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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오 Nov 15. 2019

어머니, 저 출판사에 취업했습니다!

'엄마친구아들'에 치여서 아들자랑 한 번 시원하게 못했을 텐데

   - 어머니, 저 출판사에 취업했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로 밥벌이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한껏 들뜬 마음으로 어머니께 전화했다. 하지만 내가 기대했던 반응과 달리, 어머니는 대답이 없었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대학 전공과 영영 멀어지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휴대폰 너머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월급 얼마고. 어머니의 첫마디였다. 월급을 말씀드리니,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이후 긴 침묵이 이어졌다. 출판사에 취업하다는 것. 아들에겐 세상 그 어떤 일보다 기쁘고 설레는 일이었는데, 어머니에겐 전혀 그렇지 않았나 보다. 내가 지금 식당에 취업해도 너보다 많이 벌겠다, 대학까지 졸업한 애가 그 정도 월급 받고 일하는 게 말이 되냐, 그냥 남들처럼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서 평범하게 살면 안 되냐, 전공 자격증도 따놓고 왜 굳이 힘든 길을 가려고 하냐. 어머니의 잔소리에 나도 그만 욱하고 말았고, 이내 말다툼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들뜬 마음으로 시작했던 어머니와의 통화는, 그 끝자락에선 화로 가득해져 있었다.


   *


   출판사 취업 후에도 어머니는 여전히 걱정이 많았다. 다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조금씩 자리 잡아가는 모습에, 아들에 대한 신뢰가 조금씩 쌓이고 있는 듯했다. 출판사에 들어온 지 1년 6개월이 지났을 무렵, 회사에서 겪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첫 단행본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어머니는 많이 기쁘셨는지, 아들의 책을 여기저기 열심히 알리고 다녔다. 여기저기 원고도 쓰고, 이따금 무대 위에 올라가 강연도 하며 부수입이 하나둘 생기는 모습에, 요즘엔 아들의 월급 걱정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우리 아들, 아직 20대인데 벌써 책 나왔다고, 벌써 강연하러 다닌다고, 아들이 만드는 책마다 상을 받았다고, 부산에서 유명하다고, 조금은 부풀려진 얘기들로 여기저기 아들 자랑하고 다니기 바쁘다.


   - 요즘도 바쁘나. 책은 잘 팔리나.


   책이 나온 이후로는, 나의 안부보다 책 판매량에 더 큰 관심을 가지는 듯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똑같은 대답을 반복한다. 그럭저럭 팔리고 있죠. 물론 거짓말이다. 책이 많이 팔려서 어머니를 호강시켜드리면 더 좋겠지만, 과분한 욕심이라는 것 정도는 충분히 알고 있다. 첫 단행본이 나왔다는 설렘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는 요즘, 책 출간이 조금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책이 나온 덕분에 아들에 대한 걱정도 줄었고, 무엇보다 어머니가 지인들을 만날 때 자랑할 만한 이야깃거리 하나 생겼다. 그동안 대기업, 공기업, 높은 연봉 등 온갖 화려한 스펙을 가진 '엄마친구아들'에 치여서 아들자랑 한 번 시원하게 못했을 텐데. 이 정도면, 이번 책은 제 역할을 다 한 게 아닐까 싶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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