 못해도 3년은 모든 것을 걸고 투자해야 일반적으로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과 맞먹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때가 되어야 비로소 직업이라는 개념이 조금씩 자리 잡는다고 생각해요.”
P 팀장님의 대답에 지난날의 모습들이 스쳐 지나갔다. 돈은 전혀 신경 쓰지 않으면서 오로지 가치만을 강조했던 모습이, 시스템에 대한 고민보다 언론의 주목이나 주위의 박수 소리에만 빠져 있었던 모습이, 나는 특별한 사람이라 확신하며 대기업, 공기업, 공무원 등을 준비하는 주위 사람을 평범하고 꿈이 없다며 비판했던 모습이, 어줍잖은 능력을 그럴 듯하게 포장하며 전문가 흉내를 냈던 모습이, 그런 모습들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대체 뭐 먹고 살면 좋을지 상담하러 왔다가 실컷 혼나는 기분이었다.
“전공을 살려 돈을 많이 버는 삶은 가치 때문에 걸리고, 가고 싶은 분야로 나아가는 건 두려움 때문에 걸린다고 봐요. 그럴 땐 한 가지를 선택 했을 때 각각 무엇을 잃게 되는지 비교해보면 돼요. 너무 세부적으로 하나하나 비교를 하면 어려울 거예요. 그냥 지금 이 순간 보고 판단하는 거예요. 정오 씨 같은 경우는 공모사업 몇 개를 진행하면서 조금 경험한 거로 알고 있어요. 생활하는 것만 해결하면 못해도 몇 년은 도전해보는 것도 괜찮을 거 같아요. 스스로 이 영역에서 활동하면서 얻는 자기성장 동력이나 가치적인 만족도가 충분히 높다고 하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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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롯이 P 팀장님의 한 마디에 내 진로를 결정한 건 아니었지만, 당시 인터뷰는 내가 고민을 끝내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우연한 기회로 지금의 회사에 들어왔다. 이후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회사 대표님과 P 팀장님은 벌써 몇 년 전부터 알고 지냈고 무척 가까운 사이라는 것. 집이 가까워 밤에 갑자기 불러내도 반바지에 슬리퍼를 질질 끌며 나오는 사이라고 했다. 우선 여기서 환상이 조금 깨졌다. 정장을 입고 강연을 해야 하는 분이 반바지에 슬리퍼라니. 거기다 일이 많아서 무지하게 바빠 보였다. 먹고 사는 문제로 여전히 고민이 많으셨다. 나름 부산에서는 유명한 분이고 한 분야의 전문가라서 진로 고민 같은 건 안 할 줄 알았는데. 또 환상이 깨졌다.
- 팀장님, 회의 늦으신다고요? 네, 알겠습니다...
최근 P 팀장님과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했다. 그런데 이 분, 바빠도 너무 바쁘다. 회의 때 하기로 약속한 일을 다음 회의 때까지 안 해오는 날도 있었다. 회의도 자주 늦었다. 나에게 ‘문화기획자’라는 환상을 심어주었던, 진지하게 내 진로 상담을 해주던 그 분은 어디 가셨나. 남은 환상마저 와장창 깨졌다. 물론 P 팀장님은 그대로인데 내가 제멋대로 만든 환상을 제멋대로 깨부순 거에 불과하다. 이제야 P 팀장님의 진짜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까워지긴 했나 보다. 그래도 이제 좀 그만 바쁘시죠, 팀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