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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오 Nov 16. 2019

언젠가 이들의 바통을 이어받는 시기가 오지 않을까

<2018수원한국지역도서전>에 다녀와서 

   2017년 9월쯤이었을까, 잠깐 맛 봤던 문화기획 활동을 뒤로 하고 취업 준비를 다짐했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싶고 어떤 회사에 들어가고 싶은지 고민을 시작했다. 문화기획 관련 활동을 해왔으니 문화기획 일을 직업적으로 하는 곳도 괜찮을 거 같았다. 인터뷰를 몇 년간 꾸준히 했으니 잡지나 신문 기자 쪽을 알아보면 될까. 하지만 문화기획이든 인터뷰든 내가 가장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거 같았다. 그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해오던 일이자 나라는 사람을 설명할 수 있는 일은 바로 ‘책’이라 확신했다. 그렇다면 책과 관련한 활동은 없을까, 찾아보기로 했다. 출판사! 그래, 출판사에서 일을 하면 무척 재미있을 거 같았다. 곧장 출판사를 알아보기로 했다.


   부산에 있는 출판사를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저 모집을 하는지 안 하는지 확인만 하고 지원서 양식이 있다면 거기에 맞춰 지원을 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로 지역 출판과 관련한 칼럼 몇 개를 발견했고 그 속 내용은 내게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어떠한 영역이든 수도권과 지역의 격차는 존재할 수밖에 없지만, 특히 출판 영역은 양극화가 심한 상태라 했다. 한국의 출판문화는 거대자본에 힘입은 수도권 중심의 대형 출판사나 서점 등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고 했다. 즉 지역에서 출판업을 한다는 게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 상세히 말해주는 칼럼이었다. 안 그래도 이 전에 했던 문화기획 활동도 열악한 환경 속에서 열심히 발버둥 쳤었다. 그런데 또 그런 일에 도전을 해도 괜찮을까 싶었다.


   나 하나 잘 먹고 잘 살고 싶으면 주류의 흐름이 편승하면 된다. 사람도 많고 시장도 열려 있는 곳에서 사업을 하면 된다. 인정해주는 사람도 많고, 회사의 성장 차원에서도 훨씬 유리하다. 하지만 사업적인 측면이 아닌 가치적인 측면에서는, 주류의 흐름에만 편승하면 비주류들은 이내 사라지고 만다. 열악하고 힘들더라도 누군가는 비주류의 그 경계에 서서, 거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밀고 들어오는 주류에 맞서 싸우고, 지켜야 한다. 그게 바로 주류 문화에 편입되지 않고 지역 문화를 그 자체로서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며,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지역을 지키는 파수꾼 역할을 하는 이들이 무척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지역의 최전선에서 분투 중인 이들의 대열에 나 역시 합류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는 2018년 9월 어느 날, 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 수원으로 향하는 KTX에 올라탔다. 평소에 비해 일찍 일어난 탓에 몸이 조금 피곤했지만, 기차 안에서의 꿀 같은 시간을 잠으로 때우긴 아까웠다. 노트북을 꺼내 글을 쓰려다, 옆에 대표님이 계셔서 괜히 눈치가 보였다. 나보다 글을 훨씬 잘 쓰는 사람 옆에서 허접한 글을 끄적거리는 모습은 왠지 영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들고 온 책을 펼쳤는데, 영 재미가 없었다.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 다시 노트북을 펼쳤다. 결국 뭘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면서 시간을 축내고 말았다. 


   수원에 도착했다. 택시를 타고 행사가 열리는 장소 근천에 내렸다. 여기저기 부스 천막과 큼지막한 구조물이 눈에 들어왔다. 커다란 현수막에는 <2018 수원한국지역도서전>이라는 글귀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지난 2017년 5월에 제주한국지역도서전를 개최한 걸 시작으로, 올해 두 번째로 열리는 도서전이었다. 나로서는 편집자 직함을 달고 처음 참여하는 도서전이기도 했다.   


   우리 부스 양옆으로 다른 출판사의 부스가 쫙 펼쳐져 있었다. 익숙한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그동안 언론기사나 책, SNS를 통해 지켜보던 전국 각지의 출판사들이었다. 실제로 만난 적은 없었지만, 왠지 무척 반갑게 느껴졌다. 취업에 대한 고민을 하던 시기, 쉽지 않은 길임에도 내가 당당히 출판인의 길을 선택한 것은 이들의 모습에 반했기 때문이었다. 다들 어려운 환경 속에서 굳건히 버티며 지역을 지키고 있었다. 어느새 나도 그중 일부가 되었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기회가 되는 대로 먼저 인사를 드리며 명함을 건넸다. 출판업에 들어온 지 이제 갓 1년이 다 되어가는 애송이 편집자에겐 그야말로 동경과 존경의 대상 그 자체였다. 물론 서울이나 파주에 가면 훨씬 큰 출판사의 훨씬 유명하고 대단한 출판인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에겐 이들의 모습이 더 멋있게 느껴졌다.


   그중 내게 많은 영향을 주었던 칼럼을 쓴, 한 지역 출판사의 대표 분을 직접 만날 기회가 있었다. 바빠서 그런지 부스에 잘 안 계셔서 한참을 기다렸다. 저 멀리 걸어오는 모습을 보자마자 당장 달려갔다. 인사를 드렸다. 안녕하세요, 현재 부산에서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취업 고민을 하던 당시 대표님께서 쓴 칼럼을 보고 커다란 영향을 받았습니다. 꼭 한 번 뵙고 싶었습니다. 갑자기 새까맣게 어린 청년이 불쑥 나타나 인사를 건네는 것도 모자라, 자신이 진로를 선택하는 데 커다란 도움을 받았다며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내니 분명 많이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다만 꼭 만나 뵙고 싶었던 만큼 설렘을 좀처럼 주체할 수 없었다. 기회가 되면 술 한 잔 꼭 하고 싶었다. 


   *


   부산으로 내려오는 길. 땡볕에서 부스운영을 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닌다고 피로가 꽤 몰려왔다. 다만 축 처진 몸과 달리 머릿속은 말랑말랑했다. 이틀밖에 참여하지 못했고 사람들과 많은 얘기를 나누진 못했지만, 이번 행사에 참여하며 처음 얼굴을 비춘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았다. 무엇보다 각 지역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이들을 실제 만나며, 우리만 힘든 게 아니었다는 걸, 다들 어려운 조건 속에서 열심히 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힘이 되었다.


   출판계에 이제 갓 발을 디딘 시점, 작년을 시작으로 지역 출판사끼리 연대의 움직임이 조금씩 만들어지고 있었다. 특히 이번에 2회째를 맞이하는 한국지역도서전에 참여하면서 이 광경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했다. 나보다 한참 전에 이곳에 발을 디딘 선배 세대들은 이처럼 불모지에 열심히 씨앗을 뿌리고 있었다. 자신이 겪었던 어려움을 후배세대 혹은 자식세대는 최대한 겪지 않게 하기 위해, 어떻게든 지역출판문화를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내가 앞으로 걸어 나갈 길은, 이들이 피땀을 흘려 일구어 놓은 길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저 나 하나 편하게 걸어 나가는 것에 만족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이들의 바통을 이어받는 시기가 오지 않을까. 선배 세대가 이렇게 연대를 통해 지역 출판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듯, 나 또한 어느 시점이 오면 마땅한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선 지금부터 출판업에 과감히 몸을 던지고, 때론 넘어지고 구르고 깨지더라도, 열심히 일을 배우고 성장하며 그만한 역량을 키워야만 했다. 책임감과 의무감을 느끼는 데서 그칠 게 아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제 행동으로 옮길 능력을 키워야만 했다.


   참으로 어렵고 험난한 길. 쉽진 않겠지만 마냥 겁먹을 일도 아니었다. 1%의 설렘은 99%의 두려움을 이길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내게 주어진 길을 열심히 걸어가야지. 부산으로 향하는 KTX안, 홀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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