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출판사와 지역 독서모임의 콜라보라, 그림이 참 좋긴 한데...
“요즘 회사 일이 너무 바빠요. 저도 주말에 개인 약속을 잡거나 집에서 푹 쉬고 싶습니다. 형도 주말에 가족끼리 맛있는 거 먹고 좋은 데 놀러가고 하면 서로 좋잖아요?”
이번 주 토요일, K 형이 우리 출판사 저자를 모시고 북토크를 진행한다고 한다. 행사를 며칠 앞둔 시점, K 형에게 연락이 왔다. 정오도 올 거지? 편집자로서 참 애매한 지점이다. 우리 회사 행사는 아니라 참석이 의무는 아니다. 다만 K 형이 현재 운영 중인 독서모임에서 우리 회사 저자를 모시고 특강을 진행한다니 너무도 감사한 일이다. 우리는 하고 싶어도 여력이 없어서 못하는 일을, 오히려 자기 비용을 들이며 애써 해주고 있으니 말이다. 고맙다. 정말 고맙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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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형은 대학교 2학년 때 처음 만났다. 아니, 정확히 말해 만났다고 한다. 책 관련 설문 조사 때문에 나한테 책도 주고 이야기도 제법 나누었다고 하는데,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당시 책에 빠져들던 시기였는데, 너무 빠져들어 눈이 멀어버렸는지 책만 보이고 사람은 보이지 않았나 보다. K 형과 본격적으로 가까워진 건 대학을 갓 졸업했을 때였다. 당시 인터뷰 단체를 만들어 운영할 만큼 인터뷰 활동을 왕성하게 하고 있었다. K 형에게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냈다. 저는 이런이런 사람인데, 이러한 취지로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그렇게 몇 년 만에 재회했다. 물론 내게는 처음 보는 사람으로 느껴졌지만.
K 형은 소위 ‘대외활동’의 개념이 만들어질 때쯤 부산을 넘어 전국 규모의 대외활동을 했다. 단순히 참가자에서 그치는 걸 넘어 회장까지 맡았다고 한다. 부산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기에 서울에 있는 학교에 교환학생을 신청하며 학교생활과 대외활동을 병행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도 충분히 대단한 일인데, 당시 서울에서 진행되던 동아리 홍보 박람회를 부산에 가지고 내려오더니 그대로 정착시켰다. 이어서 부산에 있는 기업을 알리기 위한 대외활동을 만들었다. 단순히 일회성 행사 혹은 활동을 넘어, 약 1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는 부산의 대표 대외활동으로 자리 잡은 상태다. 그야말로 대외활동의 조상님이자 전설이었다.
한창 대외활동에 빠져 있던 당시, K 형에 대한 얘기는 주위에서 많이 들었던 상태였다. 대략 아는 얘기였지만 인터뷰를 진행하며 자세히 들으니 새삼 놀라웠다. 하지만 K 형은 어느 순간 자취를 감추었다. 부모님의 물려받은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동안 해왔던 일과는 전혀 연관이 없었다. 거기다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낳으니 좀처럼 근황을 들을 기회가 없었다. 그토록 부산에서 날고 기던 전설이었는데, 결국 현실과 타협하고 만 걸까. K 형의 과거 얘기를 들으며 괜히 씁쓸해졌다. 대외활동 경험을 살려 문화기획 활동을 계속 해나가려던 나는 현실의 무게감을 다시금 느껴야만 했다.
“내 꿈이 뭘까.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잘하는 걸까. 이러한 것들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러다 29살 때 깨달은 게, 꿈은 찾는 게 아니라 만드는 무언가라는 거예요. 즉 Find가 아닌 Make라는 의미이죠. 만약 Find라면 한번 찾았던 꿈을 포기하는 순간 곧바로 버려야 하는데, Make라면 잠깐 포기해도 다시 또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해서 20대에 꿨던 꿈을 당장 이루지 못해도, 30대에 새로운 꿈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인터뷰 말미, K 형의 말은 내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K 형에게 30대의 새로운 꿈은 ‘독서모임 운영’이었다. 예전부터 지인들과 소박하게 운영하던 독서모임을 몇 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기획 및 운영하며 규모를 키워가고 있었다. 대외활동에 푹 빠져들며 커다란 성과도 내며 승승장구 하다가 현실 문제로 잠깐 주춤했지만, 새로운 꿈을 다시금 이어나가고 있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아마 내 진로 고민에도 제법 커다란 영향을 끼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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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출판사 편집자 직함을 달게 되었다. 처음 몇 달은 시키는 것만 하는 것도 벅차 다른 생각은 전혀 할 수 없었다. 그러다 차츰 여유가 생겼다. 그제야 주위를 둘러보았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K 형이었다. K 형의 독서모임은 해가 지날수록 규모가 눈에 띄게 커지고 있었다. 대여섯 개를 운영하던 모임이 스무 개를 훌쩍 넘어갔다. 단순한 모임을 넘어 책 커뮤니티로 나아가고 있었다. 부산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 중인 독서모임이라 확신했다. 마침 출판사 편집자로 책 만드는 일을 하고 있으니, 함께 해볼 만한 게 있지 않을까 싶었다.
대표님께 K 형을 소개시켜드린 후 본격적으로 우리 출판사와 K 형이 운영하는 독서모임이 연계해 몇몇 프로그램과 행사를 기획하기 시작했다. 출판사는 지역에 있는 저자를 소개시켜주고 독서모임에서 진행할 만한 책을 추천해주거나 지원해주었다. 독서모임은 그 책으로 모임을 진행하거나 저자와의 만남 등 각종 프로그램 및 행사를 진행했다. 지역의 출판사와 독서모임이 만나 새로운 모델을 만들고 있는, 신선하고 독특한 모델이었다.
대외활동의 전설을 만나고 싶어 인터뷰 요청을 했고, 덕분에 K 형과 인연이 다시 시작되었다. 꿈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던 모습은 취업, 결혼 등의 문제로 결국 현실과 타협할 수밖에 없었던 모습과 무척 대조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대조는 독서모임을 운영하며 새로운 꿈을 향해 나아가는 K 형의 모습을 더욱 빛나게 해주었다. 나 역시 쉽지 않은 과정을 거치며 새로운 길을 찾게 되었고, 한때 방황하던 두 남자는 독서모임 대표와 출판사 편집자로서 다시금 만나게 되었다. K 형이 취업과 결혼 문제로 그동안 해오던 활동을 그만뒀을 때, 내가 경제적 문제에 부딪혀 여기저기 원서를 넣으며 진로 문제로 불면증에 시달릴 때, 이러한 모습을 예상이나 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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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형, 열심히 해도 너무 열심히 한다. 한 달에 진행하는 모임이랑 특강이 대체 몇 개인지 모르겠다. 저번에는 주말 이틀 동안 강연을 세 개나 진행하기도 했다. 우리 출판사와 K 형이 운영하는 독서모임의 유대 관계가 끈끈해질수록 우리 출판사 책으로 진행하는 행사 및 프로그램의 개수가 늘어났다. 지역 출판사와 지역 독서모임의 콜라보라, 그림이 참 좋다. 의미도 있고 나름 재미있을 거 같기도 하다. 그렇긴 한데...
정오도 올 거지? 라니. K 형에게 저 말을 듣는 순간, 우리 둘은 형 동생 관계가 아닌 비즈니스 관계로 바뀐다. 기껏 우리 책도 홍보해주고 행사도 준비해주는데 얼굴조차 비치지 않는 건 아무래도 좀 그렇다. 이번 행사에 참석하는 건 협업 관계인 독서모임에 대한 당연한 예의이기도 하다. 네, 형. 참석해야죠! 결국 미루고 미루던 답장을 보낸다. 내 황금 같은 주말의 일부가 사라지는 순간이다. 엄연히 말하면 회사 일이 아니니 야근 수당을 청구하거나 대체 휴무를 쓸 수도 없다. 기껏해야 개인 SNS에 후기를 쓰며 나의 노고를 대표님께 간접적으로 전달할 수밖에. 형!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기도 좋고 출판사 입장에서 정말 고마운데... 제 입장도 조금 생각해주시죠. 요즘 회사 일이 너무 바빠요. 저도 주말에 개인 약속을 잡거나 집에서 푹 쉬고 싶습니다. 형도 주말에 가족끼리 맛있는 거 먹고 좋은 데 놀러가고 하면 서로 좋잖아요? 그러니 쉬엄쉬엄 합시다,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