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정오 Nov 15. 2019

공조냉동기계기사 자격증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선, 때론 따분하고 재미없는 일도 해야한다

   모처럼 아버지와의 술자리에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아버지는 30도짜리 중국술을 꺼냈다. 술잔을 기울였다. 술이 목구멍을 타고 흐를 때 살짝 뜨거운 느낌이 들었다. 과연, 소주보다 조금 더 독했다. 그래도 먹을 만했다. 곧장 냄비에 가득 담겨 있는 오리고기를 한 점 집어먹었다. 조금씩 마시지, 왜 그렇게 한 번에 털어 넣냐, 둘이 똑같다며 어머니의 핀잔이 이어진다. 모처럼 아버지랑 아들이 술 좀 마시는데 너무 뭐라 하지 말라며,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아버지와 함께 항변한다. 이제 고등학교 1학년인 늦둥이 동생은 교정기 때문에 먹는 게 불편하다면서도 고기를 우걱우걱 열심히 씹어대고 있었다. 고기 말고 야채도 좀 먹으라며, 어머니의 핀잔이 이번엔 동생에게로 향한다.


   책은 좀 팔리고 있나, 책 한 권 팔릴 때마다 너한테 돈 얼마나 떨어지냐, 월급은 안 오르냐, 어머니의 핀잔이 이번엔 아들에게로 향한다. 그냥 남들처럼 돈 많이 주는 직장에 들어가서 평범하게 살지, 왜 그렇게 힘든 길을 걸어가려 하노, 어머니의 한숨 섞인 걱정이 이어진다. 아들이 취업했어도, 책을 내며 작가가 되었어도, 여기저기 강연을 하러 다녀도 어머니 입장에선 항상 걱정이 되나 보다. 알아서 잘하고 있는데 왜 뭐라 하오, 아버지가 어머니의 공세를 막아선다. 이 친구는 뭐든 알아서 잘하는 친구요. 나는 이 친구를 믿소. 아들을 ‘이 친구’라고 얘기하는 걸 보니 취기가 점점 올라오는 듯 보였다. 이 친구가 냉동기사 자격증을 따 왔을 때, 얘는 뭘 해도 알아서 먹고살겠구나, 확실히 믿음이 갔다고 덧붙였다. 아버지 앞에 놓인 빈 잔에 술을 다시금 채웠다.


   *


   제대 후 곧장 복학을 해 2년간 학교를 다녔다. 전공으로 취업할 마음이 없었고, 대신 내가 하고 싶은 활동을 하며 대학 생활을 해나갔다. 그 정점은 1년간의 휴학 생활이었다. 남들은 어학연수, 자격증 시험 등 취업 준비를 위해 휴학을 하곤 했는데, 나는 오로지 대외활동만으로 휴학 생활을 가득 채웠다. 그렇게 2015년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그즈음, 아버지와 술 한잔하다가 진로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아버지는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세상일이라는 게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는 편이고 어떤 일이 언제 어떻게 일어날지 모르니, 보험 하나는 들어 두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이어서 기사 자격증 공부를 제안했다. 아들이 하는 일을 늘 응원해줬기에, 아버지의 제안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아버지가 내게 무언가를 부탁하는 건 처음이었다. 잠시 망설이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복학 후, 4학년이 되었다. 취업 욕심이 없는 대학교 4학년 생활은 여유로웠다. 다만 그 여유를 제대로 만끽하기도 전,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켜야 하는 시기가 성큼 다가왔다. 이제까지 하던 활동을 모두 접고, 본격적인 공부에 들어갔다.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나 학교 도서관으로 향했다. 전공 공부와 워낙 거리가 먼 대학 생활을 했기에, 모든 내용이 새로웠다. 또한 여전히, 재미가 없었다. 엉덩이가 근질근질했다. 독서 모임, 강연 기획, 인터뷰 활동 등으로 가득했던 삶은 순식간에 따분한 개념과 문제 풀이로 채워졌다. 하루하루가 괴로웠다.


   한 달간 공부한 결과, 필기시험에 합격했다. 그리 어렵지 않은 시험이었지만, 내게는 하고 싶지 않은 공부를 한다는 사실 그 자체가 커다란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그 답답함을 풀고 싶어 필기시험 합격 후 홀로 2박 3일간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겨우 필기시험 하나 준비하고 여행까지 다녀오냐며 친구들이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이후 실기시험을 준비했다. 필기시험에 비해 난이도가 있었다. 자격증 시험이 다 그렇듯, 공부를 한다는 느낌보단 예상기출문제를 통으로 외우는 암기력 테스트를 하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조금의 흥미도 없는 것들을 머릿속에 억지로 쑤셔 넣는 나날이 이어졌다. 너무나도 괴로웠다. 이런 게 취업 준비일까. 자신이 원하는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몇 년이고 공부하는 취업준비생들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두 달간 공부한 결과, 다행히 실기시험에 합격했다. 얼마 후 기사 자격증이 나왔다. 대학 생활 내내 그토록 증오하고 기피했던 ‘냉동공조공학’이라는 전공. 그런 전공을 열심히 공부해 간신히 따낸 ‘공조냉동기계기사’ 자격증을 손에 쥐고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꼬박 석 달을 투자했다.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던 전공 공부를 꾸역꾸역 해낸 결과물이기도 했다.


   대학 생활 내내 전공으로 취업하지 않을 거라며 호언장담했던 나는, 결국 전공과는 사뭇 다른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 자연스레 내가 석 달 동안 노력해 취득한 자격증은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물건’이 되어버렸다. 사람 일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하지만, 전공 분야로 다시금 발을 디딜 일은 없을 것만 같다. 다만 석 달간의 험난했던 여정마저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마땅히 해내는 모습에, 약속을 지키는 모습에 아버지의 신뢰를 얻었으니 말이다.


   *


   금세 독한 중국술 한 병을 비웠다. 어머니의 눈에서 레이더가 나오는 것만 같다. 취한 모습을 조금이라도 보이면 안 되는 순간이다. 술잔을 엎는다든가, 수저를 떨어뜨리는 일은 그야말로 치명적이다. 그렇게,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냉장고에서 소주 한 병을 더 꺼냈다. 오랜만에 아버지랑 한잔하는데 너무 뭐라 하지 마소.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의 핀잔이 이어진다. 뭐가 오랜만이고. 그렇게 술 많이 먹어가지고, 나중에 나이 들면 우짤라고 그러노. 아버지와 술 한 잔 기울이기로 다짐했을 때부터, 어차피 어머니의 잔소리는 변수가 아닌 상수였다. 전혀 아랑곳하지 않으며 비어있는 아버지의 술잔에 소주를 가득 채웠다.


   어찌 보면 현실과 타협이었고, 내가 가고자 하는 길에 확신하지 못해 보험을 들었던 셈이다. 탈출구를 미리 만들어놓고, 어렵고 힘든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척 연기했다고 지적해도, 딱히 대답할 말이 없다. 다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선 때론 하고 싶지 않은 일, 따분하고 재미없는 일도 해야한다. 내게 있어 기사 자격증은 그뿐이었다. 아버지에게 신뢰를 얻지 못한 상태로 험난한 길을 걸어갈 자신은 없었으니까.


   중국술에 이어 소주도 비웠다. 둘 다 취기가 잔뜩 올라왔다. 그래도 뭔가 아쉽다. 소주 한 병만 더 먹으면 어떨까? 냉장고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어머니가 무서운 눈길로 나를 바라봤다. 그만 무라. 당신도. 나와 아버지를 번갈아 바라보며 레이더를 쏘는 어머니의 모습에, 잠깐 고민하다가 결국 항복을 하고 말았다. 네, 그만 먹을게요. 이렇게 또 현실과 타협하고 말았다. 생각보다, 영 나쁘지만은 않다.


매거진의 이전글 서울과 부산만큼의 거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