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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오 Nov 13. 2019

연봉 9천만 원

먹고산다는 건 대체 무슨 의미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모처럼 대학 친구들끼리 모이기로 했다. 가장 한가한 놈 두 명에서 먼저 만났고, 나와 한 친구는 비슷한 시기에 합류했다. 완전체는 다섯 명이니 아직 한 명이 남았다. 30분쯤 지났을까, A가 가게로 들어왔다. 왜 이렇게 늦었냐, 뒤늦게 합류한 A에게 핀잔을 주려다가 흠짓 놀라고 말았다. 다크서클이 한참을 내려와 있었다. 일이 힘들다는 건 얼핏 들어왔지만, 몇 달 만에 만난 A가 피로에 찌들어 있는 모습은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사람 다크서클이 저렇게나 짙을 수 있는 것도, 한창 밑에까지 내려갈 수 있는 것도, 처음 알았다. 대체 얼마나 힘들 길래 사람이 저 지경이 되는 걸까 싶었다.


   술자리는 12시쯤에 끝났다. 대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이렇게 다섯 명이 모이면 기본은 새벽 한두 시까지 놀곤 했는데, 이제 다들 직장인이라 그럴까. A는 충청도에서 왔기에, 우리 집에서 자기로 했다. 다섯 명에서 떠들다 보면 자극적이고 가벼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누가 더 쓰레기인지, 누가 더 병신인지 따위를 얘기하거나 서로의 과거사를 폭로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다들 헤어지고, 둘이서 집으로 향하는 길, A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야, 많이 힘드냐. 얼굴이 그게 뭐고. 다크서클이 거기까지 내려간 거 처음 본다, 진짜. A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요즘 미치겠다. 하루에 14시간에 일한다. 일주일에 하루밖에 못 쉬고. 14시간? 미쳤네... 도대체 몇 시에 출근해서 몇 시에 퇴근하는 거냐... 아침 7시까지 출근해서 저녁 9시 넘어서 퇴근하지. 집에 오면 10시 정도라 했다. 씻고 이것저것 하면 11시, 별다른 일이 없으면 곧장 잠든다 했다. 그러고 또 새벽 6시에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하는 나날의 반복이라 했다. 순간 말문이 막혔다. 진짜냐...


   *


   A는 대기업에 다니고 있었다. 충청도에 있는 한 공단에서 일을 했는데, 초봉이 무려 8천만 원이라 했다. 다만 삶의 질은 그리 높지 않았다. 3교대를 했다. 평일과 주말의 장벽이 허물어진 일상을 보냈다. 그렇게 3년 간의 교대근무가 끝났다. 교대 근무만 벗어나면 그나마 살만할 줄 알았는데, 크나큰 착각이었다. A를 기다리고 있는 건 지옥 같은 근무였다. 엄청난 시간을 일했다. 쉬는 날도 별로 없다고 했다. 대신 연봉이 올랐다. 무려 9천만 원. 20대 후반에 받을 수 있는 최대 금액이 아닐까 싶은, 놀라운 금액이었다.


   불을 껐지만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맥주 한잔 더 마시면 어떨까 싶었지만, 둘 다 내일 일정이 있었기에 꾹 참았다. 대신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 이른 저녁에 만나 술을 마셨지만, 친구들 앞에서는 차마 물어보지 못한 진솔한 이야기들. 야, 아무리 9천만 원 받아도, 삶의 질이 너무 낮은 거 아니냐. 그러다 몸 다 망가지겠다. 니 주위 사람은 멀쩡하게 계속 다니냐. 안 그래도 나보다 몇 년 먼저 들어온 선배, 이번에 공황장애 판정 받고 휴직계 냈다. A의 대답에 화들짝 놀랐다. 일도 너무 힘들고 스트레스 많이 받아서 그랬다더라. 아... 아무런 말이 나오지 않았다. 순간 먹고사는 일의 그 엄중함이 성큼 다가왔다. 몇몇 사례만으로 대기업에 다니는 모든 이의 삶을 설명할 순 없었지만, 내가 막연하게 생각했던 대기업에 대한 환상이 깨졌다. 도대체 얼마나 힘들 길래 공황장애 진단까지 받는다는 건지. A의 상태도 영 좋지 않았다. 대학 시절 내내 붙어 다니던 친구였기에 더욱 걱정이 되었다. A가 말한 선배의 모습이, 혹여나 A의 몇 년 후 모습일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야, 니 회사 계속 다닐 거가.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온 한마디였다.


   A는 연인과 몇 년간 연애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결혼 생각도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다만 연인이 현재 타지에서 공부 중이라 돈 들어갈 일이 많았다.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는 관계라 보기엔, 연인 역시 그럴 만한 개인적인 사정이 있었다. 타지에서 홀로 생활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데, 연인 뒷바라지까지 하려니 지금도 충분히 버겁다고 했다. 야, 아무리 그래도... A에게 얘기를 하다말고 그만 말을 흐리고 말았다.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하니까, 결혼까지 생각한다고 하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믿었다. 친구로서 걱정이 되었지만, 마냥 비판할 순 없었다. 지금 직장이 진짜 좆같긴 한데, 두 사람 먹여 살릴 정도로 월급 주는 곳은 여기밖에 없다고 했다. A의 마지막 한마디가 유난히도 아프게 다가왔다. 삶의 무게가 이토록 무거울 줄이야. 먹고산다는 건 대체 무슨 의미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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