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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오 Aug 21. 2020

잘 살고 싶어서 그런 건데

평생 일하면서 자기 보금자리 하나는 마련하고 싶어서 그런 건데

   경기도에서 일하는  A가 갑자기 부산에 왔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냥 놀러 왔겠거니 싶었는데 알고 보니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시간 나면 들르라고 했다. 곧장 친구들끼리 일정을 맞췄다. 울산에서 일하는 B는 차를 끌고 부산에 내려오기로 했고, 나와 C는 시간을 맞춰 B를 만나기로 했다. D는 현재 외국 출장 중이라 인사만 전해달라고 했다. 그렇게, 대학 시절 내내 붙어 다니던 친구들이 급하게 모였다.


   이들과 장례식장에서 만난 건 처음이었다. 격식을 차린 서로의 옷차림이 문득 낯설게 다가왔다. B가 대표해서 술을 올리고, 함께 절을 했다. 부조금을 넣고 식당 쪽으로 향했다. 야, 진짜 오랜만이네. 올해 처음 보는 거 아니가. A가 대답했다. 맞지. 코로나 때문에 부산에 한 번도 못 내려왔다. 간만에 술잔을 부딪혀서 반가울 법도 했지만, 좋은 소식으로 만나는 게 아니라 마음이 착잡했다. 그토록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끼리 간만에 보는데, 그 장소가 장례식장이라는 사실은 머릿속을 조금 복잡하게 만들었다. 이제 그런 나이가 된 걸까.


   다들 어떻게 지내는지 안부를 주고받았다. 각자 오랫동안 만나온 연인이 있어, 자연스레 결혼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내년에 결혼할 거 같은데. 조금 있으면 연인과 7주년을 맞이하는 C가 말했다. 우리가 축가 불러줄게. 아, 제발. 근데 모아놓은 돈은 있나. 있겠나, 없지. 돈 이야기가 나오자 결혼은 낭만의 영역에서 현실의 영역으로 넘어왔다. 그나마 얼마 전에 청약에 당첨돼서, 집을 구하긴 했는데. 몇 개월 만에 분양가 1억 올랐더라. C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듯 덤덤하게 말했다. 야, 니가 돈 제일 많이 벌었네. 다음에 놀러갈 때 니가 사라. B가 부럽다는 듯 이야기했다. 니도 주식으로 얼마 전에 500만 원 벌었다며. 3천만 원 넣어서 6개월 만에 500 벌었으면 엄청 잘 한 건데. 둘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A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아, 요즘 아파트 엄청 오르던데, 왜 오피스텔은 안 오르냐. A는 저번에 산 오피스텔이 1년 만에 8천만 원 올랐다고 덧붙였다. 좋긴 한데, 아파트에 비해 안 오르는 게 불만인 듯 보였다. 진짜 월급만 모아서는 절대 집 못 산다. 돈도 못 벌고. B가 중얼거렸다. 그래도 너희 집은 잘사니까 결혼하면 집 한 채 사주시지 않겠나. 아니, 요즘 우리 아버지 한 달에 천만 원씩 적자다. 대학교 다닐 때 한 달에 80만 원씩 용돈 받았으면 됐지, 뭐. 온갖 이야기로 테이블은 금세 시끌벅적해졌다.


   부동산이니 주식이니 모두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렸다. 몇백, 몇천 버는 건 일도 아닌 듯 보였다.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 그 돈으로 주식과 부동산에 투자하고, 그걸로 또 돈을 벌고. 그럼 내가 하는 일은 무슨 의미일까, 문득 의문이 들었다. 아등바등 살아봤자 주식, 부동산으로 버는 것의 반도 못 버는데. 절로 한숨이 나오다가도, 월급만 모아서는 절대 집 못 산다는 B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래, 뭐. 얘네들도 좋아서 주식, 부동산에 관심 가지는 게 아닌데. 그냥 세상이 이런 거고, 평생 일하면서 자기 보금자리 하나는 마련하고 싶어서, 먹고 살고 싶어서 발버둥 치는 건데. 마냥 뭐라할 순 없었다. 잘 살고 싶어서, 잘 살고 싶어서 그런 건데. 문득 A가 차고 있는 완장이 눈에 들어왔고, 그제야 이곳이 장례식장이란 사실을 다시금 인지했다. 누군가 떠나간 자리, 살아갈 날이 한참 남은 네 명의 서른 살 청년은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었다.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뭐 나쁜가, 잘 살고 싶어서 그런 건데. 살날이 너무나도 많이 남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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