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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오 Sep 09. 2019

그렇게 슬픈 날은 아니니까

나도 언젠가 좋은 사람과 만나 행복한 사랑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본 글에는 영화 <이터널 션사인>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치킨 냄새가 집안 곳곳에 퍼지고 있었다. 수입 맥주 네 캔이 담긴 비닐봉지에서 우선 하나를 꺼낸다. 첫 타자는 칭따오 맥주, 너로 정했다. 나머지 세 개는 냉장고에 넣어둔다. 치킨 냄새가 강해질수록 배가 더욱 고파진다. 세팅을 대충 마무리했다. 금요일 밤의 혼술, 메뉴는 무려 치킨. 마지막으로 노트북을 켠다. 뭐를 볼까, 고민 하다 <이터널 션사인>을 선택했다. 옛날에 만든 로맨스 영화라는데, 제목이 무척 익숙했다. 무척 유명한 영화라는 얘기는 몇 번 들었던 거 같다. 대략적인 스토리를 보니 달콤함과는 거리가 먼 거 같다. 오늘 같은 날, 딱 안성맞춤이다.


   몇 년 만에 소개라는 걸 받았다. 친하게 지내는 동아리 후배가 주선해줬는데, 밤늦게 연락처를 받고 다음 날 점심 때 곧장 만났다. 내가 먼저 요청을 한 것도 아니고 그냥 편하게 밥 한 끼 먹어보는 셈 치고 자리에 나갔다. 확 끌리는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딱히 싫은 구석이 있진 않았다. 이게 소개라는 걸까. 나의 이상형과 거리가 멀어도 그리 나쁘지 않으면 천천히 만나가면서 서로를 알게 되는 것. 점심을 먹고 오후 내내 카페에 있다가 헤어졌다. 그날 저녁, 에프터 신청을 했다. 장문의 카톡이 왔다. 요약하자면, 미안하다는 얘기였다.


   우선 닭다리를 먼저 뜯었다. 이어서 맥주 한 모금을 마셨다. 영화가 시작했다. 두 남녀 주인공이 우연히 만난다. 마치 운명이었던 것처럼 서로에게 이끌린다. 이내 사랑에 빠진다. 에이, 저런 게 어딨어. 이거 원, 삼류 영화구만. 개연성이 전혀 없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로맨스 영화를 잘 보지 않는다. 관객으로 하여금 환상에 빠지게 만드니까. 로맨틱한 사랑에 대한 판타지를 심어주니까, 현실 연애에 대한 기대감만 계속 높아지니까. 나 역시 환상에 대한 피해자였다. 이상형이 너무 확고했다. 로맨틱한 사랑을 꿈꿨다. 그 탓에, 20대가 다 끝나가는 데도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못하고 있었다. 닭다리에 이어 날개를 집었다. 어릴 적, 치킨 날개를 먹으면 바람 많이 핀다는 우스갯소리를 많이 듣곤 했던 거 같은데. 바람 안 필 자신 있으니까 나도 좋은 사람 좀 만나고 싶다. 맥주를 다시금 벌컥벌컥 삼킨다. 벌써 반이나 먹었나? 술기운이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한다.


   나라는 놈은 아무래도 소개와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세울 게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처음 만난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단 말인가. 외모도 별로고, 유머 감각이나 매너도 없다. 모아놓은 돈도 없다. 미래도 불안정하다. 어필할 구석이 전혀 없다. 꼭 소개를 받아야만 누굴 만날 수 있는가. 아니다. 내 주위에도 괜찮은 사람이 많다. 나와 몇 년 동안 알고 지내면서 내가 방황하는 모습을, 힘들어하던 모습을, 그 과정을 거쳐 지금까지 달려온 모습을 지켜봐준 사람이라면 어떨까 싶었다. 휴대폰을 꺼냈다.


   *


   치킨도 벌써 반이나 먹었다. 배가 서서히 불러오기 시작한다. 맥주 한 캔을 금세 비웠다. 냉장고에 가서 다른 캔 맥주 하나를 집어 든다. 두 번째 타자는 달콤한 맛의 블랑. 뚜껑을 따니 경쾌한 소리가 울러 퍼졌다. 그건 그렇고, 영화 내용이 뭔가 심상치 않다. 알고 보니 남녀 주인공은 원래 연인 사이였다. 그러다 쓰라린 이별을 맞이하고, 그 상처를 잊기 위해 기억을 제거한 것이다. 기억이 지워지는 과정에서 아름다웠던 추억이 펼쳐진다. 남자 주인공은 자신의 선택을 점점 후회하기 시작한다. 맥주를 마신다. 달콤한 맛이 나야 하는데, 왜 이토록 쓰게 느껴질까.


   그냥 편하게 만나면 될 것을, 조금씩 가까워지면 될 것을, 너무 성급하게 굴다가 또 일을 그르치고 말았다. 그렇게 소중한 사람 한 명을 또 잃었다. 전혀 모르는 사람과 처음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소개도, 서로의 모습을 꾸준히 지켜보면서 친한 관계에서 이성 관계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도, 모두 실패했다. 엉망이었다. 내가 남자로서 매력이 그렇게 없는 걸까.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아직 누군가를 만날 준비가 안 된 걸까. 죽기 전에 사랑이라는 걸 한 번이라도 할 수 있을까. 연이은 실패는 자괴감으로 이어졌다.


   550ml나 되는 캔 맥주 두 개를 금세 비웠다. 술기운이 제법 올라왔다. 딱 기분 좋은 상태였다. 하지만 뭔가 부족했다. 맥주 하나를 더 꺼냈다. 배가 불렀음에도 치킨을 계속 쑤셔 넣었다. 그래야 스트레스가 풀릴 것만 같았다. 앞에 있는 노트북에선 영화가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 실연의 아픔을 지우는 장치. 기억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고, 간신히 지웠다 해도 빈틈이 너무도 많았다. 알고 보니 그 장치를 만든 사람도, 컨트롤하는 사람도 모두 실연의 아픔을 가지고 있었다. 기억은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다. 결국 이별은 사랑의 그림자다. 그림자만 쏙 빼서 지울 순 없다. 사랑이 아름다운 이유는 이별의 아픔이 있기 때문이다. 뭐 대충 이런 걸 말하고 싶은 걸까. 취기가 더욱 올라왔다.


   이제 나이도 제법 먹었고, 관계에 능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여전히 서툴고 미숙했다. 사랑이라는 게 내게만 유독 이렇게 어려운 걸까 싶었지만, 그저 내 눈에 비친 모습만으로 다른 사람을 평가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이 세상에 아픔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다들 그 아픔을 견디며 끝내 이겨내고 있는 거겠지.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이 감정들을, 그들은 한참 전에 진작 겪었을 감정임이 분명했다. 나는 그저 조금 느린 것뿐이다.


   두 남녀 주인공은 끝내 다시금 만나며 사랑에 빠진다. 닭 가슴살 한 조각이 마지막으로 남아 있었다. 맥주도 딱 한 모금 정도 남아 있었다. 언젠가 좋은 사람을 만나면, 지금의 고민과 힘듦, 자괴감, 비참함 등은 전혀 생각도 안 나겠지.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니, 이 얼마나 좋은가. 실패할 수도, 아플 수도 있지만, 우리는 이런 슬픈 감정을 느끼기 위해 사랑에 빠지는 건 아니지 않은가. 사랑의 목적이 이별이 될 순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 또 이렇게 실패했지만, 다음번에도 또 실패할 수도 있지만, 조금씩 나아지기만 하면 된다. 괜히 울컥했다. 눈물이 살짝 고였다. 온갖 역경과 어려움 속에서도 끝내 다시 사랑에 빠지는 두 남녀 주인공처럼, 나도 언젠가 좋은 사람과 만나 행복한 사랑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 치킨 조각과 남은 맥주 한 모금을 꿀꺽 삼켰다. 너무 우울해하진 말자. 냉장고에 있는 캔 맥주 하나는 다음에 먹기로 했다. 그렇게 슬픈 날은 아니니까. 세상 무너진 것도 아니고, 그저 잠깐 걸려 넘어진 것뿐이니까. 지금의 아픔에 주저앉기에는, 내게 남은 날이 아직 너무도 창창하니까. 영화는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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