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였다. 이걸 인정하면 되는 일이다.
“너 때문에 떨어졌다고 생각할 필요 없어.
그건 공모사업에 붙었다면, 오로지 너 덕분에 붙은 거라 생각하는 거랑 같아.
어찌 보면 위험한 생각이지.”
어설프게 얻은 건 금세 내 손에서 빠져나갔다. 마치 실패 없이는 그 어떠한 것도 얻을 생각 하지 말라는 듯, 세상일은 의외로 정직하게 흘러갔다. 내가 실패한 만큼, 딱 그만큼 무언가를 손에 움켜쥘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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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들어오고 사업 하나를 맡게 되었다. 부산의 한 전통시장과 관련해 소식지와 백서를 발간하고 사진전을 진행하는 일이었다. 일정이 무척 촉박했고 활용할 만한 소스가 부족해 일 진행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회사에 들어오기 전에 하던 일과 크게 다르진 않다는 사실이었다. 행사를 취재하고 인터뷰를 하는 일은 대학 시절 지겹게 해오던 일이었다. 독립 출판물 두 권을 제작하며 책의 구성을 짜고 내용을 채우는 것도 그리 낯선 일은 아니었다. 전시 역시 이전에 활동하던 문화기획단체에서 어설프게나마 진행해본 경험이 있었다.
입사 후 약 두 달 동안 사업 PM(Project Manager)을 맡아 주어진 일을 하나씩 척척 해냈다. 사업은 마지막까지 별문제 없이 잘 진행되었다. 주어진 일을 완전히 마무리하는 회의, 대표님이 이번 사업에 대해 언급했다. 문화기획 관련 일을 했다고 들었지만, 그래도 회사에서 일을 해본 경험이 없다고 해서 조금 걱정을 했다고, 그런데 마치 경력직처럼 깔끔하게 잘해냈다고. 신입을 한껏 들뜨게 하기엔 부족함이 없는 칭찬이었다.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는다는 건 무척 기분 좋은 일이다. 그곳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는 회사에서 인정받는 건 그야말로 환상에 가까운 일이다. 지금 회사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설렘도 있었지만 걱정과 우려도 많았다. 혹시 회사 일이 맞지 않으면 어떡하나, 회사 대표님이 원하는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하면 어떡하나. 그러다 처음 맡은 일을 멋지게 마무리하며 이러한 걱정과 우려가 말끔히 사라졌다. 자신감이 생겼다. 대학 시절 내내 취업 준비 한 번 안 했지만, 그렇다고 띵가띵가 놀진 않았다. 내가 그동안 어떤 걸 해왔는지, 무엇을 하며 20대의 절반을 보냈는지 당당히 보여줄 수 있었다. 혹여나 전공으로 취업을 했다면 모조리 불필요한 능력이 될 수도 있었던 일과 가까웠기에 더욱 뿌듯했다. 그렇게 한껏 들떠 있을 때, 마침 회사 차원에서 준비해볼 만한 공모사업 공고가 올라왔다. 대표님께 사업 내용을 보여드렸다. 대표님! 제가 초안 한 번 잡아보겠습니다! 당당하게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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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글을 몇 번씩이나 다시 확인했다. 그럴 리가 없다. 분명히 선정될 거라 믿고 있었다. 잔뜩 공을 들이며 기획서 초안을 잡았다. 발표 준비도 열심히 했다. 면접 심사도 나쁘지 않았다. 준비했던 얘기를 막힘없이 얘기했다. 말을 더듬지도 않았다. 오히려 심사위원들의 질문에 기다렸다는 듯 유창하게 대답했다. 이렇게 많이 물어보는 걸 보니 분명 관심 있게 지켜봐서 그런 거라고, 승산이 있다고 홀로 확신했었다. 하지만 결과는 탈락이었다. 내가 자신감이라 생각했던 감정이, 실은 자만이었다니.
공모사업에서 떨어지는 게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경쟁률을 보면 오히려 떨어지는 경우가 더 많은 게 당연했다. 또한 우리가 준비한 기획이 좋지 않아서 떨어졌다기보다 공모사업의 취지나 목적에 충분히 부합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회사에 들어와 처음으로 내가 기획서 초안부터 심사 발표까지 맡아서 진행했던 만큼, 떨어졌다는 사실이 담담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괜히 나 때문에 떨어진 거 같았다. 선정이 되었다면 내가 PM(Project Manager)을 맡아 그 사업을 멋지게 해내고 싶었는데, 그 기회가 완전히 사라진 셈이다.
공모사업에 아쉽게 떨어졌다고 대표님께 진작 말씀드렸지만, 마음이 계속해서 불편했다. 며칠씩이나 풀이 죽어있었다. 대체 왜 떨어진 걸까, 기획이 그렇게나 형편없었나, 다른 사람이 발표했다면 붙었을까,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조금만 냉정하게 생각해도 전혀 침울해할 이유가 없긴 했다. 나는 출판사 편집자로 들어왔지, 결코 문화기획자로 들어온 게 아니었다. 공모사업을 따서 각종 행사 및 프로그램을 진행해서 성과를 내는 건 결코 주 업무가 될 수 없었다. 사실 그 시간에 책을 기획해야 했다. 이 시대 독자가 어떤 콘텐츠에 반응하는지 치열하게 고민해야만 했다. 그렇다면 나는 대체 왜 우울해하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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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 때문에 떨어졌다고 생각할 필요 없어. 그건 공모사업에 붙었다면, 오로지 너 힘만으로 붙었다고 생각하는 거랑 같아. 어찌 보면 더 위험한 생각이지.
맥주잔을 기울였다. 티 내지 않으려 했는데 역시나 내 감정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난 걸까. 대표님의 예상치 못한 한 마디에 당황했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내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얼굴이 절로 화끈거렸다. 반박은커녕 제대로 된 대답도 못했다.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었지만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한 상황이었다. 무슨 비리를 저지르다가 들키기라도 한 것이냐,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이내 대표님께 속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사실 공모사업에 떨어진 거 때문에 힘이 없었다고. 고민이 많았다고.
그제야 내 마음 깊숙이 타오르고 있는 욕망과 마주할 수 있었다. 이제 막 수습 기간이 끝난 신입이지만, 나의 능력을 보여주고 싶었나 보다. 기획서부터 발표까지 스스로 척척 진행하는 것. 적지 않은 금액의 공모사업을 보란 듯이 따내는 것. 회사에 보탬도 되고, 나 역시 인정을 받는 것. 사회 초년생의 그 서투른 열정이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렇다, 박정오라는 사람이 이 회사에 들어오면 엄청난 변화가 생긴다는 걸 보여하고 싶었다. 공모사업에 붙으면 오로지 나의 능력으로 붙었다며 거들먹거리고 싶었다. 회사에 나라는 존재가 꼭 필요하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공모사업에 떨어지면서 이런 나의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난 셈이다.
하고 싶은 일로 밥벌이를 하게 되었다며 한껏 들떴던 사회 초년생. 뼈아픈 실패를 하고 나서야 간신히 하나를 배우는 애송이. 딱 내 모습이었다. 스스로가 참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 그렇다. 나는 사회 초년생이었다. 애송이였다. 이걸 인정하면 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