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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오 Nov 16. 2019

남자는 왜 그러고, 여자는 또 왜 그럴까

남녀가 서로 조건이나 외모 보는 게 모두, 사회적인 현상이라는 거죠

   기본 안주와 함께 소주와 맥주가 각각 한 병씩 나왔다. 무더운 날씨에 갈증이 심했다. 아직 메인 안주가 나오지 않았지만, 곧장 소주를 집어 들었다. 유리병의 차디찬 감촉이 손에서 목구멍까지 전해지는 듯했다. 소주병을 흔들었다. 자그마한 기포가 좁디좁은 소주병 입구에 모 여 들었다. 맥주잔 세 개에 적정량의 소주를 차례로 부었다. 야, 왜 내 꺼에 많이 붓냐. 도전이가. 아, 아닙니다, 행님. 손이 미끄러져서... 이내 병따개로 맥주병 뚜껑을 땄다. 펑 하는 기분 좋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주가 채워진 맥주잔 위에 맥주를 콸콸 부었다. 아, 오빠. 맥주 많이 부었잖아요. 소맥 진짜 못 마네요. B 형의 핀잔에 이어 C의 강력한 항의가 이어졌다. 이제 정오한테 소맥 시키면 안 되겠다. 맞아요, 다음번엔 제가 말게요. 그런 의미에서 오빠 꺼랑 바꿔야지. C가 가운데 있던 내 잔과 비율이 엉망이 된 자기 잔을 바꿔치기한다. 아니, 이 사람들이... 일단 짠 합시다. 소맥 특유의 부드러운 목 넘김이 비율의 아쉬움을 상쇄해줬다. 더 나아가 더운 여름날의 갈증을 단번에 해결해줬다. 역시나 첫 잔은 소맥이지!


   소맥을 두 잔 비울 때쯤 안주가 나왔다. 오늘의 메뉴는 맛집으로 유명한 족발집이었다. 저렴한 가격에 양이 푸짐했다. 접시 위에 세팅되어 있는 족발에는 기름이 살짝 묻어있어 더욱 먹음직스럽게 느껴졌다. 거기에 족발 특유의 냄새까지 더해,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세 명 모두 술잔을 들고 있었다. 잔을 부딪친 이후 소맥을 두 모금 넘겼다. 우선 상추 위에 깻잎을 한 장 더 깔았다. 족발을 한 점 집어 그 위에 놓았고, 양념장에 반신욕을 하고 있던 양파를 몇 점 더 놓았다. 마지막으로 쌈장을 살짝 묻혀 쌈을 완성했다. 야, 처음부터 왜 쌈으로 먹노. 족발부터 먹어서 본연의 맛을 음미해야지. 먹을 줄 모르네. B 형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쌈을 한입에 넣었다. 충분히 맛있었다.


   정오 니는 언제 연애할 거고. 에이~ 오빠는 평생 저렇게 살 걸요? 왜 술만 마셨다하면 내 연애 이야기로 빠지는 건지. 물론 이상할 건 없었다. 대학생 땐 진로 문제가 가장 큰 고민이었고, 대부분 술자리에서 그런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대학 졸업 후 잠시 프리랜서로 살 땐 뭐 먹고 살아야하는지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로 취업을 했다. 내가 뭐 하면서 먹고사는지가 명확해졌다. 떵떵거리며 살 만큼 많이 벌지는 못하지만, 혼자 적당히 먹고살 정도의 돈은 벌고 있었다. 자연스레 새로운 고민이 생겼고, 그동안 다루지 않았던 주제가 대두되었다. 참 오랜 기간 진로 고민에 빠져있었고,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욕심이 남들과 달랐던 나에겐, 그 주제는 바로 ‘연애’였다.


   소개에 관한 이야기가 오갔다. 여중, 여고를 나온 C는 자기 주위에 여자가 많다며, 어떤 사람과 만나고 싶은지 물었다. 대학 시절엔 이상형이 뚜렷했는데,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흐릿해져가고 있었다. 책 읽고 글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 나와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 취미 생활이 비슷한 사람 등, 까다로웠던 조건은 비교적 단순해졌다. C의 물음에, 그저 나랑 대화 잘 통하는 사람이면 된다고 대답했다. C가 자기 주위에 나와 어울릴 만한 사람을 찾아보겠다고 했다. 니도 연애해야지. 소개 해줄까? B 형의 타킷이 이번엔 C에게로 향했다. 헤어진 지 얼마 안 된 C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최근에 소개 몇 번 받았는데 자신이 거절했다면서, 당분간 연애를 쉬어야겠다고 덧붙였다. 그래, 니는 쉴 만하지. 충분히 많이 했다. 오빠나 평생 쉬세요. 야, 너희는 그만 좀 티격대격해라.


   - 근데 제 주변에 친구들 보면, 남자 조건 엄청 따지더라고요. 남자 소개해줄까 물어보면, 일단 뭐 하는 사람인지 물어보더라고요. 어디 다니는지, 연봉 얼만지, 차는 있는지, 뭐 그런 거요. 제가 봐도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C의 넋두리 아닌 넋두리에 곧장 입을 열었다. 야, 그건 남자도 마찬가지다. 남자들은 외모 엄청 따지고, 자기가 나이 들수록 오히려 어린 여자 좋아하잖아. 내 주위 애들도 누구 소개해준다고 하면 무조건 얼굴만 본다. 조건은 안 따지지만. 나와 C의 대화를 듣고 있던 B 형이 끼어든다. 야, 남녀가 처음 만나는데, 남자든 여자든 외모나 조건 따지는 건 당연한 거 아니가? 그럼 초면에 성격이나 가치관, 철학 같은 거 따지겠나. B 형의 얘기가 가장 현실적이긴 했다. 족발을 한 점 집어 양파절임소스에 푹 찍어 먹었다. 족발이 조금 식었지만, 쫀득쫀득하고 부드러운 식감은 여전했다. 이모, 여기 카스 한 병 더 주세요!


   제가 생각을 해 봤어요. 왜 남자는 여자 외모를 보는가, 그리고 여자는 왜 남자 조건을 보는가. 저는 이게, 우리나라에 여전히 남아있는 가부장제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해요. 여성의 취업률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졌고, 연봉이 높은 전문직 여성들도 많아지긴 했지만, 전체로 보면 아직 남자가 돈을 더 많이 벌잖아요. 높은 자리에 올라갈수록 유리천장도 더 두텁고요. 남자는 연애를 하거나 결혼할 때, 자기가 여자를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감을 강하게 느끼는 거 같아요. 바꿔 말하면 자신이 권력을 쥐고 있고, 그걸 마음껏 누리겠다는 거긴 한데... 그러니 여자가 돈을 못 벌어도 자기가 먹여 살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는 거죠. 자연스레 능력 있거나 조건이 좋은 여자보단, 어리고 예쁜 여자를 선호하는 거죠. 오히려 자신이 돈을 많이 벌거나 사회적인 명성을 얻었을 때 그런 여자와 만나는 걸, 마치 트로피처럼 생각하는 거 같아요. 그 과정이 어떻든 간에, 성격과 가치관이 어떻든 간에, 결과적으로 내가 어리고 예쁜 여자와 연애하거나 결혼하면 마치 승리자가 되는 거죠. 


   아, 또 소주 많이 부었네. 정오 일부러 이러는 거 같은데? B 형의 잔에 소맥을 말아주다가 또 핀잔을 듣고 말았다. 안 되겠다, 니가 따라라. 내 쪽에 두었던 소주병과 맥주병을 C의 앞으로 옮겼다. 와, 여자한테 술 따르라고 하는 거가. 니가 제일 가부장적이네. 맞아요, 오빠. 안 되겠네. C까지 혀를 끌끌 차며 가세하였다. 아니, 내가 따르면 못 따른다고 뭐라 하고, 안 따르면 또 가부장적이라 하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쨌든 남자는 그렇고, 여자도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아까 말한 것처럼 우리나라에 아직 가부장제 문화가 많이 남아 있고, 남성 중심으로 사회가 흘러가다 보니 여자가 사회적인 성취를 하기가 무척 어렵다고 봐요. 제아무리 개인이 노력한다 해도 주위에서 달갑지 않게 보고, 같은 성과를 내더라도 남자에 비해 승진이 느린 편이죠. 간신히 높은 자리에 올라가더라도 여자답지 못하다, 가정을 못 돌볼 것이다, 뒷담화 대상이 되기 십상이죠. 외모가 예쁘면 부당한 방법을 썼을 거라며 말도 안 되는 험담을 하고, 외모가 안 예쁘면 남편한테 사랑 못 받을 거라며, 못생겼는데 성격도 더럽다는 둥 인신공격을 서슴지 않으니까요. 즉 자신이 돈을 많이 벌거나 사회적인 성취를 이루는 데 많은 제약이 있다 보니, 자연스레 남자에게 기대는 게 아닐까요. 간신히 직장에 들어가도 대기업이나 공기업이 아니면 임신, 육아 등으로 직장생활을 계속 해 나가기 어려운 현실이기도 하고요.


   왜 이렇게 말이 많노. 그래서 결론이 뭔데. B 형의 다그침에 서둘러 의견을 정리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남자가 여자 외모를 보는 거나, 여자가 남자 조건을 보는 것 모두 사회적인 현상이라는 거죠. 그 안에는 가부장적 문화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거고. 와, 오빠 말은 잘하는데 진짜 노잼이네요. 정오 이 정도면 재미있어 진거다. 맞제? 오늘따라 B 형과 C의 손발이 잘 맞다. 역시나 공공의 적이 있으면 단합이 잘되는 법이고, 오늘 공공의 적은 바로 ‘나’였다. 젠장.


   그래도 요즘에 남자도 여자 조건을 많이 보더라고요. 가부장적 문화가 예전에 비해 약해진 것도 있지만, 워낙 먹고살기 힘드니까 이제 남자 수입만으로 가정을 유지 못하는 시대가 돼버린 거죠. 반대로 어리고 잘생겼지만 무능력한 남편을 먹여 살리는, 능력 있는 여성들도 하나둘 등장하고 있고요. B 형이 갑자기 끼어든다. 야, 그런 점에서 나랑 니는 진짜 인기 없겠네. 일단 얼굴로는 못 꼬시잖아. 돈도 많이 못 멀고, 집에 재산이 많은 것도 아니고. B 형의 한마디 한마디가 비수처럼 내 가슴에 꽂혔지만, 스스로도 같이 디스하는 거라 섣불리 반격할 수 없었다. 우리는 결국 우리 꿈이랑 가치 이런 거 이해해주는 사람 만나야 한다. 그 사람이 이상형이랑 가까우면 좋은 거고, 돈 많으면 더 좋은 거고. 농담처럼 얘기했지만 그 속에 왠지 모를 암울함과 서글픔이 담겨 있었다. 왠지 한숨이 나왔다. B 형이 C를 보며 말했다. 야, 니는 우리 같은 남자 절대 만나지 마라. B 형의 말에 C는 조금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에이, 정오 오빠 같은 사람은 절대 안 만나죠. 아, 진짜, 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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