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가딩가 기타 치는 편집자

꿈꾸던 이상이 현실이 되자 새로운 이상을 찾아다녔다

by 박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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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그토록 어렵게 느껴지던 온갖 코드들이 익숙해졌다.
손의 익숙함을 넘어 귀의 익숙함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책과 글의 세계에서 벗어나 음악의 세계로 들어가고 있었다.”


연말에 일이 몰린다는 얘기는 여러 번 들었다. 어느 정도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막상 일이 몰아치니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지경이었다. 하루가 금세 지나갔다. 아무것도 못한 거 같은데 벌써 퇴근 시간이었다. 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 절로 한숨이 나왔다.


한창 바쁠 때 사무실을 옮겼다. 이사와 동시에 큼지막한 행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지간하면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해내고 싶었지만, 정말 하루하루가 버거웠다. 회사 일만 생각하면 숨이 턱 막힐 정도였다. 가끔 속이 울렁거리기도 했다. 잘하고 못하고의 수준이 아닌, 할 수 있을지 없을지 걱정이 드는 수준이었다. 나름 치열한 대학생활을 보내며 바쁜 것에는 제법 익숙해졌다고 믿었는데, 그게 허상이었다니. 내 생에 가장 바쁜 시기가 이렇게 매일 갱신될 줄이야.


다행히도 새 보금자리는 마음에 들었다. 단순한 사무 공간을 넘어 카페 겸 복합문화공간이었다. 심지어 무대 장비도 있었다. 공간이 크진 않았지만 소박하게 행사를 진행하기 딱 좋아 보였다. 마침 기타 학원을 몇 개월째 다니고 있었다. 책과 글쓰기가 지겨워져 새로운 탈출구로 선택한 악기였다. 꽤 열심히 배우고 있었다. 저 무대 위에서 연주를 하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잠깐 상상해봤다. 에이, 기타 연주는 그렇다 치더라도 노래를 못하는데 어떻게 공연을 할까 싶었다. 무엇보다 회사 일만으로도 충분히 바빴다. 정말, 죽을 만큼.


*


그나마 급한 것들이 정리되고 간신히 숨통일 트일 무렵, A 형이 불쑥 행사를 기획해보자며 제안했다. A 형은 나보다 한 살 많은 형이었다. 알고 지낸 지는 2~3년 된 사이였다. 글쟁이, 인터뷰어, 청년문화활동까지 활동 영역이 꽤 겹쳤음에도 좀처럼 접점이 없었다. 그러다 새 보금자리로 옮기면서 A 형은 이 공간의 매니저로 새롭게 들어왔다. 나 역시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A 형의 제안에 호기심이 생겼다. 책과 글로 올 한해를 마무리하자는 취지로 행사를 만들기로 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제안이 이어졌다. 행사 앞뒤로 공연을 하자고 했다. 행사 준비야 어렵지 않았지만 갑자기 공연이라니. 영 자신이 없어서 몇 번이나 거절했다. 하지만 A 형의 집요한 설득 끝에 결국 두 손 두 발을 다 들고 말았다. 어차피 아무도 안 오겠지, 까짓 꺼 그냥 해보기로 했다.


퇴근 후 별다른 약속이 없으면 지인과 둘이 남아 공연을 준비했다.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은 역시나 만만치 않았다. 혼자 유튜브를 보면서 연습을 하다 최근 몇 개월은 학원까지 다니긴 했지만, 공연은 처음이었다. 그냥 심심할 때 반주 연습을 하는 것과 노래에 맞춰서 반주를 치는 건 큰 차이가 있었다. 노래방에서 MR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것과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 부르는 건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였다. 아무래도 이쪽에는 영 재능이 없는 것 같았다. 역시 나는 책 읽고 글 쓰는 일만 해야겠다 싶었다. 공연 준비는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이제 겨우 회사 일에 여유가 생겨 한숨 돌렸는데, 공연 준비라는 새로운 스트레스가 다가왔다. 아, 괜히 한다고 했나, 지금이라도 못할 거 같다고 할까, 절로 한숨이 나왔다.


홍보 포스터가 나왔고 행사 날짜는 점점 가까워졌다. 남들 앞에서 공연 한다는 사실이 창피해 개인 SNS에 홍보도 하지 않았다. 아무도 안 왔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아니면 망신을 당해도 될 만큼 친하고 가까운 사람 몇 명만 왔으면 싶었다. 다행히 신청자는 2~3명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기획자라는 사람이 행사에 사람이 많이 올까 봐 두려워하다니, 문화기획의 관점에서 보면 꽝인 행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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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당일, 많아야 3명쯤 올거라 생각했는데, 무려 8명이나 참가해 깜짝 놀랐다. 아니나 다를까, 잔뜩 긴장한 상태로 행사의 시작을 알렸다. 공연을 시작하려는데 기타가 넘어졌다. 그 탓에 튜닝이 안 된 상태에서 연주를 시작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음정이 불안했다. 가사가 고스란히 적힌 책자를 보면서도 가사를 틀렸다. 아주 난리가 아니었다. 공연은 망쳤지만, 다행히 본 행사는 별 탈 없이 잘 마무리되었다. 뒷풀이는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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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 보면 그저 행사 하나를 기획하고 진행한 것에 불과하지만, 개인적으로 꽤 특별한 경험이었다. 내가 남들 앞에 서서 공연을 하다니, 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이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와줬고 다 같이 늦은 시각까지 즐겁게 얘기를 나눴으니 완전히 망하진 않은 거 같아 다행이었다. 최근 행사를 만들고 진행하는 게 일이 되어버려 따분함을 느끼고 있었는데, 모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행사를 만들 수 있어 이번 행사가 무척 의미 있었던 시간으로 다가왔다.


*


한 번 큰 망신을 당하고 나니 남들 앞에서 기타치고 노래하는 게 그리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실력과 상관없이 자신감이 붙은 걸까. 책 읽고 글 쓰는 시간은 부쩍 줄었지만, 딱 그만큼 기타 치는 시간이 눈에 띄게 늘었다. C코드, A코드, E코드... 마이너, 메이저, 세븐, 나인... 처음엔 그토록 어렵게 느껴지던 온갖 코드들이 익숙해졌다. 손의 익숙함을 넘어 귀의 익숙함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책과 글의 세계에서 벗어나 음악의 세계로 들어가고 있었다. 이미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전자의 세계와 달리 후자의 세계는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로웠다.


좋아하는 일로 밥벌이를 한다고 한창 들떠있었는데, 숨이 턱 막힐 만큼 바쁜 시기를 보내고 나니 현실의 무게감이 느껴졌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먹고 사는 문제는 쉽지 않다는 걸 세삼 깨달았다. 좋아하던 게 일이 되어버리니 오히려 삶이 고달파졌다. 꿈꾸던 이상이 현실이 되자 새로운 이상을 찾아다녔다. 우연히 찾은 취미 생활은 금세 내 삶을 사로잡았다. 그렇게 나는, 딩딩딩가 기타 치는 편집자가 되었다. 다음 북토크 땐 내가 오프닝 공연을 해볼까? 아니, 그럼 또 일이 될 거 같다. 기타만은 지금처럼 시간 날 때 즐기는 정도에서 벗어나고 싶다. 아니, 그 전에 작가님 의견도 들어봐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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