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금 Oct 30. 2020

어머니, 오늘이 생신 아닌가요?




-어머니, 생신 축하드립니다.

-나 오늘 생일 아닌데...

-오늘이 생신이잖아요? 음력 1월 27일.

-그러게. 그 날짜가 지나간 지가 언젠데.

-네? 오늘이 음력 1월 27일이 아닌가요?

-야야~ 정신 좀 차려라.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어머나! 어머니‥‥

-그래도 고맙다. 지금이라도 잊지 않고 전화 줘서, 호호...







코로나 19로 집 안에만 있다 보니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어제 같더니 세상에, 이런 실수를...

시어머니 생신 날짜에 동그라미를 쳐 놓고, 보고 있었으면서도

그 날짜가 일주일 전인지, 어제인지, 오늘인지 도통 감을 못 잡고 살고 있었다.

결혼한 지 30년을 사는 동안 한 번도 잊고 지난 간 적이 없었는데.


 첫 애를 낳고 산부인과에서 산후조리할 때다.

홍천에서 시어머니가 시아버지를 혼자 두고 병원으로 오셨다.

평생 시아버지와 사는 동안 시어머니는 이틀 이상 집을 떠나 본 적이 없다.

어머니는 집 안 일과 농사, 돼지 키우느라 잠시 엉덩이 붙일 새가 없이 늘 바쁘셨다.

잠시 평상에 앉기라도 하면 그새 꾸벅, 꾸벅 조신다.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어머니 일상에 모처럼 작은 행운이 찾아왔다.

첫 손주를 보러 서울에 올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 시어머니가 돼서 며느리 산후조리 며칠 좀 해주고 오겠다는데 왜 안 된다는 거예요?

  내 체면 좀 세워줘요.

  가서 매일 전화드릴게.

  농사 때도 아니니 3일만 있다 올게요.

어머니는 시아버지의 허락을 받기 위해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귀찮게 하셨던 모양이다.

- 이틀만 있다 내려와.

투박하고도 단호한 그 말 한마디에 어머니는 설레는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그런데 이틀만 있다가 내려오라는 시아버지의 엄명을 어기고 하루 더 계시려던 날이다.

그날이 바로 어머니 생신날이다.

나는 간호사에게 미역국 한 그릇만 더 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무슨 야박함인지, 미역국이 넉넉지 않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큰 소리 내기 싫어서 언짢은 표정으로 병실로 돌아왔다. 

나는 미안한 마음으로 내 미역국을 어머니 앞에 놔 드렸다.

어머니는 괜찮다며 내 앞으로 다시 미역국을 밀고, 나는 어머니 드시라고 또 미역국을 밀고.

그럼 나눠 먹자고 그릇에 반을 나누고 있는데, 

그때 걸려온 시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어머니가 뒤돌아 울고 계셨다.

아버지는 왜 안 내려오고 여태 거기 있냐며 당장 내려오라는 불호령이 떨어진 것이다.

어머니는 부랴부랴 짐을 챙기시고, 나를 안아주시며 "미안하다, 미안하다"울먹거리신다.

나 또한 생신에 아무것도 해드리지 못하고 보내드려야 하는 미안함과 

시아버지의 야속함에 울음이 터져버렸다.

어머니의 삶에선 '자신'은 없다. '자신을 위한 시간'이라는 건 시아버지와 자식에게만 있는 점유물이었다.

여자의 눈으로 바라 본 시어머니는 안아주고, 눈물을 닦아줘야 하는 연약한 여인일 뿐이다.

-산모가 그렇게 울면 얼굴 붓는다. 그만 울고 몸조리 잘해라. 나 간다!


30년이 된 이야기지만, 어머니와 나는 두고두고 돌아가신 시아버지를 흉보면서 그때를 회상한다.

서로 키득키득 웃으면서 말이다.

며느리로서, 여자로서 시어머니를 볼 때 그 삶이 너무 고되고 힘들어 보여, 

여자의 일생이 무엇인가라는 명제를 놓고 깊은 생각에 자주 빠지곤 했었다.


- 어머니,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코로나 때문에 정신 못 차리고 사는 저를 깨워주셔서. 

 그리고 사랑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잔소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