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타협을 할 수밖에 없나 봐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주위에서 응원도 해주고, 돈도 많이 벌고, 성과도 잘 내서 유명해지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 세상살이가 그렇게 될까 싶네요.”
- 정오야, 뭐하노. 집이가?
밤 11시 50분. K 형에게 연락이 왔다. 자주 만나는 사이긴 했지만 이렇게 늦은 시각에 불쑥 연락이 온 적은 거의 없었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인가 싶어 전화를 걸었다. 이내 휴대폰 너머 K 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술 한잔 하자.
K 형답지 않은, 어둡고 우울한 목소리였다.
K 형은 4년 전 여름, 대외활동을 하면서 처음 만났다.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강연 멘토링을 하는 단체였다. 당시 나는 휴학 욕구로 가득 찬 대학교 3학년의 상태 안 좋은 공대생이었다. 전공을 살려 취업하는 대신, 글 쓰고 강연하면서 먹고살고 싶었다. 글이야 혼자 쓰면서 연습하면 되는 일이지만, 강연은 달랐다. 남들 앞에서 말하는 걸 무척 어려워했다. 그래서 강연 멘토링 활동으로 말하는 기술을 익히고자 했다.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나의 내성적인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데 무척 서툴렀다. 그렇다고 스스로 노력하지도 않았다. 애초에 사람이 목적이 아니었으니까. 반면 K 형은 대학원 진학을 앞둔 상태였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가장 우선시했다. 항상 에너지가 넘쳤고 활동적이었다. 각자 처한 상황이든 단체를 들어온 목적이든 아니면 성격이든 여러모로 나와 잘 안 맞았다. 이 탓에 활동 기간 내내 자주 부딪히곤 했다.
싸우면서 정이 들었던 걸까. 활동이 끝날 무렵 가장 친해진 사람은 다름 아닌 K 형이었다. 천만 중 다행으로 K 형과 나 사이에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둘 다 술을 무지 좋아한다는 것. K 형과 나 사이를 이어주는 유일한 끈이었다. 활동이 끝난 이후 만남의 횟수가 오히려 더 늘었다. 허구한 날 둘이서 술을 마셨다. 나와 K 형은 사회에 대한 불만이 참 많았다. 현실과 타협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다 보니 술자리 주제는 대부분 사회 비판 혹은 신세 한탄이었다. 이러한 관계가 몇 년 동안 이어져오고 있었다.
처음 만날 때 막 석사에 들어갔던 K 형은 어느새 박사 논문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땐 둘 다 20대 중반이었는데, 나는 어느새 20대의 끝자락에 있었고 K 형의 나이는 앞자리 숫자가 바뀌었다. 우리는 각자 처한 어려움 속에서 꿈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발버둥 치고 있었다. K 형과 나는 너무 이상적이었고, 이 탓에 참 어렵고 힘든 시기를, 유난히도 더 어렵고 힘들게 보내고 있었다.
- 요즘 여기저기서 취업 제안이 들어오더라고.
술잔을 몇 번 기울이던 K 형은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대학원 생활에 대해선 이미 여러 번 들은 상태였다. 항상 교수들 눈치를 봐야 하고, 뭔가 시키면 부당한 일이라도 마땅히 해야만 한다고 했다. 교수들의 똥꼬를 최선을 다해 핥아줘야, 그렇게 충성심을 보여야 살아남을 수 있는 세계라 했다. 교수들이 자신의 권위를 적극 활용하며, 학위를 미끼삼아 사람을 착취한다고 했다. 정말 더럽고 치졸한 세계로 들렸다. 그럼에도 K 형은 교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하루하루 버티고 있었다.
- 지금 들어오면 바로 연봉 3천, 4천 준다는 거야. 잘하면 박사 공부랑 병행할 수도 있고.
K 형은 더럽고 치졸한 세계 속에서도 꿈이 있기에 버틸 수 있다고 했다. 마음에 없는 말로 교수들 기분 좋게 해주고,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사람을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척 연기하고, 때로는 자존심까지 버려가면서까지 꿈을 지키고자 했다. 하지만 경제적인 문제는 오로지 의지만으로 해결되지 않았다. 돈 문제는 끊임없이 K 형의 꿈을 시험에 들게 했다. 다행히 학비는 어떻게든 해결되었지만 밥벌이 문제는 만만치 않았다. 공부가 본업이기에 밥벌이에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없었다. 그래서 최대한 적은 시간을 투자해 돈을 벌어야만 했다.
K 형은 대학에서 학부생 수업을 하나 맡아 진행하고 있었다. 학부생들에게 교수님 소리를 들을 때마다 힘이 난다고 했다. 다만 돈이 얼마 되지 않았다. 주말에는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방과 후 수업을 했다. 이마저도 수입이 얼마 되지 않았다. 그마저도 학기 중에만 일이 있었다. 방학이 되면 쫄딱 굶어야 했다. 나이는 계속 먹어가는 데 이뤄놓은 건 아무것도 없다는 허무함과 패배감이 주위를 늘 맴돌았다. 30대가 되니 주위 친구들과 격차가 눈에 띄게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비싼 차를 몰며 돈을 흥청망청 쓰고 다녔다. 경제적 수준이 자신과 맞지 않았다. 결국 몇 년 동안 해오던 계모임마저 한 달에 몇 만원이 부담되어 최근에 그만두었다고 한다. 이렇게나 버티고 또 버티며 간신히 학위를 딴다 해도 지역에서 대학원을 나와 교수가 되는 건 하늘의 별 따기였다. 아무리 교수들에게 잘 보여도,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하고 대학원 생활에 모든 걸 쏟아 부어도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다고 마땅한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 예전에도 이런 기회가 몇 번 있긴 했는데, 그땐 거들떠보지도 않았거든. 그런데 요즘은 흔들리더라. 교수가 될 거란 보장도 없는데 내 밥벌이 하나도 제대로 못하면서 뭐 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유혹에 빠지지 않고 계속 공부 한다면, 교수가 될 가능성이 조금은 높아질 지도 모른다. 반면 지금 취업을 선택한다면, 밥벌이 문제는 당장 해결될지 몰라도 교수의 꿈에서 점점 멀어지지 않을까. 이제까지 열심히 버텨온 만큼, 조금만 더 힘을 내라고, 꿈과 멀어지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먹고사는 문제만큼은 그 누구도 함부로 말할 수 없었다. 대답 대신 K 형 앞에 놓인 빈 잔에 술을 채웠다.
- 왜 뭐라고 안 하는데?
K 형 역시 내 앞에 놓인 빈 잔에 술을 채웠다.
- 당연히 니가 뭐라 할 줄 알았다. 현실과 타협하지 말라면서.
K 형의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누군가 봤다면 아마 쓸쓸함이 묻어나 있었겠지. 이제까지 K 형에게 비친 박정오의 모습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다. 허구한 날 함께 술을 마시며 했던 얘기이기도 했다. 나는 운이 좋았다. 다행히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직장에 들어왔다. 하지만 회사 생활을 한 지 1년이 지난 지금, 오히려 예전에 비해 조심스러워졌다. 대학 시절 그토록 꿈꾸던 일이 현실에 펼쳐졌지만, 그리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먹고사는 문제는 너무도 무겁고 또 치열했다. 불행해지기 쉬운 쪽은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좋아하는 일을 하면 무조건 행복할 줄 알고 환상에 사로잡힌 채 무리하게 뛰어드는 사람이었다. 마찬가지로 K 형이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꿈을 선택한다고 해도 행복할 거라는 보장은 없었다. 그런데도 버티라고, 꿈을 포기하지 말라고 함부로 말할 수 있겠는가.
아니, 그렇다고 현실과 타협하라는 말은 차마 할 수는 없었다. K 형은 내가 가장 아끼는 형이자, 힘든 일이 있을 때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형이었다. 삶의 위기마다, 삶의 갈림길 앞에 설 때마다 나의 고민을 이야기하곤 했다. 그러면서 힘을 얻었다. 넌 너무 이상적이라며 주위에서 손가락질당해도 K 형과 술 한 잔 하며 힘듦을 털어내곤 했다. K 형이 현실과 타협해버리면, 이대로 무너지면 나 역시도 얼마 지나지 않아 무너질 거라 확신했다. 함부로 말할 수 없는 문제이지만, 흔들리는 모습을 보면서도 그저 침묵만 지키는 비겁함을 선택하고 싶지 않았다. 행님, 짠 하죠. 잔을 기울였다.
행님, 저도 현실과 타협하고 싶지 않아서 정말 열심히 발버둥 쳤어요. 행님도 잘 아시죠? 죽어도 취업 따윈 안 하려 했는데, 회사에 다닌 지 벌써 1년이 되었어요. 근데 정말 쉽지 않네요. 하고 싶은 일을 해도 이렇게 힘든데,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면서 어떻게 버티는지 모르겠어요. 세상에 고상한 밥벌이 따윈 없나 봐요, 하하. 저도 사실 고민 많아요. 지금이야 만나는 사람도 없고 부모님도 모두 건강하시니까 이렇게 살고 있는데, 미래를 생각하면 막막해요. 가끔은 정말 불안해요.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인데, 너무 힘들어서 이 일이 싫어지면 어떡하지. 전공 공부가 싫어서 도망친 곳이 지금 회사인데, 이 일이 싫어지면 이제 어디로 도망쳐야 하지. 뭐, 그래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주위에서 응원도 해주고, 돈도 많이 벌고, 성과도 잘 내서 유명해지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 세상살이가 그렇게 될까 싶네요. 그냥 살아가는 게 원래 이런가 봐요. 이제는 현실과 타협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닌 거 같아요. 누구나 타협을 할 수밖에 없나 봐요. 결국 얼마나 타협할 거냐는, 정도의 문제 아닐까요. 저도 회사를 언제 그만둘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고, 주위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 가치관이나 신념도 의외로 쉽게 바뀔 수도 있을 거 같아요. 끝내 현실과 타협하면서 꿈을 포기할지도 몰라요. 예전에는 이러한 행동을 그토록 비판했었는데, 이제 제가 그렇게 살려 하고 있네요. 하하.
행님이나 저나 정말 힘든 길을 걸어가고 있잖아요. 지금까지 힘듦이나 달콤한 유혹들은 이제 막 시작에 불과할걸요? 앞으로 흔들릴 일이 한참은 많이 남았을 거예요, 하하. 행님, 그러니까 저랑 약속 하나 해요. 흔들릴 수도 있고 헷갈릴 수도 있지만, 지금 걸어가고 있는 이 길을 절대 포기하지 말기로요. 먹고사는 문제를 함부로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요. 아니, 그러니까요. 그러니까 서로 의지하면서 끝까지 버텨 봐요. 그만두더라도 꿈을 이루고 나서 그만두기로 해요. 행님, 저희 서로에게 부끄러워지지 맙시다. 저희가 나눴던 얘기들 절대 잊지 말고, 저희가 생각하는 멋진 삶을 제대로 한 번 살아봐요. 그러다 한 10년 뒤 다시 이 술집에 오는 거죠. 행님은 교수로, 저는 출판사 대표로 오는 거예요. 그땐 비싼 안주도 마음껏 시켜서 밤새도록 마셔 봐요. 그러면서 오늘을 회상하는 거죠. 야, 우리 그럴 때도 있었다, 키득거리면서 말이죠. 어때요, 괜찮지 않습니까. 아무튼 항상 응원합니다. 짠 합시다, 행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