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대표님 관찰일지

고달픈 대표보단 어설픈 직장인이 더 좋은 법!

by 박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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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걱정에 급급하고 계산기 두드리는 게 대표라는 자리라면, 매력적이긴 커녕 그야말로 헬이다, 헬. 그냥 꼬박꼬박 월급 받으면서 시키는 일만 하는 게 더 편하고 즐거울 것만 같다. 암, 그렇고말고.


오늘 대표님이 두 시에 오신다고 하셨으니, 그때까진 쉬엄쉬엄 일하기로 했다. 음악을 크게 틀고, 보조 의자를 하나 가져와 다리를 턱 올린다. 여유 있게 인터넷 서핑을 한다. 정치 기사부터 생활 기사, 연애 기사까지. SNS도 페이스북부터 시작해 블로그, 인스타그램, 브런치까지 쭉 한 바퀴 돌린다. 사무실에 딴 짓 하는 거만큼 재미난 건 없다. 정말 놀면서 돈 버는 기분이다. 시간도 잘 간다. 그러다 대표님이 불쑥 등장한다. 두 시가 되려면 아직 십 분 남았는데, 차가 안 막히셨나. 원래는 두 시에 오신다고 하면 세 시쯤에 도착하는 편인데. 급히 음악을 줄이고, 자세를 바로 하고, 인터넷 창을 닫는다. 순식간에 열일 모드에 들어간다. 눈알이 빠질 듯 모니터를 바라본다. 한숨을 연신 푹푹 내쉰다. 정오 요즘 일이 많지? 아, 아닙니다! 대표님의 격려에 멋쩍게 웃으며 급히 대답한다. 이 얼마나 바람직한 사장과 직장인의 관계인가. 사기극은 이토록 훈훈하게 마무리된다.


대표님이 자리에 앉는다. 컴퓨터를 켠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계산기 두드리는 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울려 퍼진다. 돈이 오가는 소리들이다. 작가들 인세를 정리하고, 인쇄소나 종이 회사에 밀린 결제를 처리하고, 전자세금계산서를 발행한다. 그중 우리에게 주는 월급도 있다. 여기저기 전화를 한다. 재단, 기관, 서점 등에 전화해 돈을 입금해달라고 요청한다. 이제야 한숨 돌리려던 차, 자리에서 일어난다. 조금 있다 강연이 있다고 한다. 그 후 미팅 하나가 있다고 한다. 아마 계약 관련 미팅이겠지. 그렇게 돈 관련 업무를 마치면 또 다시 돈을 벌기 위해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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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은 어릴 때 음악 활동을 했다고 한다. 그때 만든 음반이 한국 100대 명반에 선정되었다. 음악 활동을 마치고 대학원에 입학해 사회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고, 졸업 후 문화기획 일을 하면서 전국적으로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내기도 했다. 몇 권의 책을 집필했는데, 내는 책마다 세종도서를 비롯해 여기저기서 상을 받았다. 출판에 대한 경험 없이 무작정 1인 출판사로 시작했는데 10년 넘게 운영하며 지역의 이름 있는 출판사로 자리매김했다.


음악가, 사회학자, 문화기획자, 작가, 그리고 출판인. 대표님은 다양한 이력을 가지고 있었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고 다양한 직업 혹은 직함을 거쳐 왔는데, 발자국 하나하나가 묵직했다. 많은 것에 도전했고 대부분 커다란 성과로 이어졌다. 이러한 것들이 과거형이라고 하기엔 지금도 다양한 분야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대학에 수업을 나가시며 학회 활동도 꾸준히 하고, 방송에도 출연하고, 라디오 녹음도 하고, 여기저기 원고도 쓰고, 강연, 교육 프로그램, 창업 멘토링, 심사 등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 일정은 몇 년째 소화하고 있다. 그 여러 가지 해내는 능력이든, 그만한 에너지를 여전히 유지하는 거든 입이 쩍 벌어질 만큼 대단한 분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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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회사에 발을 디딜 때, 동경의 시선으로 대표님을 바라보았다. 평소 멘토 혹은 롤모델이란 단어를 싫어했음에도 새로운 멘토이자 롤모델이 생긴 것이다. 노동자가 자본가를 롤모델로 삼는 우스꽝스러운 일이 펼쳐졌다. 마르크스가 절로 한숨을 내쉴 풍경이자, 라보에티가 말하는 ‘자발적 복종’에 딱 들어맞는 모습이었다.


시간이 지나며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편집자와 디자이너가 책 만드는 일을 한다면 대표님은 책을 만들기 위한 세계를 만들고 유지하며 개척하는 데 대부분의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 여기저기서 사람을 만나고 다녔다. 돈이 될 만한 일을 구해왔다. 계약서에 도장을 쿵쿵 찍어댔다. 대표님이 구해온 일거리가 우리 앞에 던져지면, 각자 역할을 분담하며 그 일을 진행했다. 그동안 대표님은 또 다른 일을 구하러 다녔다. 덕분에 회사에는 돈이 계속 흘렀다. 흐른다는 건 공급이든 수요든 어느 한 쪽에 막힘이 없는 상태다. 물은 높낮이만 있으면 흐르지만 돈은 그렇지 않았다. 누군가는 그 흐름을 유지하기 위해 피땀을 흘려야만 했다. 여느 회사가 그렇듯, 우리 회사 역시 대표님이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계산기를 열심히 두드리는 일.


그럼에도 지역의 자그마한 출판사이다 보니 매출이 그리 높지 않다. 책 만드는 일로만은 도저히 회사 운영비용이 충당되지 않아 여기저기 공모사업도 진행하지만, 회사 재정 상태는 여전히 여유롭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대표님은 지난 10년 동안 회사에서 월급을 가져간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한다. 오히려 다른 일을 통해 열심히 돈을 벌어 투자하기 급급했다. 회사 사정이 안 좋으면 대출도 받고 여기저기 돈도 빌리러 다니는 일도 다반사였다. 직원들 월급이 밀리지 않기 위해 주위 사람에게 아쉬운 소리나 하고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그런 존재가 정녕 대표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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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 개인에 초점을 맞춰도 삶의 질이 그다지 높지 않았다. 직원들에게 줄 월급을 벌고 회사를 유지하기 위한 돈을 버는 것 외에도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한 명의 가장으로서 다른 수입이 있어야 했다. 그러니 강연, 심사 등 외부 활동으로 무척 바빴다. 낮에는 외부 활동을 하고 저녁이 되어서야 사무실에 들어와 다시금 잡무를 처리하곤 했다. 평일은 물론 주말도 이런 일상이었고, 공휴일에 사무실에 나오는 것도 다반사였다. 취미 생활은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바빠 보였다. 1년 365일 정신없어 보였다. 책 읽고 글 쓰는 일을 그 무엇보다 좋아해서 회사까지 만들어 그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데, 오히려 그 일을 한다고 책 읽고 글 쓰는 시간이 없었다. 작심하고 책을 쓴 게 5년 전이 마지막이라 했다. 작가로서 슬럼프라면 슬럼프였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무려 10년 동안 꾸준히 출판사를 운영하며 책을 만들고 있는, 지역에 몇 없는 출판사 대표. 이제까지 쓴 책이 대부분 상을 받았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학회 활동도 꾸준히 하고, 라디오 및 방송 활동도 왕성하게 하고 있는, 글이면 글, 말이면 말, 다 되는 만능인. 이게 내가 처음 회사에 들어올 때 바라봤던 대표님의 모습이자, 현재 미디어 및 주위 사람에게 비치고 있는 대표님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매일 돈 걱정에 주름살이 늘어가고, 저녁이 되어도 퇴근은커녕 오히려 사무실에 출근하고, 직원들 월급날이 가까워지면 계산기 두드리기 급급한 모습이, 그 아래 감춰진 실상이었다. 화려함의 그 이면에서 열심히 발버둥 치는 모습이기도 했다.


처음 출판계에 발을 디뎠을 땐 나 역시 훗날 출판사를 운영하겠다며 의지를 불태웠는데, 대표님의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다 보면 그런 생각이 싹 사라졌다. 그냥 월급 받으면서 시키는 일만 열심히 하는, 딱 이 정도가 좋은 것 같다. 너무 바빠서 취미 생활은 엄두도 못 내고, 회사에서 돈도 못 가져가고, 사무실에 들어오면 하기 싫은 일이 잔뜩 쌓여있는 일상은 아무래도 끔찍하다. 우리 중 책 만드는 일과 가장 거리가 먼 일을 하는 사람은 아무래도 대표님이었다.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하는 일에 둘러싸여 있는 사람 역시 우리보단 아무래도 대표님 쪽이 더 가까웠다. 직원들이 책 만드는 일에 익숙해지고 능숙해질수록, 대표님은 오히려 책 만드는 일과 거리가 멀어지고 있었다. 돈 걱정에 급급하고 계산기 두드리는 게 대표라는 자리라면, 매력적이긴 커녕 그야말로 헬이다, 헬. 그냥 꼬박꼬박 월급 받으면서 시키는 일만 하는 게 더 편하고 즐거울 것만 같다. 암, 그렇고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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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 이거 띄어쓰기 오타가 진짜 많네... 정오야 바빠?


대표님이 교정을 보기로 한 원고 상태가 영 좋지 않은가 보다. 책을 기획하는 것보다, 낑낑거리며 택배를 옮기는 것보다, 계산기를 두드리는 것보다 더 따분하고 재미없는 일은 교정·교열이라 확신한다. 편집자 일을 몇 년 하다 보면 교정·교열이 적정 수준까진 어렵지 않게 도달할 수 있다. 오히려 노하우나 경험이 있어도 절대적인 노력과 에너지, 시간이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또한 책을 출간하기 위해선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교정·교열만큼 하고 싶지 않아도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은 없다. 그런데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다. 대표님이 이 어렵고 힘든 일을 나에게 떠넘기려 하는 듯한 기미가 보인다.


- 아, 북토크 홍보도 해야 하고, 이번에 나온 신간 마케팅안도 작성해야 하고, 공모사업 기획서도 써야 하고...


저 일을 받는 순간 내 일정이 완전히 뒤엉키고 만다는 생각에, 그 뒤엉킴을 풀기 위해선 또 몇 날 며칠을 내가 고생해야 한다는 확신에, 현재 맡고 있는 일을 한 번에 열거하며 대답했다. 조금 전까지 한가하게 SNS를 하던 내 손이 갑자기 바빠지기 시작했다. 대표님인 반반씩 나누자고 하신다. 그것도 어렵다고 했다. 더 바쁜 척을 한다. 이때 전화가 한 통 오면 딱 인데! 지금 오는 전화라면 제아무리 번거로운 전화라도 곱게 받을 자신이 있다. 아니, 나를 갑자기 바쁘게 만들어줄 업무 하나를 탁 던져줬으면 싶었다.


그렇게 대표님과 암묵적인 밀당이 진행되었다. 입사 결정이 되던 그 날, 당시의 밀당과 사뭇 대조된다. 일을 주려는 자와 그 일을 받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는 자의 싸움이 시작된다.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기지개 한 번 펴지 않고 오로지 모니터에만 집중했다. 그러면서 일이 힘든 척 연거푸 한숨을 내쉬었다. 시간이 흘렀다. 마침내 퇴근시각이 다가왔다. 얼른 짐을 챙겼다. 내가 저 일을 받으면 대표님이 다른 일을 하거나 휴식을 좀 취할 수 있겠지만, 나도 충분히 바쁘다. 내 코가 석 자다. 잠깐 하다 말 게 아니라면 페이스 조절을 해야 한다. 저 일을 받을 수 없는 게 현재 내 페이스다. 암, 그렇고말고.


- 대표님, 저 먼저 퇴근해보겠습니다.


회사를 나선다. 오늘 하루도 고생했구나. 맥주나 한 잔 할까? 여기저기 카톡을 보내 본다. 일이 다 끝나지 않아도 먼저 퇴근할 수 있는 건 역시나 대표가 아닌 직원이다. 아무래도 이쪽이 더 행복하고 또 여유롭다. 역시 대표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닌 거 같다. 고달픈 대표보단 어설픈 직장인이 더 좋다. 고로 대표는 할 게 못 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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