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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오 Nov 16. 2019

뭐, 아직 20대니까!

3년 차 편집자에게 이런 설렘과 떨림이 남아 있다니

   한 작가님과의 술자리. 첫 책을 낸 지 20년도 훌쩍 넘은, 지역의 유명한 중견 소설가였다. 그러다 최근 우리 출판사에서 단행본을 내셨다. 그 기념으로 회사 대표님, 문학 주간님과 함께 술자리를 가진 것이다. 인사를 드렸다. 작가님, 꼭 한번 뵙고 싶었습니다. 작가님께선 자신의 아들과 나이가 비슷하다며 반겨주셨다. 편집자는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도 많아야 하지만, 이렇게 술자리에서 작가들이랑 네트워크 쌓는 것도 무척 중요해요, 작가님 말씀에 조심스레 대답했다. 마침 저도 술자리를 좋아해서 다행입니다!


   대략 한 달 전, 작가님의 장편소설을 읽었다. 약 2~3년 전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었는데, 읽는 내내 너무 재미있어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였다. 새벽 2시가 넘어서야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다. 다음날 출근해야 하는데, 가슴이 먹먹해서 한참을 멍하니 있었던 기억이 있었다. 당시의 느낌을 작가님께 생생하게 전달했다. 작가님은 무척 좋아하셨다. 이내 그 작품에 대해 궁금한 점을 하나둘 물어보았다. 술자리에서 즉석으로 팬미팅이 진행되었다.


   *


   지역에는 출판사를 찾아보기 힘들며, 그마저도 1인 출판사가 대부분이었다. 자연스레 지역에서 편집자라는 존재를 찾기가 무척 힘들었다. 편집자가 어떤 일을 하는지 잘 알려지지 않았고, 만날 기회도 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출판사 편집자가 되고 싶어도 관련 정보를 찾기도 힘들 뿐더러 기회도 전무했다. 나 역시 얼떨결에 편집자가 되었지만, 아직도 편집자가 어떤 일을 하는지 정확히 감이 오지 않았다. 다른 편집자를 만나며 얘기도 해보고 싶고 이래저래 공유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 그런데 주위에 편집자가 없었다. 출판이라는 분야 자체가 사업 규모가 크지 않고 이직률이 높아 좁은 판 안에서 돌고 돈다고 하지만, 내가 사는 부산은 그렇게 도는 모습마저 보이지 않았다.


   올 초 회사 워크숍에 가서 2019년 계획을 당당히 말했다. 대표님, 편집자를 전문적으로 육성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면 어떨까요? 그렇게 막연하게 얘기했던 아이디어는 공모사업 지원을 목표로 기획안을 작성하며 구체화 되었다. 다행히 공모사업에 선정되었고 기관의 지원을 받아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교육과정 실무를 맡았다. 연사를 정하고 섭외하는 게 내 일이었다. 대부분 서울에서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는, 편집자 경력이 못해도 10년, 20년은 훌쩍 넘는 베테랑이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한 분 한 분 정성스레 연락을 하고 섭외 요청을 했다. 한 명씩 확정이 될 때마다 기분이 짜릿했다. 특히 최근에 인상적으로 읽었던 편집자 관련 책의 저자에게 컨텍을 하고 섭외 확정이 되었을 땐 절로 환호 소리가 나왔다. SNS로만 보던 그분들을, 책으로만 접하던 이들을 실제 만날 수 있다니. 분명 일정도 서로 조율했고 특강에 마땅한 비용을 지불하며 부르는 건데도 괜히 내가 영광이었다.


   *


   편집자는 작가들을 만나는 게 주요 업무 중 하나다. 어쨌든 작가들에게 원고를 받아야 책을 만들 수 있다. 그러라고 회사에서 월급을 받는 존재다. 그래서 작가들과 적당한 거리감이 필요하다. 팬심으로 만나는 건 썩 좋지 않다. 거기다 프로그램을 만드는 기획자가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이 취해버렸다. 연사를 섭외하면서 끊임없이 설레다니. 대체 누구를 위한 기획을 하고 있는지 헷갈릴 정도였다. 기획자로서 빵점이었다. 애초에 기획안 초안을 작성하면서 지역에 괜찮은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보다, 내가 편집 업무에 대해 배우고 싶고, 편집에 대해 함께 이야기할 사람을 찾고 싶다는 사심이 가득했기 때문이 아닐까. 3년 차 편집자에게 여전히 이런 설렘과 떨림이 남아 있다는 게 새삼 신기하게 느껴진다. 상태가 영 안 좋다. 뭐, 아직 20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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