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고 원고, 다 읽어보고 싶긴 한데...

투고 원고 검토가 우선순위에 오는 일은 좀처럼 없다

by 박정오
“수십, 수백 통의 작품이 쌓여 있는 원고 투고함. 분명 저 속에 보물이 있을 거라 믿는다. 미래의 베스트셀러, 혹은 이 시대를 대표하는 엄청난 책이 저 속에 꽁꽁 숨겨져 있을 테다.”


회사에 도착한다. 아슬아슬하게 출근시각을 지켰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사무실에 들어가 선배님께 인사를 한다. 가방을 자리에 두고 컴퓨터를 켠다. 그동안 주방으로 가서 차 한 잔을 내린다. 다시금 자리에 앉는다. 모니터 전원 버튼을 누른다. 모니터가 켜지는 바로 그 순간, 하루 업무가 시작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기지개를 켠다. 아, 일하기 싫다. 어제도 그랬고 이틀 전에도 그랬고 삼일 전에도 그랬고 한 달 전에도 그랬지만, 오늘도 여전히 일하기 싫구나.


회사 계정으로 로그인 한다. 밤새 메일이 많이 와있다. 가장 많은 건, 도서 주문서 팩스다. 오늘은 주문이 많이 들어왔으려나. 우리도 모르는 사이, 어떤 아이돌 가수가 자기 SNS 계정에 우리 책을 찍어 올렸으면, 그래서 정말 마법처럼 주문이 수백 권 들어와 있으면 좋겠다. 그럼 한동안은 돈 걱정 안 해도 되고, 우리가 만들고 싶은 책에 집중할 수 있을 텐데. 허무맹랑한 꿈은 불과 1분 안에 깨진다. 뭐야, 알라딘에서 겨우 2권, YES24에선 3권, 심지어 교보문고는 한 권도 없다. 그나마 유통업체 북센은 이것저것해서 15권이나 들어왔다. 오늘 성적이 영 좋지 않다. 우리 회사 책, 왜 이렇게 안 팔리냐. 책 팔아서 먹고살 수 있을까 싶다.


아침 출고 작업을 마친 후 나머지 메일을 확인한다. 광고메일을 제외하면 다음으로 많이 오는 게 바로 원고 투고 메일이다. 다른 메일과 헷갈릴 수 있으니, 우선 ‘2019 원고 투고’ 폴더로 옮긴다.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보면 좋겠지만, 오늘도 처리해야 하는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책 만드는 일을 하고 있지만, 투고 원고 검토가 우선순위에 오는 일은 좀처럼 없다. 이미 만들고 있는 책도 충분히 많고, 앞으로 만들기로 한 책도 줄을 서있다. 나도 글 읽는 거 좋아한다. 이왕이면 작가들이 한땀한땀 정성스레 쓴 원고를 여유롭게 읽으며 시간을 보내고 싶다. 앞서 말한 것처럼 한 아이돌 가수가 우리 회사 책을 SNS에 올려주면 그런 꿈같은 일이 일어날 것 같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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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돈’을 기준으로 나누어 보면, 돈을 받고 출판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 전자는 주로 시나 재단, 협회 등 기관가의 작업이다. 그쪽에서 원하는 책을 우리 회사를 통해 만드는 것이다. 상업적인 출판이라기보다 하나의 프로젝트 혹은 협업 형태에 가깝다. 거칠게 말하면 용역이다. 대부분 총서, 백서, 학술서 등이다. 주로 비매품으로 출간하는 편이고, 유통하는 경우에도 시장 반응이 별로 없는 편이다. 그리고 자가 개인이 자가 출판을 하는 경우도 있다. 미리 출판 비용을 지불하거나 책이 나오면 그중 일부를 할인된 가격에 대량 구매하는 형식이다. 또는 시나 재단에서 창작기금을 받아, 그 비용으로 출판을 하기도 한다.


반대로 출판사에서 1부터 100까지 돈을 투자하는 경우가 있다. 이미 여러 권의 책을 내어서 검증된 사람이거나 사회적 권위 혹은 인지도가 있어 책을 냈을 때 최소한의 판매량이 보장되는 사람이라면 출판사에서 과감히 투자한다. 다만 여기에도 들지 못하는 케이스가 있다. 콘텐츠는 좋지만 무명 저자라서 판매량이 보장되지 않은 경우다. 그럼에도 출간 작업을 진행하는 경우, 출판사로서는 일종의 모험에 가깝다. 몇 백만 원이나 되는 돈을 과감하게 투자하는 셈이다. 좋게 말하면 신인 저자 발굴이요, 나쁘게 말하면 도박이다.


출판사에 투고된 원고로 작업하는 건 이 마지막 케이스에 가깝다. 오로지 콘텐츠만 보고 일면식도 없는 저자와 출간 작업을 진행하는 건 위험 부담이 높은 일이다. 출판사가 돈이 많다면 그 부담을 안고서라도 몇 차례 시도할 수 있겠지만, 대형 출판사조차 투고 원고 중에 책을 내는 비율이 그리 크지 않을 테니, 결코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우리처럼 지역의 자그마한 출판사는 일 년에 내는 책이 몇 권 되지 않는다. 그 몇 권마저 재단 혹은 기관과 작업하는 경우가 많고, 그 나머지의 대부분은 자가 출판 혹은 기금을 받아서 내는 편이다. 즉 위험 부담을 안고 신인 저자를 발굴하는 기획 출판은 정말 몇 권 안 된다. 이 몇 권을 위해, 하고 싶지 않은 일로 돈을 벌어 회사를 유지하는 것이다. 정말 소중한 기회다. 단 한 번이라도 허투루 쓸 수 없다. 여기서 성과를 내지 못하면 회사가 몇 백만 원을 손해 보는 거고 이게 이어지면 회사가 일시적으로 휘청거릴 수 있다. 편집자 입장에서는 회사 돈이 들어간 프로젝트의 성과가 안 좋으면, 자연스레 다음 번 기획에 많은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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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글쓰기로는 밥벌이가 안 되는 현실 속에서, 글쓰기의 꿈을 가지고 있어도 대부분 다른 일로 생계 문제를 해결한다. 퇴근 후 아무것도 안 하고 푹 쉬고 싶은 마음을, 혹은 지인들과 술을 마시며 유흥에 빠지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며 기어코 책상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려야 하는, 글쓰기란 이토록 어려운 일이다. 더군다나 하나의 주제로 책 한 권 분량을 완성하는 건 더욱 힘든 일이다. 출간이 될 거라는 그 어떤 확신도 없는 그 불투명함에 자신과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붓는 행위는 심지어 고결함마저 느껴질 정도다.


다시금 원고 투고함을 확인한다. 이 모든 원고 하나하나가 그런 과정을 거쳐 우리 회사 메일 보관함까지 왔을 걸 생각하니 괜히 미안한 기분이다.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원고를 읽으려 하지만, 출간 날짜가 코앞에 다가왔음에도 교정이 완료되지 않은 원고를 읽는 것만 해도 충분히 벅차다. 이미 나온 책에 대한 마케팅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출간이 불투명한 원고를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건 사치에 가깝다. 책 제목이 무척 자극적이거나 책 소개가 무척 매혹적이면 간혹 내 시간을 희생해서라도 그런 사치를 부리긴 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메일함에 쌓인 원고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한 것은 틀림없다. 다만 그와 별개로 나는 주어진 일을 무사히 해내야 하는 직장인이다. 나는 이 간극 사이에서 늘 맴돌 수밖에 없다.


수십, 수백 통의 작품이 쌓여 있는 원고 투고함. 분명 저 속에 보물이 있을 거라 믿는다. 미래의 베스트셀러, 혹은 이 시대를 대표하는 엄청난 책이 저 속에 꽁꽁 숨겨져 있을 테다. 그 보물을 찾아내는 편집자가 이왕이면 내가 되었으면 싶지만, 지금 회사 업무도 감당이 안 되기 직전이다. 내게 맡겨진 일도 제대로 해내지 못한 채 마냥 보물만 찾을 순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내가 아닌 다른 편집자라도 그 보물을 꼭 찾아주었으면 싶다. 회사가 여유로울 때 원고 투고가 왔는데, 마침 책 내용이 자신의 관심사와 맞고, 그때 마침 회사 사정이 괜찮아서 위험 부담을 안고 출간 작업을 하는, 그런 우연과 우연이 겹쳐서 그 책이 꼭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으면 좋겠다.


그 책이 베스트셀러 자리에 떡 하니 있는 걸 확인하면, 개인적으로는 편집자의 자질을 스스로 의심하며 아쉬움에 잠 못 이루겠지. 어떻게든 시간을 쪼개서 투고 원고를 검토하지 않았던 나의 게으름을, 이 콘텐츠는 반응이 있을 거라며 용기 내 제안하지 못한 그 비겁함을 다시금 새삼 깨닫게 되지 않을까. 그래도 세상에 좋은 책 한 권이 더 나온 거니 좋은 일이다. 내 손에서 나왔다면 베스트셀러는커녕 오히려 그 누구에도 알려지지 못한 채 묻혔을 수도 있다. 그러니 오히려 잘 된 일이다. 나처럼 실력 없는 편집자의 눈에 들지 않아 오히려 잘 된 일이다. 그럴 것이다. 그럴 거라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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