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와 시동생
- 엄마, 돈 10만 원만 보내줘요.
- 이눔아, 내가 돈이 어딨어? 너가 빌린 은행 이자 갚기도 벅차.
- 죄송해요. 조금만 기다려요.
- 조금? 내가 너한테 속아 평생을 기다리며 살아왔다 이눔아!
- 알아, 알아요. 그래도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 미친놈! 너 때문에 오래오래 살 것 같냐? 가슴에 불이 인다, 일어!
- 엄마, 내가 또 전화할게요.
뚝!
쉰 살이 된 노총각 막내 시동생.
시어머니와의 통화 내용이다.
수 십 년 동안 둘의 통화 내용은 어찌 그리도 변함이 없는지.
시동생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사는지 구체적으로 아는 식구는 없다.
대학을 졸업하고, 한때는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하기도 하고,
선배의 당구장을 인수받아 경영(?)도 하고, 유명한 대형 불가마 찜질방과 마트를 관리해주는 관리자로 일하기도 했지만 어느 곳에서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부초처럼 떠돈다.
언제부턴가 그의 삶은 조각 퍼즐이 되었고, 누나들이 포기한 퍼즐 조각을 손에 든 어머니는 아들의 인생이 행여 미완성이 될까, 주변의 따가운 시선과 매몰찬 말들을 막아주는 방패로 살아오셨다. 그러나 끝나지 않는 긴 세월은 결국 어머니를 힘없는 노인네로 만들어버렸다. 지금은 방패 드는 것조차 버거워졌고, 가슴은 하루에도 열두 번씩 화끈거린다. 이제는 빈털터리라도 좋으니 어미 곁으로 돌아와 눈에 보이는 곳에 있어 주기만을 기다리신다.
현재 시동생은 강원도 어디쯤에서 생활도 안 되는 작은 일들을 하면서 그냥저냥 사는 것 같다.
그렇게 그냥저냥 살면 좋은데, 엄마에게 젖 달라고 보채는 아이처럼 돈 좀 보내달라고 늘 징징댄다.
집으로 들어오라고 해도 싫단다.
그래도 자식의 임무를 다하려는 듯 늙으신 어머니께 매일 전화는 한다.
식사는 하셨는가, 어디 아픈 데는 없으신가, 누나들은 왔다 갔는가.
걱정하는 안부를 묻다가 전화 끊기 전 말미에는 돈 좀 있으면 부쳐달라, 꼭 갚겠다는 얘기로 끝낸다.
어머니도 비슷하다.
밥은 먹었냐, 어디 아픈 곳은 없냐, 너는 어디에 있냐, 내 걱정은 말라.
이렇게 애틋한 마음을 전하다 말미에는 이눔아, 이눔아, 내가 너한테 속은 게 한두 번이냐? 평생이다!
한숨과 탄식의 목소리는 끝내 격앙되어 끊게 된다.
둘의 안부로써의 통화 내용은 수십 년째 반복적이고 똑같다.
어머니와 아들, 아들과 어머니
천적이면서도 서로 공생해야 하는 적과의 동침이다.
얼마나 더 반복되어야 끝날 것인지 아찔하고 아득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