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있어야 책을 만들지

책 만들려면 계산기를 열심히 두드려야 한다

by 박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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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냥 편하게 책 만들고 싶고, 되도록 펀딩 같은 거 안 하고 싶다.
그런데 어떡하는가, 돈이 있어야 책을 만들지.”


회사에 들어오고 총 세 번의 소셜 펀딩을 기획했다. 첫 펀딩은 우리 회사에서 야심 차게 준비한 페미니즘 도서였다. 처음으로 도전하는 번역서이기도 했다. 내가 입사하기 전부터 기획하고 있었고 편집 작업을 진행할 때쯤 아직 입사 초기라 내게 주어진 일이 별로 없었다. 다만 책 내용이 좋아 독자들의 반응이 제법 있을 거라 확신했기에, 이 책에 대해선 편집자가 아닌 마케터 역할을 하기로 다짐한 것이다. 첫 펀딩 준비라 미숙한 점이 많았지만 제법 괜찮은 성과를 냈다. 목표 금액의 200%를 넘기며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사전 홍보의 효과도 있었지만 경제적으로 큰 도움이 되었다. 번역서의 경우 판권을 사고 번역 작업을 해야 하기에 일반 도서에 비해 비용이 더 많이 들었다. 펀딩이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마냥 좋아하고 있었지만 알고 보니 초기 비용을 완전히 회수하진 못했다. 책 만드는 데 돈이 그렇게나 많이 드는지, 그제야 깨달았다.


두 번째 펀딩은 내가 처음으로 책임 편집을 맡은 책이었다. 펀딩을 진행한 가장 큰 이유는 돈이었다. 신인 저자 발굴은 그 취지나 의미는 좋지만, 사실 출판사 입장에서는 위험 부담이 무척 큰 작업이었다. 이미 몇 권의 책을 출간하며 팬덤이 어느 정도 형성되어 있는 작가들이 책을 써도 잘 팔리지 않는데, 하물며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무명 저자의 책을 누가 선택하겠는가. 정말 콘텐츠 하나만으로 승부를 봐야 하는데, 모든 승부에는 늘 위험이 따랐다. 콘텐츠에만 의존하는 승부는 위험 부담이 더욱 컸다.


펀딩은 목표 금액의 150%를 채우며 마무리되었다. 저자의 지인들 혹은 출판사를 응원해주는 사람들 위주로 펀딩에 참여해준 거 같아 마음 한구석이 괜히 불편했다.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펀딩을 성공해도 겨우 저자 인세, 종이값, 인쇄비용만 아슬아슬하게 충당할 정도였다. 철저히 비용으로만 따지면 이 책 작업을 맡은 편집자와 디자이너는 재능기부를 한 셈이다. 물론 이 정도면 선방이긴 했다.


세 번째 펀딩은 내가 두 번째로 책임 편집을 맡은 책으로 진행했다. 이유는 앞서 말한 것처럼 신인 저자 발굴에 따른 위험부담을 줄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두 번의 경험에도 펀딩 준비는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책 소개 자료, 책 이미지, 리워드 구성, 그리고 홍보 전략까지. 책 한 권을 기획하고 출간하는데 쓰이는 에너지가 다른 책에 비해 훨씬 많이 들었다. 그럼에도 별다른 경력이 없는 편집자가 신인 저자를 발굴하는데 최소한의 비용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냉정하게 말해 출판사에서 그 책을 출간할 이유는 눈곱만큼도 없어진다. 나는 그 눈곱만큼의 가능성을 만들기 위해 책임편집을 맡을 때마다 펀딩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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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 권을 만들기 위해선 최소 몇 백만 원이 든다. 저자한테 인세도 주고 종이도 사고 인쇄소에 결제도 해줘야 한다. 창고에 보관하는 것도 돈이고 유통하는 것도 다 돈이다. 그 책을 만든다고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쏟은 편집자와 디자이너도 월급을 받아야 한다. 이걸 고려하지 않으면 그야말로 땅 파서 장사하는 셈이다. 의미 있고 뜻 깊은 일을 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비용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기획 출판인 경우 출판사 차원에서 투자를 하는 개념이기에 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게 얼마나 좋은 콘텐츠인지, 우리가 하는 일에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지와 별개로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려야 한다. 이게 현실이었고 회사가 돌아가는 논리였다. 출판사는 봉사 단체도 사회적 기업도 아닌,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이었다.


펀딩이 무사히 마무리될 때마다 힘이 빠진다. 절로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대박이 난 적은 없다. 최소한의 선방만 했을 뿐이지만 이마저도 참 쉽지 않다. 그냥 내가 생각하는 좋은 콘텐츠를 편하게 책으로 만들 수 있으면 가장 좋겠지만, 현실의 문법은 달랐다. 펀딩을 통해 초기 비용을 마련하는 과정은 이러한 현실의 문법을 그 무엇보다 명쾌하게 설명해줬다. 출판사는 책 만드는 일을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책을 기획해서 세상에 내놓는 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생각해야 하는 것도 많고 극복해야 할 현실적 어려움도 많다. 걱정이 끊이지 않는다. 결국 출판사는 이러한 열악한 조건 속에서 간신히 만든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는 일을 한다. 그 핵심에 편집자가 있다고 한다. 그게 내가 선택한 편집자라는 직업의 무게란 말인가. 혹시 나, 직업을 잘못 선택한 건 아닐까.


어느 출판 관련 강연에 참석하니, 소셜 펀딩이 새로운 출판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했다. 지역 출판사들이 적극 여기에 뛰어들며 새로운 해법을 찾고 있으며, 이는 좋은 현상이라 말했다. 글쎄, 맞는 말이긴 했다. 사회가 빠르게 변하는 만큼 회사는 거기에 열심히 따라가야 한다. 하지만 새로운 플랫폼이고 새로운 마케팅 전략이고 뭐고, 모르겠다. 무려 세 번의 펀딩을 진행했지만, 개인적인 입장에선 다 돈 때문이다. 뭔가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서도 아니었고 새로운 성공 사례를 남기기 위해서도, 편집자로서 인정받고 싶어서도 아니었다. 그냥 내가 만들고 싶은 책이 있는데 돈이 필요해서 어쩔 수 없이 한 거다. 나도 그냥 편하게 책 만들고 싶고, 되도록 펀딩 같은 거 안 하고 싶다. 그런데 어떡하는가, 돈이 있어야 책을 만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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