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일이 내게 맞기는 한 걸까

입사한 지 고작 1년 만에 이토록 소진될 줄이야

by 박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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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으로 취업하는 게 싫어서 지금의 회사로 도망쳐 왔다.
이번엔 또 어디로 도망쳐야 한단 말인가."


이력서를 쓰고 내가 갈만한 회사를 알아보던 시기, 남들과 다른 특별한 이야기를 가졌다는 나의 자신감은 금세 바닥나고 말았다. 내가 경험이 많고 나름 다재다능하다 확신했는데, 취업시장 앞에서는 너무도 무능력했다. 내가 그동안 좋아서 배우고 즐겼던 것들이 가장 증오의 대상이 되고 마는, 끔찍한 경험을 해야만 했다.


우연한 기회로 지금의 회사에 들어왔다. 이제까지 내가 해왔던 것들을 한껏 살리며 충분히 활용할 수 있었다. 공대를 다니면서 허구한 날 책 읽고 글만 쓰다 보니, 이상하다는 듯한 시선을 참 많이 받았다. 회사에 들어오자 많은 것이 바뀌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취미생활이 밥벌이가 되는 기적을 경험했다.


또한 대학 졸업 당시 내가 꿈꾸던 문화기획자는 되지 못했지만, 여전히 기획에 관심이 많았다. 똑같은 걸 보고 듣더라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이걸 어떻게 하면 기획 단계로 끄집어 올려서 행사나 프로그램 혹은 사업으로 만들 수 있을까 끊임없이 머리를 굴리고 있다. 세상 모든 것에 감탄하게 되었다. 일상적으로 겪는 일마저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쉴 틈 없이 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이러한 문화기획자의 자세는 회사 생활에 커다란 보탬이 되었다.


도저히 연결지점을 찾을 수 없었던 수많은 경험들이 하나둘씩 연결되며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연결지점을 하나하나 찾는 기분이 무척 짜릿했다. 내가 해왔던 것들이 100%, 200% 활용 되면서 나의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다. connecting the dots. 내가 대학생활 동안 찍어놓았던 무수히 많은 점들이 연결되고 있었다.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라는 사실은 더욱 내 가슴을 설레게 했다.


*


주말 아침은 조금도 상쾌하지 않았다. 오히려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었다. 출근 준비를 하려는데 몸이 좀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이번 주는 정말 살인적인 스케줄이었다. 야근이 계속 이어졌는데 그마저도 사무실에 앉아서 하는 일이 아니었다.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업무였다. 밤 11시가 되어서야 뒤늦게 공간을 정리하고 집으로 향하곤 했다. 퇴근 후 업무이기에 대체 휴무를 써도 되었지만, 이미 근무 시간에 하는 회사 업무도 감당을 못할 정도로 빠듯한 상황이었다. 결국 근무시간과 근무 외 시간 모두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었다.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오늘 행사는 지역 출판사와 지역의 문화공간, 지역 저자와 지역 예술가, 지역의 대표 독서모임이 함께 하는 북토크였다. 취지가 좋았고 포장하기도 괜찮은 컨셉의 행사였다. 내가 기획한 만큼 내가 준비하고 잘 마무리해야만 했다. 샤워를 하고 나갈 준비를 했다. 현관문을 나서려는데 절로 한숨이 나왔다. 평일도 모자라 주말까지 일해야 한다는 사실이 못마땅했다. 겉보기엔 의미 있는 행사였지만 정작 행사를 기획한 당사자는 조금의 흥미도 못 느끼며 그저 의무감에 어쩔 수 없이 준비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누구를 위한 행사인가, 좋은 행사라 말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행사 시작 두 시간 전에 사무실에 도착했다. 사무실엔 나 혼자였다. 스스로가 처량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평일 주말 안 가리고 일 한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편집자로서 경력이 쌓이는 일도 아니었다. 어차피 내가 할 수 있는 정도의 기획을 내가 딱 할 수 있을 만큼 진행하는 것뿐이었다. 이렇게 기계처럼 일을 한다고 내 기획력이 는다는 보장도 없었다. 오히려 나라는 사람이 끊임없이 소비될 뿐이었다. 이제 바닥을 보이는 거 같았다. 더 싫은 건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행사 준비를 꾸역꾸역 홀로 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많은 것이 엉켰다. 두 시간 전에 도착했는데도 준비를 다 못했다. 그 시간 안에 혼자 할 수 있다고 착각했던 걸까. 연사님이 도착했다. 인사를 드렸다. 오늘 공연을 맡아주실 예술가 분이 도착했다. 공연 리허설을 진행했다. 갑자기 취객 한 명이 행사 공간으로 들어와 난동을 부렸다. 생각지도 못한 일에 시간을 뺏기며 계획이 틀어졌다. 분위기는 더욱 어수선해졌다. 참가자는 하나둘 자리에 앉고 있었다. 사전 신청자에게 참가 안내 문자를 보내지도 못했다. 행사 시작이 코앞으로 다가와서야 뒤늦게 전화를 했지만 행사 날짜를 깜빡해서 불참한다는 답변이 대부분이었다. 현장 안내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리허설도 엉망이었다. 참가자 인원 파악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행사 시작 시간은 이미 지나있었다. 나도 무대에 잠깐 올라가서 오늘 행사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하기로 했었다. 준비한 게 전혀 없었다. 시간이 없었다는 건 핑계일까. 결국 이 모든 게 나의 게으름과 나태함 문제인 걸까. 좀처럼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황금 같은 주말, 나는 여기서 왜 이러고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크나큰 착각이었다. 재미있긴 개뿔, 지금 상황은 혼돈 그 자체였다. 대체 어떤 부분에서 흥미를 느끼고 즐겨야 한다는 건가. 몇 명이 붙어야 하는 일을 어쩔 수 없이 혼자 하다가 기어코 일이 이 지경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이게 내 탓인가. 나는 이미 과부하가 걸린 상태였다. 없는 에너지를 간신히 끌어 모아 꾸역꾸역하고 있었다. 그래도 안 되는 게 내 탓이라 할 수 있는가. 진정 나의 무능력 때문이라 말할 수 있는가. 당장 행사장을 박차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될 대로 되라지, 어찌 되든 지금보다 나빠지진 않을 거 같았다.


이 일이 내게 맞기는 한 걸까, 원점으로 돌아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즐거워서 선택한 회사 일이 전혀 즐겁지가 않았다. 입사한 지 고작 1년 만에 이토록 소진될 줄이야. 전공으로 취업하는 게 싫어서 지금의 회사로 도망쳐 왔다. 이번엔 또 어디로 도망쳐야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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