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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금 Mar 10. 2021

세상 물정을 좀 모르면 어때

유산




- 언니!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그렇게 세상 물정을 몰라서 어떻게 살아갈 건데?








친정 동생이 단단히 화가 났다. 땅이 꺼져라 한숨도 내뱉는다. 

나는 정말 세상 물정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일까?


시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 세 아들들에게 논밭을 분배해 주셨다. 두 딸들에게는 아무것도 남겨 주시지 않아 딸들의 섭섭함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워낙 남아선호 사상이 깊게 자리한 전통을 신처럼 모시고 살아오셨으니 딸들은 일단 물러섰다. 큰아들인 남편에게는 선산을 물려주고, 둘째 아들에게는 밭을, 셋째에게는 논을 주셨다. 사실 그때 나는 두 시동생들이 무엇을 받았는지 잘 몰랐다. 내게는 별로 중요한 것들이 아니라서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편이 암으로 투병하다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긴 후 물려받은 선산에 대해 언급했다. 동생들이 뭐라고 해도 절대 주지 말고 나중에 우리 애들 이름으로 바꿔 놓으라는 것이다.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이미 막내 여동생에게 여러 차례 전화를 받아 왔던 모양이다. 

- 오빠네 애들은 아직 어리니 선산을 둘째 오빠 이름으로 명의 변경하면 좋을 것 같아. 인감도장을 주면 내가 바꿔 놓을 게.

- 그럼 둘째가 받은 밭을 우리 애들 앞으로 줄 수 있대?

- 그건 둘째 오빠하고 말해 봐야지.

- 복잡하니까 아버지가 나눠 주신대로 둬. 너는 상관하지 말고.


병상에 누워 있는 남편은 몹시 언짢았다. 큰애는 대학생, 둘째는 아직 고등학생으로 앞으로 얼마나 이 애들에게 아빠의 자리가 필요할 것인데, 끝까지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떠나야 하는 것에 가슴이 미어진다. 그런 남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얄궂은 동생들까지 생채기를 낸다. 


 남의 땅에 농사만 짓고 살아온 시가(媤家). 시부모님은 억척같은 손으로 한 평, 두 평 논을 사고, 밭을 사들였다. 그곳에서 나온 수확물을 팔아 큰아들인 남편을 일찌감치 도시로 보내 공부를 시켰다. 시아버지는 큰아들은 집 안의 대들보요, 집 안을 책임져야 하는 경제 대통령과 같은 존재로 치켜세우고 모든 일에 우선시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자식들은 자연히 뒷전이 되어 버렸다. 이런 시아버지의 독단적 결정과 행동으로 인해 나머지 자식들은 첫째가 아니라는 부당한 차별에 많이 아프고 서러웠을게다.

남편 또한 숙명처럼 지워진 무겁고도 부담스러운 가족의 멍에를 매고 큰아들로서, 형으로서 도리를 다하려 애쓰며 살아왔다. 그러나 53세에 청천벽력 같은 위암 4기 진단을 받았다. 시아버지는 15년 전 환갑이던 그 해에 소천하셨는데, 그전에 이미 세 아들에게 땅을 분배해 나눠 주신 것이다. 그동안 별 탈 없이 지내오던 시동생과 시누이들은 남편이 세상을 뜨게 되면 장손으로서의 선산 관리를 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둘째 시동생에게 명의를 변경해 줄 것을 남편에게 계속 요구해 왔던 것이다. 이는 겉으로 드러난 이유지만 내심은 내가 재혼할까 싶은 불안한 마음이 더 컸던 게 아닐까 싶다.

 

 남편은 절대 동생들에게 인감도장을 내주지 말라고 했으나 나는 그의 말에 순종하지 못했다.  

그것 때문에 시집 식구들과 불쾌한 감정을 쌓고 싶지 않았고, 돈보다 땅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가족이기 때문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시아버지와 시어머니가 허리를 동여매고 목숨과도 같은 땅을 평생 일구어 얻은 재산이다. 그런데 자식들은 왜 그것을 당당히 요구하고 당당히 뺏으려고 하는 걸까? 그것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일까? 부모님이 굽은 허리로 그 터를 일굴 때까지 우린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도로 달라고 해도 어떤 명분으로 못 주겠다고 악다구니 쓰겠는가? 물론 명의를 자식들 이름으로 바꾸어 주었으니 법적으로는 소유를 인정할 수 있지만, 나는 여기서 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재산을 분배해 줄 때는 싸우지 말고 우애 있게, 행여 살다가 어려운 일을 겪는 형제가 있다면 내가 너희들에게 아낌없이 주었듯 너희들도 서로 도우고 함께 슬픔을 이겨나가라는 속뜻이 있을 터인데, 어찌하여 속뜻보다 탐심에 눈이 어두울 수가 있단 말인가?


 나는 남편의 인감도장을 내줬다. 대신 그들이 믿지 못하던 불안한 눈빛을 잠재울 수 있었다. 나에겐 불화보다 화목이 더 중요했고, 22년을 함께 살아온 남편의 무거웠던 어깨의 짐을 내려주는 게 더 중요했고, 내 아이들에게 작은아버지와 고모들이 있다는 게 더 중요했다.

남편 없이 아이들과 살아가야 하는 물질의 세상에서 한 푼이라도 악착같이 받아 살아가는 것이 세상의 이치고, 그게 세상 물정을 잘 아는 것이라고 해도, 나는 언제든 또다시 이 길을 선택할 것이다.


- 미안해, 언니가 세상 물정을 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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