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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오 Nov 08. 2019

어느 편집자의 무대 탐방기

내가 막연하게 품었던 환상과는 사뭇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올여름이 시작될 즈음부터 시작해, 단조로웠던 삶이 복잡하고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지난 8월, 생에 첫 단행본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항상 혼자 끄적이던 글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여 전국에 있는 수많은 독자와 만난다는 사실에, 한참이고 구름 위에 머물렀다. 가족, 친척, 주위 지인들의 축하 인사가 이어졌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작가님'이라 불렸다. 여기저기서 강연 섭외 요청이 들어왔다. 내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무대에 서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은 내 가슴을 뛰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돈까지 주다니. 월급 외 부수입이 생기며 불안하던 통장 잔고가 안정감을 보이자, 나의 마음도 함께 안정되었다.


   구름 위에서 오래 머무를 순 없는 법. 삶이 눈에 띄게 바빠지기 시작했다. 프리랜서가 책을 내고 강연을 하는 건 생계 활동이었지만, 직장인이 책을 내고 강연하는 건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는 삶에서 다른 무언가를 한다는 건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요구하는 일이었다. 부수입이 생긴다는 건 똑같이 일하는데 돈을 더 버는 게 아니었다. 돈을 더 받는 만큼, 그만한 가치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강사료가 높게 측정되면 될수록, 돈을 많이 번다는 기쁨도 잠시, 무대를 준비하며 받는 압박감과 무게감도 더 커졌다. 카페에서 책 읽고 글을 쓰며 보내던 퇴근 후 시간과 주말은, 강연 준비로 순식간에 지나갔다.


   *


   내성적인 성격 탓에 남들 앞에서 말하는 걸 항상 힘들어했다. 말을 자주 다듬었고, 말문이 자주 막혔으며, 간신히 말을 이어나가도 상대방이 늘 지루해하곤 했다. 반면 생각이 늘 많았고, 머릿속은 항상 온갖 말들로 가득했다. 그걸 입 밖으로 내는 게 힘들어 선택한 게 바로 '글쓰기'였다. 말이 어렵던 나에게 글쓰기는 새로운 세계였다. 내 얼굴과 목소리, 말투 등과 상관없이 그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고스란히 전달할 수 있었다. 화려한 기술도 필요 없었다. 재능이 눈곱만큼도 없었지만, 계속해서 고치다 보면 좀 더 나은 글이 나오곤 했다. 글쓰기는 남들 앞에 보여주기 전에 스스로 고치고 다듬을 시간이 충분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게 참 좋았다.


   글을 열심히 쓰다 보니 우연한 기회로 책이 나왔는데, 책이 나오니 다시금 말과 가까워져야만 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내용만큼이나 얼굴과 목소리, 말투가 중요했다. 그 외에도 옷과 신발, 헤어 스타일 등도 신경이 쓰였다. 글을 쓸 땐 강점이었던 내성적인 성격은, 무대에서는 약점이 되었다. 화려한 언변으로 관객들을 유혹해야만 했다. 말은 스스로 수정할 시간이 없었고, 무대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요소가 현저히 부족했다. 잠깐의 말실수가, 잠깐의 버벅거림이 곧 나라는 사람의 이미지를 규정 짓는 세계였다. 그렇게, 글쓰기로 서서히 높여가던 자존감은, 무대에 서면서 오히려 조금씩 깎이고 있었다.


   *


   철없던 대학생 시절, 책을 쓰고 그걸 바탕으로 여기저기 강연을 다니며 먹고사는 게 꿈이었다. 그래서 책을 많이 읽었고, 부산에서 강연이 열린다고 하면 시간이 되는 대로 찾아가서 열심히 듣곤 했다. 무대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이들을 부러움의 눈길로 바라보며, 나 역시 언젠가는 저 자리에 서고 말 거라며 속으로 다짐하곤 했다. 참으로 멀게만 느껴졌던 이상이 현실로 펼쳐졌다. 내 이름 석 자가 적힌 단행본이 세상 밖으로 나오고, 무대에 서는 일이 종종 생기게 되었다. 다만, 내가 막연하게 품었던 환상과는 사뭇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무대에 서서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준다든가, 좋은 영향을 끼친다거나 하는 건 그야말로 낭만의 영역이었다. 일은 일이었다. 섭외 전화가 오면 비용을 철저하게 따졌다. 오로지 돈을 위해서 하는 일은 아니었지만, 돈을 주지 않으면 참으로 하기 힘든 일이었다. 강사료 액수에 따라 그 일을 대하는 태도가 크게 달라졌다. 내 이야기를 조금은 과장해야 했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보단 사람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야 했다. 혹시라도 강연이 연속해서 잡히면, 같은 이야기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강연에 임하는 마음이 비장한 이유는, 내가 돈을 받은 만큼 그 값어치를 다 하기 위함도 있었지만, 한편으론 강연 시장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한 발버둥이기도 했다. 여기서 잘해야 다음번에도 불러줄 테니까, 여기저기 소문이 퍼져서 또 다른 무대에 올라갈 수 있으니까. 이런 마음들로 가득해지다 보니, 내 책의 독자들 혹은 내 이야기에 관심 가져주는 사람들과 진솔하게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자리 잡을 공간이 사라져버렸다. 돈 받고 하는 일이고, 돈 때문에 하는 일인데, 그런 선한 마음은 돈이 안 되니까.


   생계형 강연에서 의미와 가치는 사치에 가까웠다. 무조건 잘해야 했고,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했고, 진솔한 이야기보단 과장된 이야기가 필요했다. 그저 우연과 우연이 거듭해서 나온 결과물을, 마치 처음부터 그럴 의도를 가지고 노력한 것처럼 포장해야 했다. 평소엔 믿지도 않는 '운명' 따위에 의존하며, 무대에서만큼은 운명론자가 되어야만 했다. 항상 치열하게 살아가고, 남다른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착하고 멋진 모습만을 보여줘야만 했다. 실제의 나는 그렇지 않은데. 이 간극이, 무대에 설 때마다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곤 했다.


   *


   그럼에도 무대에 서는 건 매력적인 일이었다. 무대에서 마이크를 잡은 사람이 실제로 어떤 사람이든, 어떤 상황에서 어떤 마음으로 이야기를 하든, 자신의 말과 실제 삶 사이에 어떤 간극이 있든, 무대에 선 사람의 이야기 하나하나가 누군가에겐 생각의 실마리를, 삶의 자그마한 변화를, 더 나아가 꿈과 희망을 줄 수도 있었다. 이 세상에 마냥 나쁘기만 한 책은 없는 것처럼, 부족하고 모자란 이야기라도 자세히 귀 기울여보면 좋은 부분, 도움이 되는 부분이 존재한다. 강사는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말, 할 수 있는 말을 할 뿐이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이고 생각하는지는, 강사의 몫이 아닌 관객의 몫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까지 무수히 많은 강연을 들어왔지만, 아무리 좋은 내용의 강연도 나의 삶을 통째로 바꾸진 않았다. 그런 이야기들이 조금씩 모이며 내가 삶의 방향을 설정할 때 알게 모르게 영향을 준 것이다. 또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스스로를 돌이켜보는 그 태도가 모여 내 삶이 조금씩 다듬어진 것이다. 내가 강연 하나로 인생이 완전히 바뀌지 않은 것처럼, 애초에 그런 강연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해졌다. 무대에 선다는 건 특별한 걸 하는 게 아니라, 그저 내가 서 있는 지점에서 다른 사람이 궁금해할 만한 나의 생각 혹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행위일 뿐이었다. 다만 내가 만나는 사람들을 모두 소중히 여기고,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이야기들로 조금씩 경험을 쌓아나간다면, 썩 나쁘기만 한 일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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