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한동안은, 여기 계속 머무르지 않을까
"20대 후반, 참으로 애매한 나이다.
둘 다 열심히 할 수 있으면 가장 좋겠지만,
그게 참 어려울 것 같다.
세상에 뭐 하나 쉬운 게 있겠냐마는."
제대 후 복학과 함께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2년 동안 학교에 다니다 휴학을 했다. 사실 그 이후로는 학교 앞에서 자취 생활을 할 이유가 없었지만, 대학가의 분위기가 좋아 계속 머물러 있다. 대학 졸업 후에도, 그리고 취업 후 지금까지도.
대학생일 땐 주로 술집을 많이 다녔지만, 친구들이 하나둘 취업하면서 대학가를 떠난 이후론 술집보단 카페에 자주 가고 있다. 시간만 나면 책 한 권과 노트북을 챙겨 카페에서 시간을 보낸다. 졸업 후 문화기획 활동을 할 땐 밤낮 가리지 않고 갔었고, 취업 후엔 주로 퇴근 시간에 들르고 있다. 주말에 별다른 약속이 없으면 점심 먹고 나와서 하루 종일 죽치고 앉아 있기도 한다.
단골 카페가 있긴 하지만, 오로지 한 곳만 계속 들리는 건 지겨워 집 근처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마일리지를 쌓는 입장에선 그다지 효율적이지 못한 행동이지만, 그보다 주기적으로 분위기를 바꿔가며 새로운 환경을 맞이하는 게 더 좋다. 책도 더 잘 읽히고, 글도 잘 써진다. 자주 가는 곳은 경성대·부경대역 근처에 두 개, 대연역 근처에 두 개 정도다.
대학가에 있는 카페의 손님은 대부분 대학생이다. 카페에 혼자 오는 경우는 적고, 그리 오랜 시간 머무르지 않는다. 얘기하고 싶은 게 그리도 많은지, 시끌벅적한 분위기다. 나 역시 혼자 오지 않았다면 시끄럽게 떠들었겠지. 활력이 넘친다. 때로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에너지가 넘쳐서, 도저히 글을 쓰지 못할 때도 있다. 간혹 의도치 않게 옆 테이블의 이야기를 들을 때도 있다. 사랑 이야기 아니면 취업 이야기다.
반면 주택과 아파트가 많은 대연역 카페는 비교적 조용한 편이다. 넓은 면적에 비해 사람도 적다. 나처럼 혼자 와서 오랫동안 죽치고 있는 사람도 제법 보인다. 주말 오후가 되면 가족 단위 손님도 종종 보인다. 갓난아기부터 시작해 초등학생 정도의 애까지. 가끔은 할머니나 할아버지도 함께 온다. 가끔 아기들이 울거나 보채는 소리가 들린다. 2~3살쯤 돼 보이는 아기 한 명이 카페를 아장아장 걸어 다니다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멍하니 나를 바라본다. 아가야, 삼촌 이상한 사람 아니란다. 부모님한테 가서 책 좀 사달라고 하거렴. 요즘 책이 워낙 안 팔려서 삼촌이 먹고 살기 참 어렵단다. 이왕이면 삼촌이 다니는 출판사 책이면 더 좋고!
대학가에 있는 카페에 갈 때면 대학생들의 그 넘치는 에너지와 기운을 받는다. 나 역시 얼마 전까지 저랬었는데, 아쉬움이 절로 든다. 그래도 나 역시 아직 20대이고 해보고 싶은 것도 많다. 그들 틈에 있다 보면 젊음의 열기를 받아 나 역시 무언가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어진다. 반면 주거지역이 많은 카페에 가서 다른 가족들을 보다 보면, 그들이 주는 안정감이 무척 부럽게 느껴진다. 나 역시 언젠가 누군가와 만나 자식을 낳고 가족을 이루게 될까, 나의 부모님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이제까지 내 분야에서 성공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는데, 요즘은 그에 못지않게 가정을 이루고 그 속에서 역할을 잘해내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일이나 꿈만으로 삶을 채울 순 없으니 말이다.
불과 지하철 한 정거장 차이지만 완전히 다른 세계처럼 느껴진다. 대학생들이 주는 열정과 가족이 주는 안정감. 내가 사는 집도 딱 그 사이에 있어 어느 한쪽이 더 가깝다고 말하긴 어렵다. 지금 내 상황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꿈을 향해 열심히 달려 나가고 싶다가도 누군가와 만나 가정을 이루며 안정감을 느끼고 싶기도 하다. 20대 후반, 참으로 애매한 나이다. 둘 다 열심히 할 수 있으면 가장 좋겠지만, 그게 참 어려울 것 같다. 세상에 뭐 하나 쉬운 게 있겠냐마는. 경성대·부경대역과 대연역 사이. 아마 한동안은, 여기 계속 머무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