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약속은 지키셔야죠. 자꾸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그동안 아마추어 세계에서 글 쓰고 인터뷰를 하면서 내가 뭐라도 되는 마냥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었던 게 아닐까. 내가 있는 곳은 이제 프로의 세계였다. 좋은 의도만을 가지고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 나의 부족함과 서투름이 합리화될 순 없었다. 이후 글에 대해 그 누구보다 철저해지자며 홀로 다짐했다.”
회사에 들어온 지 이제 겨우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 대표님이 ‘외부편집위원회의’를 새롭게 만들어 운영하기로 했다. 문화기획, 웹툰, 일본 문화, 독서모임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출판 콘텐츠를 기획하는 회의였다. 대부분 대표님이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문화예술 분야에서 왕성하게 활동 중인 사람들이었다.
그중 독특한 직함을 가진 분이 있었다. 대표님이 서로 소개를 시켜주었다. 여기는 이번에 들어온 박정오 편집자라고. 그리고 이쪽인 대학 교수이자 문학 평론가. 그렇게 처음 인사를 나누었다. 문학 평론가. 무척 신비롭게 느껴지는 단어였다. 간혹 소설을 읽고 나면 뒤쪽에 소설에 대한 해설을 쓴 사람 직함이 ‘문학 평론가’라 적힌 걸 보긴 했었다. 그럼에도 무척 낯설게 느껴지는 직함이었다. 무려 문학 평론가라니! 문학 평론가를 실제로 만나는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만나 봬서 영광입니다! 악수를 하며 속으로만 외쳤다.
- 요즘 회사 SNS 누가 관리합니까?
- 아, 정오가 하고 있는데.
- 뭔가 좀 다르더라고요. 역시, 젊은 감각이네요.
회의를 마치고 회사 근처 술집으로 향하는 길, 대표님과 평론가님 사이에서 걷고 있다가 의도치 않은 칭찬을 받았다. 초면에 이렇게 칭찬을 해주다니, 그것도 문학 평론가라는 분이! 두 번째 영광이었다.
- 그런데 이번에 B 작가님 북토크 홍보 글에 작가님 이름을 잘못 썼더라고요. 작가님이 직접 댓글을 다셨던데...
그걸 봤다는 말인가. 급하게 수정을 해서 일단락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왜 하필 대표님 앞에서 그 얘기를 꺼내시는 거지. 순간 민망해졌다. 방금 두 번째 영광이라 한 거, 취소다. 그러다 A 평론가님이 갑자기 퇴고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얼마 전 한 매체에 원고를 보냈다고 한다. 이 정도면 되겠지 싶을 정도로 열심히 썼고 수정도 많이 했지만, 보내기 직전에 보니까 또 고칠 부분이 있었다고 했다. 학교 수업을 한다고 쉬는 시간에 짬짬이 고치고 또 고쳤다고 한다. 그렇게 간신히 글 한 편을 마무리해서 결국 마감 몇 분 전에 아슬아슬하게 메일을 보냈다는 것이다.
뭔가 다른 세계의 이야기처럼 들렸다. 개인 SNS를 오랫동안 운영하면서 나 역시 글을 많이 쓰는 편이지만, 퇴고는 거의 안 하는 편이었다. 한 번 글을 쓰고 나면 끝이었다. 그게 예술가답다고 확신했다. 암, 예술가에게 수정은 무슨. 그런데 A 평론가님은 겨우 원고 한 편을 쓰면서 그렇게나 많이 고치고 또 고친다고 하니, 나의 글쓰기 습관과 너무도 비교되었다. 만난 지 겨우 두 시간 밖에 안 되었고 어떤 분인지 잘 모르겠지만, 글에 대해선 무척 엄격하고 철저한 사람이 아닐까 싶었다. 그게 A 평론가님에 대한 첫 인상이었다.
*
A 평론가님과 작업하는 경우가 종종 생겼다. 글에 대한 철저함과 엄격함은 늘 좋은 면만 있지 않았다. 우선 원고 전달이 항상 늦었다. 약속한 날짜에 맞춰 원고를 받는 경우가 좀처럼 없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원고가 도착하지 않아 연락을 드리면, 요즘 너무 바빠서 원고 전달이 늦어질 거 같다며, 미안하다는 답변이 왔다. 며칠만 늦어지면 그나마 괜찮았지만, 몇 주가 늦어져 회사 일정에도 커다란 차질이 생기기도 했다. 계획한 일정이 틀어지면 전체적으로 일이 딜레이 되거나 일이 한 번에 몰리며 과도한 업무 혹은 야근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한 번은 글이 몇 달이나 밀려 결국 장문의 문자를 보낸 적도 있었다.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은 적도 있었는데, 작업이 다 끝나고 한 술자리에서 후일담이 나왔다. 원고가 계속 밀려 미안해서 일부러 전화를 안 받았다고 했다.
글을 금방금방 쓰고 별다른 수정 없이 곧장 보내는 타입이라면 이런 일이 발생할 이유가 없었다. 글의 퀄리티가 높아질수록 작가가 글을 쓰는데 드는 시간과 에너지, 노력 역시 커질 수밖에 없다. A 평론가님과 작업을 하며 저자와 디자이너 사이에 끼여 난감한 상황이 펼쳐진 경우가 많았지만, 그래서 속으로 부글부글 끓은 적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A 평론가님의 글을 받고 나면 그런 불평불만이 사라지곤 했다. 글이 너무 좋았다. 이 정도 퀄리티의 글을 받기 위해선 그만큼 기다린 보람이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쨌든 원고 마감 압박을 하며 어떻게든 정해진 기간 내에 원고를 받아내야 하는 편집자 입장에서는 함께 작업하기 썩 좋은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순수하게 글을 좋아하는 글쟁이의 입장에선 달랐다. A 평론가님을 동경의 시선으로 바라보곤 했다. 와, 어떻게 글을 이렇게나 잘 쓰지. 나와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글을 보며 절로 숙연해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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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A 평론가님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대학 시절부터 인터뷰를 꾸준히 해오긴 했지만, 전문적으로 인터뷰를 배우진 않았기에 조금 걱정이 되었다. 인터뷰는 약 한 시간 정도 진행되었다. 2~3주가 지난 후 콘텐츠를 열심히 가공했다. 글에 대해 무척 철저한 분인 만큼 몇 번이고 퇴고하고 수정했다. 잔뜩 긴장한 채 정리한 글을 A 평론가님께 보냈다. 돈 받고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내가 좋아서 한 일인데, 왜 이렇게까지 긴장하는 걸까 싶었다.
좋은 의도를 가지고 한 일이었지만, 글을 다루는 사람을 취재하고 콘텐츠를 가공하면서 좀 더 철저하지 못했다. 기본적인 사실관계 확인을 제대로 못했다거나, 인터뷰 질문이 빈약했다거나, 좀 더 꼼꼼히 퇴고를 하지 못하는 등 결함이 많았다. 그 탓에 둘 다 얼큰하게 취한 어느 술자리에서 따끔한 피드백을 받기도 했다. 그때 정신이 번쩍 들었다. 글을 다루는 일에 커다란 경각심이 생겼다. 그동안 아마추어 세계에서 글 쓰고 인터뷰를 하면서 내가 뭐라도 되는 마냥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었던 게 아닐까. 내가 있는 곳은 이제 프로의 세계였다. 좋은 의도만을 가지고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 나의 부족함과 서투름이 합리화될 순 없었다. 이후 글에 대해 그 누구보다 철저해지자며 홀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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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A 평론가님에게 좋은 소식이 들리곤 했다. 첫 평론집이 출간이 되기도 전에 기획안과 원고만으로 우수출판도서로 선정되는 쾌거를 맛보았다. 그렇게 나온 책으로 또 서울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그 외에도 여기저기서 평론과 관련한 여러 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종종 듣곤 했다. 우리 회사 저자이기도 하고 또 개인적으로도 자주 만나며 가까워진 사이라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저 정도로 글에 대해 철저하고 엄격한 분이라면, 저 정도 글쓰기 실력을 가진 분이라면 충분히 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글쓰기 실력과 유명세가 비례한다고 하면, 오히려 내 기준에서는 좀 더 많은 상을 받고 좀 더 유명해져야 하는 사람이었다.
지역의 자그마한 출판사에 다니다 보면 첫 책을 출간하며 긴 여정의 첫발을 디디는 작가들을 자주 만난다. 글을 써도 돈이 안 되는 현실에 맞서,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주위 걱정에 맞서, 현재 밥벌이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의 그 간극을 버티며 자기만의 속도로 한 걸음 한 걸음 착실히 밟아나가고 있는 정말 멋진 분들이다. A 평론가님은 그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A 평론가님의 지난한 과정을 때론 가까이서, 때론 멀리서 지켜보고 있다. 험난한 길을 꿋꿋이 걸어가고 있는 모습, 온갖 어려움에 맞서 당당히 자신의 가치와 역량을 증명하고 있는 모습을 하나하나 눈에 담아두고 있다.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그 무엇보다 값진 경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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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 쌤, 도저히 시간이 안 나서 원고 정리를 못했네요. 대표님이랑은 얘기했는데, 다음번에 넣기로 했습니다. 많이 기다리셨을 텐데... 미안합니다.
책을 내기 전에 출간 비용을 지원 받는 한 사업에 A 평론가님의 원고를 넣기로 결정했었다. 그동안 각종 매체에 연재한 글을 모아서 보내주면 회사에서 마저 정리해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공모 마감이 코앞까지 다가올 때까지 원고를 안 주시더니, 끝내 하루 전에 이렇게 연락이 온 것이다.
- 아, 아닙니다. 그럼 다음번에 넣으면 되죠, 뭐.
순간 두 가지 감정이 뒤엉켰다. 또 이렇게 원고를 제날짜에 안 주는 모습을 보며 치밀어 오르는 분노, 한편으론 A 평론가님의 멋진 글을 감상하지 못했다는 아쉬움. 전자가 편집자로서 느낀 감정이었다면 후자는 독자로서 느낀 감정이었다. A 평론가님은 항상 이런 식이다. 또 이렇게 편집자와 독자 사이를 방황하게 만든다.
평론가님. 글도 정말 잘 쓰시고, 자기 분야에 전문성을 더하면서 한 걸음씩 착실히 단계를 밟아나는 것도, 글에 대해 무척 엄격한 것도 정말 많이 배우긴 하는데... 그래도 약속은 지키셔야죠. 자꾸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그건 그렇고 이번에 상금 받으셨던데, 대표님이랑 셋이서 술 한잔 안 합니까? 평론가님이랑 술 마시면 항상 밤늦게까지 얼큰하게 마셔서 다음 날 너무 힘들긴 한데, 사실 너무 재미있습니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평론이란 무엇인가, 지역에서 비평을 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캬... 배우고 느끼는 게 참 많답니다. 그러니 조만간 맛있는 거 사주시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