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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오 Sep 16. 2019

서울과 부산만큼의 거리

떠나는 사람이나 남은 사람이나 비참하긴 매한가지였다

   지난 4월, 업무 차 서울에 출장 갈 일이 있었다. 곧장 부산에 돌아와도 상관없었지만, 여기저기 가보고 싶은 곳도 몇 군데 있었고, 무엇보다 한동안 만나지 못한 B 형과 술 한 잔 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서 다음날 하루 연차를 내고 목, 금, 토, 2박 3일 동안 서울에 있기로 했다. 미팅은 목요일 오후 3시에서 5시까지,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마쳤다. 업무에 관한 생각은 금세 잊어버리고 이내 약속 장소로 발걸음을 향했다. 4월임에도 날씨가 유난히도 추웠고, 얼른 맛난 안주와 함께 소주 한 잔을 기울이고 싶었다.


   추운 날씨에 갑자기 따뜻한 곳으로 들어와 빈속에 소주 몇 잔을 기울이니 금방 취기가 올라왔다. 처음엔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가벼운 이야기를 나눴지만, 아니나 다를까, 이내 무거운 이야기로 넘어갔다. 조금 진지하고, 조금 서글픈, 그런 이야기였다. B 형과 나 사이에는 이내 우리들의 허기를 채워줄 갈매기살이 연기를 뿜어내며 구워지고 있었다. 평소라면 먹음직스러웠을 테지만, 왠지 서글퍼보였다.   


   B 형은 부산에서 활동을 하며 만난 사이였다. 대외활동과 문화기획 사이의 그 어디쯤, 쉽사리 정의할 순 없었던 활동이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우리가 정말 하고 싶은 활동이었고, 글을 쓰든, 노래를 부르든, 행사를 기획하든, 우리는 지난 몇 년을 함께 즐겼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돈이 되지 않아도, 간혹 주위에서 무시하거나 비아냥거려도 거기에 굴하지 않고 계속 해나갔다. 무엇보다 우리는 비슷한 지향점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가 재밌어 하는 것들을 청년들이 향유할 수 있는 문화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 대학 입학과 동시에 취업 준비를 해야 하는 컨베이어 벨트에서 뛰쳐나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 그 과정에서 함께 할 동료를 모으고, 하나의 연대, 커뮤니티를 이루어 어려운 현실을 헤쳐 나갈 힘을 얻는 것. 그렇게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느슨하게 관계를 맺으며 각자의 길을 열심히 걸어왔다.


   하지만 우리는 계속 나이를 먹었다. 스스로 생계문제를 해결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해졌다. 우리가 해왔던 활동은 돈이 되지 않음은 물론 경력으로 인정받기도 어려웠다. 우리의 꿈과 가치는 여전했지만, 그것들이 생계문제를 해결해주진 않았다. 언제까지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 순 없었다. 지속가능성을 위해 새로운 차원의 고민을 해야만 했다. 다행히 B 형은 하고 싶은 일을 해오다 관련 분야 회사에 취업을 했다. 나는 그 기간 동안 인터뷰 단체를 만들고, 공모사업에 뛰어들어 활동을 열심히 해나갔다. 그래도 둘 다 부산에 있었기에 못해도 한 달에 한두 번씩은 보면서 각자의 길을 응원해주며,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서로 도와주면서 관계를 이어나갔다.   


   그러다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B 형은 본격적으로 우리와 함께 활동을 해보고 싶어 회사를 그만뒀다. 반면 하고 싶은 일을 계속 해오던 나는 결국 생활고를 버티지 못하고 취업을 결정해야만 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회사에 들어왔다. 대외활동과 공모사업을 열심히 한 덕에 나름의 경력을 인정받아 취업을 했지만, 한편으론 취업을 했기 때문에 내가 그동안 해오던 활동을 계속 할 수 없었다. 나 개인의 밥벌이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그뿐이었다. 나 혼자 우연히 살아남았을 뿐, 함께 해오던 사람들은 계속해서 벼랑 끝에 몰려야만 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할 건지, 일단 꿈은 잠시 접고 밥벌이를 할 건지. 나는 이들에게 어떠한 도움도 주지 못하며 그저 무기력하게 지켜볼 수박에 없었다.


   다시금 활동가의 삶을 살아가려던 B 형은 몇 개월 안 되어 결국 다시 일자리를 알아봐야만 했다. 시간은 계속 흘러갔고, 생계문제가 주는 무게감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꿈이고 뭐고, 어쨌든 먹고 살아야 했다. 이건 결코 선택의 문제가 될 수 없었다. B 형은 한두 달 정도 일자리를 알아보다 다행히 하고 싶은 일과 가까운 직무로 한 회사에 취업할 수 있었다. 다만 부산에 있고 싶다는 B 형과의 바람과는 달리, 서울로 가야만 했다. 이상할 건 전혀 없었다. 부산에는 우리들이 원하는 일자리도 거의 없었다. 있다 하더라도 그 문이 너무나도 좁고 환경도 열악했다. B 형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서울에 방을 구하고 본격적인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 형, 돈 좀 벌고 나면 다시 부산에 내려올 거죠?

   - 당연하지. 친한 사람들, 아끼는 사람들 모두 다 있는데, 부산에서 일하고 싶지.     


   다시금 술 한 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유난히도 쓴 맛이 입 속을 가득 메웠다. 결국 현실적인 어려움을 버티지 못하고 서울로 올라가 버린 B 형이 원망스러웠다. 조금만 더 버텨보지, 그러다보면 우연한 기회로 밥벌이 문제가 해결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다 내가 자리 잡고 있는 부산이 원망스러워졌다. 왜 부산에는 20대 문화예술인이 자리를 잡을만한 일자리도, 환경도 부족한 걸까. 그러다 사회가 원망스러워졌다. 20대 청년이 하고 싶은 일 좀 해보겠다는데, 이렇게나 안 도와주다니. 우리들은 치열하게 살아왔고, 이상적인 꿈과 가치로 가득한 존재였다. 그런데 어째서 나 같이 우연히 살아남거나, 그렇지 않으면 B 형처럼 다른 지역으로 갈 수밖에 없는 건지. 떠나는 사람이나 남은 사람이나 비참하긴 매한가지였다.   


   하지만 다 부질없었다. 그 누구를 원망할 수 없었다. B 형도, 부산도, 사회도,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그저 우리가 아직 힘없고, 능력도 없는 탓이겠지. 어쩌면 타이밍도 안 맞고, 운도 조금 없는.


   그렇게 한참이고 B 형과 술잔을 기울였다. B 형과 나 사이에 놓여 있는 갈매기살은 계속해서 구워지고 있었다. 연기 탓일까, 고작 한 걸음이면 닿을 거리에 앉아있는 B 형과 나 사이가 유난히도 멀게 느껴졌다. 서울과 부산만큼의 거리. 우연히 살아남은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거리. 어쩔 수 없이 떠나고만 안타까움과, 아끼는 사람들을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무기력함 사이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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