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 엄마 잔소리에 머리가 아프다.
- 그러게 누가 그런 마누라 만나래요?
- 하하... 그러게 말이다.
- 아버지가 선택했으니 책임을 다해야지요. 호호.
아닌 게 아니라 친정엄마의 잔소리가 점점 늘어가고 수위도 높아졌다.
제일 만만한 게 남편이라고.
기. 승. 전. 잔소리로 귀결되는 엄마 때문에 아버지는 딸들에게 이런저런 하소연을 하신다.
엄마는 시아버지, 시어머니, 시동생 둘과 함께 단칸방에서 시집 식구들을 뒷바라지하며 어렵게 살았다. 어린 나이의 엄마는 안 해 본 장사가 없을 정도였다. 먹고살기 위해 손가락 마디는 굵어지고, 목청은 더 커지고, 걸음은 더 빨라졌다.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시절에 아버지와 엄마는 식구들 입에 풀칠해주기 위한 노동으로 젊음을 다 썼다. 고달픈 삶을 사는 동안 불 주사 맞은 수두의 자국처럼 엄마의 한 맺힌 마음들이 이곳저곳에 남아 있다. 먹을 것을 장만해 상을 차려 놓으면 시집 식구들끼리 싹 먹어치워 엄마 먹을 게 없었단다. 남편이라도 눈치껏 챙겨주거나 같이 먹자고 권해야 하는데 몰라라 했으니 늘 배가 고픈 엄마는 몹시 서러웠다. 부엌 벽에 기대어 울기도 많이 울어서 그 눈물이 한이 되었을 거라 한다. 지금도 아버지가 먹자는 소리 없이 먼저 드시면 그때의 그 서러움을 꺼내 잘근잘근 뱉어낸다. 그러면 아버지는 빙그레 웃으시며 "미안해요. 같이 먹어요." 하면서 템포를 늦춘다.
아버지는 여자의 한을 모른다. 육체적 고생이 아니라 짧은 한 순간의 아픔이 내면 깊이 유리 조각처럼 박힌 것이 한이 되어 문득문득 마음의 고통으로 되살아난다는 것을. 시집와서 온갖 고생을 해도 남편이 아내를 아끼는 마음이 느껴지면 여자는 행복한 마음으로 고생의 산을 12번도 넘는다. 그러나 임신해서 먹고 싶다는 것을 외면한 남편은 두고두고 한 설인 잔소리를 피할 수 없다. 고생의 큰 산도 끄덕 없이 넘는 훈훈한 아내지만 아주 작은 결정적 바람을 귓등으로 흘려버리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리는 섬뜩한 아내가 된다는 것을 남편들은 알아야 하리라. 아버지 역시 임신한 엄마가 먹고 싶다던 자장면 한 그릇을 외면하는 바람에 앞으로도 가시 돋친 잔소리를 들어야 하는 숙명에 놓인 것이다.
이제는 팔순하고도 이년을 넘긴 아버지는 엄마의 존재만으로도 당신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자랑하신다. 잔소리 때문에 머리 아프다고 투정하면서도 네 엄마 잔소리가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사냐며 걸쭉하게 웃으신다.
- 너희들은 엄마 속상하게 하지 말고, 엄마가 하자는 대로 해라. 나는 무조건 네 엄마 편이다.
20살, 21살에 만나 일찌감치 나를 낳고 부부의 연으로 살아온 세월의 질감과 양감이 있는데, 그 부피를 어떻게 자식들이 축소시킬 수 있겠는가.
- 아버지, 끝까지 책임져야 할 엄마의 남은 인생, 한까지 꼭 품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