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하러 왔다가

어찌어찌하다 보니 편집자가 되어버렸다

by 박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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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야. 우리 멋진 출판사 한번 만들어 보자.”


책 읽고 글 쓰는 일을 제법 오랫동안 좋아했지만, 편집자라는 직업에 관심을 둔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내가 편집자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조차 회사에 들어오고 한참 후에야 알게 되었다. 그전까지, 출판사에 들어가면 책과 가깝게 지낼 거라는 막연한 환상만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명함에 뚜렷하게 ‘편집자’라는 단어가 적혀 있긴 했지만, 내 직함이 유난히도 낯설게 느껴졌다. 오래전부터 이 일을 꿈꿔왔던 것도 아니고, 몇 년씩이나 열심히 준비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시작한 일이 내게 딱 맞아 하루하루 즐겁게 보내고 있다. 정말 운이 좋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어쩌다 편집자가 되어버린 걸까.


대학 졸업 후 문화기획 일에 뛰어들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행복할 거라며 확신했다. 하지만 대학이란 울타리를 벗어나자 현실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냉혹했다. 결국 얼마 못 가 지쳤다. 비참한 심정으로 취업 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현실의 벽에 막혀 다른 현실로 도망쳤는데, 여기도 만만치 않았다. 그나마 자소서를 그럴듯하게 쓰고 면접에서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여줘 다행히 두 군데 회사에 합격하긴 했다. 하지만 내가 그동안 해오던 일과 거리가 있어 영 내키지 않았다. 통장 잔고가 떨어졌다는 이유로 쫓기듯 직장을 선택하고 싶진 않았다.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불참 통보를 했다. 내가 정말 가고 싶은 곳에 마지막으로 도전해보고 싶었다.


지금 다니는 출판사 대표님은 문화기획 일을 하며 몇 번 뵌 적이 있었다. 하지만 가까운 사이도 아니었고 따로 얘기를 나눠본 적이 없어 조심스러웠다. 대놓고 ‘저 좀 뽑아주십시오’라고 얘기할 순 없었다. 그래서 전략을 세웠다. 지난 몇 년 동안 쉬지 않고 인터뷰를 해오고 있으니, 이것을 빌미 삼아 접근하면 자연스러울 것 같았다. 이후 인터뷰를 열심히 정리해 누가 봐도 멋지고 대단한 수준의 콘텐츠로 만들어 나를 적극 어필하기로 했다. 조심스레 연락을 했다. 일정을 잡고 만났지만, 단순한 인터뷰 준비치고는 이것저것 많이 준비했다. 내가 제작한 독립출판물 두 권과 나의 허접한 경력이 장황하게 설명되어 있는 PPT 파일이었다.


잔뜩 긴장한 채 대표님을 만났다. 다행히도 대표님은 나를 알아보았고, 내가 제작한 독립출판물에 관심을 보였다. 나는 이때다 싶어 노트북을 꺼내 나의 포트폴리오를 보여드렸다. 진행하기로 한 인터뷰는 뒷전으로 미루고, 적극적으로 나를 어필하기 급급했다. 대표님은 재미있다는 듯 내 얘기를 듣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 마침 프로젝트 하나를 진행하고 있는데 사람이 필요했어요. 그리고 이번에 뉴욕에 다녀와서 곧바로 ‘외부편집회의’를 만들어 각 분야의 다양한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만들려고 했고요. 잘 되었네요.


이어서 우선 저녁에 일정이 있어 자세한 얘기는 다음번에 만나 나누자고 했다. 당장 취업이 결정된 건 아니었지만, 커다란 여지가 생기는 셈이었다. 어두컴컴했던 현실에 한 줄기 희망의 빛이 희미하게 비쳤다. 당장 다음 일정을 물었다. 마침 독서모임을 하고 있는데, 그전에 만나 잠시 얘기를 나누고 시간이 괜찮으면 독서모임에 함께 참석하면 어떻냐고 했다. 나는 당장 좋다고 대답했다. 있는 일정이라도 취소할 기세였다. 사무실을 나와 집으로 가는 길, 통장 잔고가 바닥을 치고 있었음에도 치킨 한 마리와 생맥주 하나를 포장해서 가져갔다. 홀로 게걸스럽게 치킨을 뜯어댔다. 예감이 나쁘지 않았다. 김칫국이라 할지라도 스스로 축하하고 싶었다.


- 자연에 매료된 채 자신의 삶을 오로지 글과 사진에 바친 저자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예술에 대한 숭고한 정신 그 자체인 거 같아요. 저는 최근 취업 문제로 ‘예술로 돈을 벌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스스로 부끄러워질 정도네요. 그리고 저자의 죽음마저도, 안타깝긴 하지만 자연의 법칙에 충실했던 거 같습니다. 이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 불곰에겐 전혀 중요치 않았으니까요.


- 자연을 노래하고 그 자체에 충분히 빠지며 삶을 살아냈다는 점에서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이랑 연결되는 지점도 있는 거 같습니다. 물론 이 책의 저자는 소로우처럼 문명을 의도적으로 피하며 맞서 싸우진 않았지만 말이죠.


독서모임에 참여해 온갖 말을 떠들어댔다. 딱 봐도 얘가 책을 많이 읽었구나, 아는 게 많구나 생각이 들게끔 열심히 포장했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참여자 말에 귀 기울여주고, 맞장구를 쳐주며 나의 사회성 역시 어필했다. 이번 독서모임에서 어떤 모습으로 비치냐에 따라 프로젝트 진행 여부가, 취업 여부가 결정될 거라 확신했다. 물론 혼자만의 상상에 가까웠지만, 간신히 잡은 지푸라기를 꽉 움켜쥘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겉으로는 독서모임에 열정적으로 참여하고 있었지만, 실은 대표님께 나의 존재를 적극 어필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러니까 제발, 저 좀 뽑아달라니까요. 이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모임을 마치고 뒤풀이가 이어졌다. 독서모임 참가자가 다 같이 있는 1차에선 내 취업과 관련한 별다른 얘기가 나오지 않았다. 지금까지 분위기로 보아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하는 건 별문제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좀 더 욕심이 났다. 취업을 하고 싶었다. 하다 못 해 수습 기간이라도 일해보고 싶었다. 이런 내 마음을 모르는지, 대표님은 여전히 다른 참가자들과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토록 애절한 밀당을 할 줄이야. 이제 좀 당겨주세요, 대표님.


- 정오 씨, 혹시 한 잔 더 할래요?


사람들을 먼저 보내고 둘이 남았을 때, 대표님이 물었다. 나는 기회다 싶어 당장 좋다고 대답했다. 근처에 있는 한 호프집에 들러 맥주를 주문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우연히 취업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 회사에 들어가면 내가 얼마나 열심히 일할 수 있는지 열심히 설명했다. 대표님은 재미있다는 듯 살짝 웃었다. 말을 놓아도 되겠냐고 물어보시기에 곧장 괜찮다고 대답했다. 혹시 긍정적인 신호일까. 진짜 열심히 일할 자신 있나?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이 기어코 대표님 입에서 나왔다. 할렐루야!


- 정오야, 우리 멋진 출판사 한번 만들어 보자


그럼요, 뼈를 묻겠습니다. 나는 격렬하게 뛰는 가슴을 좀처럼 주체하지 못한 채, 싱글벙글 웃어댔다. 맥주를 벌컥벌컥 마셔댔다. 아주 꿀맛이었다. 드디어 취업을 하게 된 걸까. 책 읽고 글 쓰는 걸 그토록 좋아하던, 상태 안 좋던 한 공대생이 마침내 꿈을 이루는 걸까. 출판사가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몰라도, 내가 달게 될 직함인 ‘편집자’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몰라도, 정말 재밌을 거 같았다. 대표님 말씀대로, 정말 멋진 출판사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


그렇게 회사에 들어온 지 약 1년이 다 되어간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노트북에는 당시 대표님께 발표했던 포트폴리오가 그대로 저장되어 있다. 자취방 책장 한쪽에는 당시 보여드렸던 독립출간물 두 권과 독서모임 때 다뤘던 책 한 권이 여전히 꽂혀있다. 당시의 일은 이제 재미난 추억이 되었다. 책 읽고 글 쓰는 게 일이 되어버리니 예전만큼 마냥 재밌진 않다. 회사 일이 점점 많아지고, 출근길이 조금은 무겁게 느껴진다. 그래도 멋진 출판사를 만들어보겠다는 당시의 다짐은 조금도 변함이 없다. 지금도 한 번씩 대표님과 술 한잔하며 당시를 추억한다.


- 정오야, 오늘 마치고 뭐하노? 맥주 한잔할까?


퇴근 직전, 대표님의 말씀에 잠깐 고민을 했다. 예전에는 대표님과 술 한잔하기 위해 그토록 애잔하게 매달리며 노력했는데, 입사한 후 대표님과의 술자리는 일상이 되었다. 특히 최근에는 너무 자주 마셨다. 아무리 하고 싶은 일을 한다지만 어쨌든 나는 직장인이었다. 퇴근 후엔 쉬고 싶었다. 나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 아... 친구랑 약속이 있어서...


사실 약속은 없었다. 얼른 집 가서 발 닦고 푹 쉬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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