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사는 문제에 치여 흩어지는 말과 글을 모으다
퇴근 시각, 사무실을 나선다. 자전거 페달을 힘껏 밟는다. 광안대교의 장엄한 모습이 서서히 드러난다. 여름이 시작되자 광안리 바닷가를 찾는 사람이 눈에 띄게 늘었다. 드넓게 펼쳐진 백사장은 이내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채워진다. 다들 각자의 축제를 즐기고 있다. 그들 사이를 요리조리 피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먹거리, 폭죽 등 잡화가 가득한 리어카를 지키는 상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음식점, 카페, 술집 등 온갖 가게가 즐비하게 이어져 있다. 한쪽에선 무대를 세팅하고 있고, 또 다른 한쪽에선 버스킹을 하고 있다. 몇몇 커플이 손을 꼭 잡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이를 데리고 온 가족도 종종 보인다. 누군가는 그림을 그리고 있고, 누군가는 춤을 추고 있다. 같은 장소이지만 누군가에겐 최고의 여행지이고, 누군가에겐 삶의 터전이다. 누군가에겐 연인 혹은 가족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휴식의 장소다. 또 누군가에겐, 매일 같이 오가는 출퇴근길이다.
어렸을 적부터 책 읽는 걸 좋아했다. 읽은 책이 한 권 한 권 쌓일수록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조금씩 자라났다. 글이 한 편 한 편 쌓일수록 작가의 꿈도 무럭무럭 자라났다. 글로 먹고살고 싶다는 환상에서 좀처럼 헤어 나오지 못했다. 책을 쓰고 싶었다. 적어도 책과 관련한 일을 하고 싶었다. 그게 무엇인지 정확히 몰랐지만, 드넓은 바다 위에 펼쳐진 거대한 다리를 처음 봤을 때 받은 느낌과 가장 비슷했을 것이다.
한때 품었던 이상이 어느새 현실로 펼쳐졌다. 책과 글에 푹 빠져 지내던 상태 안 좋은 공대생은 우연한 기회로 출판사 편집자 직함을 달게 되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돈을 번다는 사실에 한없이 들떴다. 한참을 구름 위에서 머물렀다. 마치 광안리 바닷가에 처음 온 관광객처럼, 하루하루가 축제였다. 폭죽을 터뜨렸다. 근무시간 내내 책을 만들었고, 퇴근 후 곧장 카페로 향해 책을 읽었다. 책으로 둘러싸인 채, 책에 한껏 취해 살았던 나날이었다. 서서히 구름 위에서 내려왔다. 광안대교를 보며 연신 감탄하던 내가, 어느덧 화려한 불빛이 켜지며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자아내도 그만 무덤덤해진 과정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책 만드는 일은 고상했지만, 계산기 두드리는 일은 결코 우아하지 않았다. 편집이든 디자인이든 인쇄든 유통이든 마케팅이든 모두 사람이 하는 일이었다. 필연적인 불완전함에 치이고, 관계 속에서 치이고, 숫자에 치이고, 일정에 치였다. 회사는 회사였고, 일은 일이었다. 강연에서 이따금 만나는 작가와 일로 만나는 작가는 엄연히 달랐다. 현실의 문법은 이토록 냉정하고 또 난해했다.
편집자 직함에 조금씩 익숙해지며 내 업무와 역할에 대해 어렴풋이 파악할 때쯤, 자그마한 욕구가 솟아났다.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걸 혼자만의 배움과 성장의 재료로 사용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글로 옮겨보고 싶었다. 편집 일을 시작한 지 겨우 2년밖에 안 되었지만, 지금이니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고 믿었다. 지역의 자그마한 출판사, 경력도 얼마 안 된 편집자였지만, 치열하게 고민하며 내가 서 있는 이 공간을 지키고 있음을, 갈수록 악화되는 출판 경기에도 이렇게 발버둥 치며 치열하게 살아내고 있음을 외치고 싶었다. 더 나아가 보다 많은 사람이 책에 스며든 땀방울을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글을 쓰기로, 다짐했다.
책 만드는 일에 마냥 설레는 모습이든,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라며 심드렁한 모습이든,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으려 했다. 출판은 문화산업이었다. 문화적인 측면만 보는 것도, 산업적인 측면만 보는 것도 모두 위험한 건 매한가지였다. 책이 가지는 의미를 적당히 생각하고 수익성도 적당히 고려해서 적당한 책을 만들면 가장 좋겠지만, 그 ‘적당히’가 가장 어려웠다. 균형을 갖추려 했지만, 양극단을 오가는 정신없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나는 관광객인가, 상인인가, 가게 주인인가, 동네 주민인가, 행사 업체인가, 마이크를 들고 노래하는 뮤지션인가, 출퇴근하는 직장인인가. 내 일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글로 옮기겠다는 처음의 다짐은 보기 좋게 무너졌다. 모든 게 헷갈렸고, 또 혼란스러웠다. 그렇게 헷갈림 혹은 혼란의 기록이 한 편씩 쌓이기 시작했다.
회사 일을 매개로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편집자로 일하다 보면 작가를 비롯해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 특히 문화예술인과 만날 일이 많았다. 어떤 회사든 관련 분야 사람과 만나는 건 직장생활의 일부였다. 책 만드는 일이라 해서 크게 다르거나 특별한 건 없었다. 회사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레 회사 업무로 만나는 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을 고스란히 글에 담으려 했다. 한편, 나는 출판사라는 회사에 다니는 평범한 직장인이기도 했다. 주위 사람이 느끼는 어려움과 고민을 들여다보았다. 비슷한 시기를 함께 지나는 사회 초년생들의 그 혼란스러움과 방황, 애환에 주목하고자 했다. 먹고사는 문제에 치이다 보면 자연스레 흩어지고 말았을 말과 글을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모았다. 그렇게 모인 원고들이 한 권의 책으로 묶였다.
『저도 편집자는 처음이라』는 새내기 편집자의 험난한 여정을 도와준 이들과 함께 쓴 책이다. 가장 큰 도움을 준 사람은 단연 회사 사장님이자 멘토이기도 한 호밀밭 출판사 장현정 대표님이다. 고독하고 험난한 길을 함께 걸어가는 동료로서 열심히 버텨보겠다고, 짙은 안개가 내린 메마른 산정을 마지막까지 지키는 파수꾼으로 살아가겠다고, 감히 다짐하고 싶다. 늘 걱정과 응원 사이 어디쯤의 시선으로 묵묵히 아들을 바라봐준 부모님께 이 책을 바친다. 이제 조금은, 떳떳한 아들이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책에 등장한 이들부터 지금의 나를 있게 한 모든 분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2019년 여름. 광안리 <생각하는 바다>에서,
인생의 가장 뜨거운 여름을 보내며, 박정오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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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에서 지난 6개월 동안 연재하던 『저도 편집자는 처음이라』(호밀밭, 2019)가 정식 출간되었습니다. 관련 소식은 따로 전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