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봐도 뭔가 이상했다. 야, 나도 고민 많다고.
- 연봉 많으면 뭐하냐. 답답해서 미치겠다.
나를 놀리는 건지, 아니면 진심인 건지. 하지만 A의 표정과 눈빛은 평소와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장난기가 전혀 없었다. 먹고 사는 일이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A는 유난히도 힘들어 보였다. 연봉이 많으면 힘들지 않을 거라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걸까. A와 소주잔을 기울였다. 조금 전까지는 달기만 하던 소주가 유난히도 쓰게 느껴졌다.
대학 시절 내내 붙어 다니던 친구들은 대부분 대기업에 다니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은 대학 졸업과 동시에 대기업에 취업했다. 당시 나는 국제시장 안에 있는 한 카페에서 붕어빵을 굽고 있었다. 한 달에 50만 원으로 생활했다. 그 해 여름, 또 한 명이 마찬가지로 대기업에 취업했다. 나는 같은 카페에서, 이번엔 팥빙수를 만들고 있었다. 여전히 한 달에 50만 원을 받으며 일하고 있었다. 나머지 친구들이 취업할 때도 나는 여전히 주말 종일 알바를 하면서 생활을 근근이 유지하고 있었다. 물론 내가 선택한 일이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었지만 왠지 모를 불안감과 초조함이 나를 덮쳤다.
그러다 취업을 했다. 내가 대학에서 선택한 전공과는 사뭇 다른 직업이었다. 나 하나 먹고 살 수 있는 정도의 돈은 벌게 되었다. 하지만 친구들과의 격차는 거의 줄어들지 않았다. 연봉이 6천만 원, 8천만 원 이라니. 나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한 달에 도대체 얼마를 받는 거야. 500만 원? 700만 원? 몇 천만 원 정도는 금방 모을 수 있을 거 같았다. 옷도 비싼 거 입고, 밥도 비싼 거 먹겠지. 사고 싶은 게 있으면 아무런 망설임 없이 바로 살 수 있을 거야. 부모님께 용돈도 많이 드리겠고. 연봉이 높으면 과연 무슨 기분일까, 궁금했다.
특히 A의 연봉은 무려 8천만 원이라 했다. 우리 중에 제일 많았다. 20대 후반에 연봉이 8천만 원 이라니, 진짜 대박이다. 술은 무조건 너가 사야지. 암, 그렇고말고. 그런데 뭐? 힘들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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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는 한 공단에서 3교대로 일하고 있었다. 생활리듬이 그리 규칙적이지 않았다. 게다가 남들 다 쉬는 주말이나 공휴일에 출근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는 곳이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퇴근 후 놀고 즐길만한 문화 인프라가 부족한 편이었다. 가끔 놀고 싶을 땐 마음 맞는 지인들과 함께 서울까지 가기도 했다. 돈을 다 같이 많이 벌다 보니 무리에 휩쓸려 자기도 모르게 펑펑 쓴다고 한다. 일은 힘들었고 대신 돈을 많이 벌었다. 그래서 소비를 통해 그 힘듦을 충족하려는 게 아닐까. 그렇게 충족이 된다면 별문제 없겠지만, 그렇지는 않은가 보다.
- 돈을 그렇게 많이 버는데 왜 징징 거리노. 난 딱 한 달이라도 너만큼 월급 받아보고 싶다.
- 많이 벌면 뭐하냐, 그만큼 많이 쓰는데.
나 역시 대학 시절에 비해 많은 돈을 벌고 있음에도 스스로 풍족하다는 생각을 한 적은 거의 없었다. 대학에 다닐 때 주말마다 서빙 알바를 하며 20~30만 원 정도를 벌었다. 그 돈으로 한 달을 살았다. 밥 먹고 술 먹고 책 사고 옷도 샀다. 가끔 연애도 했다. 돈을 조금씩 모아 부모님 생신 때 선물을 드리기도 했다. 당시에 비해 돈은 몇 배로 많이 벌고 있었지만, 돈이 부족하긴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돈이라는 놈은 늘 부족할 수밖에 없는 걸까.
내가 전공으로 취업해 A와 같은 생활을 한다고 가정해보았다. 그리고 딱 A만큼 연봉을 받는다면? 처음 몇 개월은 좋겠지만 이내 새로운 수입에 적응하며 거기에 맞는 소비를 하게 되지 않을까. 다만 내가 하고 싶은 일보단 해야 하는 일을 많이 하겠지. 거기서 오는 온갖 스트레스와 고민이 생길 것이다. 지금은 하고 있지 않은, 새로운 고민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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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봉이 너무 높으니까 때려치우지도 못하겠고... 이게 제일 무섭네.
- 그때까지 돈 많이 모으면 되지.
- 모아봤자 얼마 모으겠냐. 언제 짤릴지도 모르고.
대기업은 연봉이 무척 높다. 거기에 복지도 좋다. 대기업에 다닌다고 하면 우선 눈빛부터 달라진다. 자식으로든, 친구로든, 연인으로든 좋은 평판을 받는다. 다른 회사로 이직하더라도 괜찮은 경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반면 오래 버티기 쉽지 않으며 높은 자리에 올라갈수록 경쟁과 압박이 심해진다. 그 자리까지 올라가지 않으면 무언가를 주도적으로 하기가 쉽지 않다. 시키는 일을 적당히 하는 게 최고의 미덕이다. 내가 이걸 왜 해야 하는가 의문을 갖기 시작하면 일을 오랫동안 하기 어려워진다. 즉 커다란 기계 안에 자리 잡을 순 있지만, 그 속의 자그마한 부품 역할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중소기업은 연봉이 비교적 적다. 복지도 그리 좋지 못하다.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의도치 않게 주위의 걱정을 사기도 한다. 때론 월급이 밀릴 수도 있다. 대신 한 가지 일이 아닌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배울 수 있으며 주체적으로 일을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승진이 빠르다. 일을 잘 배우기만 하면 독립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일을 배우기에 혹독한 환경에서도 생존하는 법을 몸으로 체득하게 된다. 즉 자그마한 기계이긴 하지만 부품이 아닌 기계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다.
어디까지나 선택의 문제이긴 했다. 그런데 어째서 내가 대기업 다니는 친구의 고민과 푸념을 들어줘야 하는지. 아무리 봐도 뭔가 이상했다. 야, 나도 고민 많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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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만 원 나왔네. 만 오천 원씩 반띵.
- 일 년에 8천만 원 버는 놈이 이것도 못 사주냐. 니가 내라.
- 니는 그만 좀 얻어먹어라. 이제 월급도 받는 놈이.
하긴, 친구들이 돈 많이 번다는 이유로 자주 얻어먹긴 했다. 지갑을 뒤적거렸다. 딱 만 오천 원이 있었다. A에게 돈을 건넸다. 지갑이 텅텅 비었다. 월급날까지 얼마 남았지, 오늘 날짜를 확인했다. 분명 먹고 살 만큼은 벌고 있는 것 같은데, 왜 항상 돈이 부족한 걸까. A도 이런 기분일까. 문득, 연봉 8천만 원의 삶이 내가 바라보는 것만큼 마냥 화려하고 우아하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을 많이 벌든 적게 벌든, 먹고 산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